적극적 내향인의 삶

너의 초록으로, 다시 - 나태주 시, 한서형 향

by 사리

소극적 외향형 인간이다. 다양한 모임에 참여 중이고 먼저 약속을 제안하지는 않지만 만나자는 말이 나오면 누구보다 빨리 '저요!'를 외친다. 주 5일 외출을 출근처럼 할 수 있는 사람이 나다.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주고받고 함께 놀면서 술까지 한잔 하면 에너지가 충전된 풀배터리가 돼서 집에 돌아온다. 그러던 내가 2024년 1월부터 집순이가 됐다.

아이의 방학이라 집에서 육아를 한다는 게 대외적인 이유였다. 얼마 전부터 영어학원을 중단하고 엄마표를 시작하며, 주 3회 함께 하던 외출도 없어졌다. 아이가 원하는 것들로 방학특강을 꽉꽉 채워 놓아서 아이의 체험활동이나 문화생활은 들어갈 틈이 없다. 아침에 밥 먹여 학교를 보내고 돌아오면 밥을 챙겨 먹이고 또 학교를 보내고 오면 간식 먹이고 같이 시간을 보내고 저녁을 먹는다. 아파트 커뮤니티에서 하는 체육 수업과 피아노 학원을 데려가서 기다리는 시간 꼭 해야 하는 일정이 외출의 전부다. 장은 쿠팡으로 보면 됐고 그 외에 필요한 건 신랑이 사다 주었다.

모든 상황은 나를 한 달 넘게 집에 묶어 두었다. 12월 즈음부터 밖으로 나갈 에너지조차 없어서 집구석에 있기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집 밖을 나가고 싶지 않았다. 나가고자 한다면 아이를 맡기거나 데리고 나갈 수 있는 상황이지만 그러지 않았다. 외향형 인간들의 숨통이자 힘의 원천인 약속이 배제된 생활을 하는데 의외로 괜찮았다. 그래서 묶였지만 답답하지도 힘들지도 않았다. 장승마냥 집에 말뚝을 박고 버티다 보니 그 쉼에서 얻는 힘이 또 있더라. 내가 기억하는 삶 중에서 이렇게 자발적으로 집에 머무르며 잉여로운 시간을 보낸 적이 언제였을까? 없다. 지금이 그 처음의 시작이다.




집에 있으면서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 집안의 내 공간들을 돌아보며 책장에 꽂힌 읽지 않은 책들을 뒤적였다.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아무것에게나 함부로 맡기지 말아라
술한테 주고 잡담한테 주고 놀이한테
너무 많은 나를 주지 않았나 돌아다 보아라

가장 아깝고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시간을 자기 자신한테
주는 데 주저하지 말아야 할 일이다
그것이 날마다 가장 중요한
삶의 명제요 실천 강령이다.


연두색을 좋아하는 아이가 떠올라 늦여름에 구입한 나태주 시집이었다. 손에 쥐기 가벼운 책을 골라 아이 학원 끝나기를 기다리며 페이지를 넘기다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꼭지를 접하자 무거워졌다.

사람들 관계 속의 나만이 내가 아니었다. 관계에 의존하며 나에게 나를 주지 못함이 안타까웠다. 관계 맺기를 좋아하지만 먼저 손 내밀지 않는 소극적 외향형보다는 혼자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나를 돌아보는데 적극적인 내향형이 편한 나 역시 나였다.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지금 이 시간을 갈구하던 나를 몰라줘서 미안했다.

그동안 너무 바쁘게 지냈다. 아니 너무 바쁘게 놀고 소비했다. 내가 좋아서 한 일들이고 만남이었지만 굳이 내가 아니어도 됐다. 내가 덜 해도 됐다. 그 속에 내가 없어도 됐다. 꼭 누군가를 마주하지 않아도 됐다. 이제는 나를 돌아보고 내 소리를 들어줄 때도 됐다.

만남을 끝내고 돌아오던 충만함은 사실은 날아가지 않게 꼭 쥐고 있는 풍선이었다. 내 에너지를 그만큼 쏟았으니 살기 위해 어거지로 부풀린 공갈빵이었다. 그러니 다시 채우기 위해 너무 많은 나를 주었다.

이제는 좀 쉬면서 나에게 거름을 주자. 그리고 나면 언젠가 충만해질 거다. 나의 초록으로, 다시.



[작은 마음]


너 지금 어디쯤 가고 있니?

너 지금 누구하고 있니?

너 지금 무엇 하고 있니?


너 지금 어디서 누구하고

무엇을 하든지 네가

너이기 바란다

너처럼 말하고 너처럼 웃고

너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랑

너처럼 잘 살기 바란다


이것이 나의 뜻

너를 사랑하는 나의

작은 마음이란다.


며칠 후 잠자리 대화...
나 "자기야, 나 집에 있으니까 어때?"
신랑 "..."
나 "퇴사하고 집에 있으니까 어떠냐고"
신랑 "집에.. 있구나......."
고마워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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