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다고 소문 좀 내봤습니다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 김상현
"여보세요"
"괜찮아?"
평소에 많이 의지하고 나를 챙겨주는 언니의 전화였다. 지인들과의 단톡방에서 요 근래 아이 때문에 힘들다는 하소연을 몇 차례 늘어놓았고, 전날 오전에 아이에게 했던 몹쓸 말을 전하고 사라졌으니 걱정 됐나 보다. 언니의 첫마디에 울먹이며 '나 갱년기인가 봐'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다. 언니의 갱년기를 가장 옆에서 봐온지라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거 같았고 실제로 그러했다.
아침부터 아이와 죽네 사네를 주고받고 방전된 날은 할 일이 유난히도 많았던 바쁜 월요일이었다. 오전 방과 후 수업을 마친 아이와 함께 독서모임에 가야 했고, 피아노 학원과 안과검진도 데려가야 했다. 작업하던 결과물의 최종본을 공유하기로 한 날이었고, 매일 루틴으로 인증해야 할 것들이 수두룩했다. 오전에 사달이 벌어진 후 침대에서 누워 우는 와중에도 사정이 생겨 못 간다, 못 한다, 못 보낸다, 죄송하다는 연락을 남겨야 했다.
다음날 언니의 전화를 기점으로 전날 연락한 지인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하며 갱년기가 온 거 같은데 좋은 방법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이게 뭐 좋은 일이라고 여기저기 이야기하냐 싶을 수도 있지만, 감출일도 아니니 지인찬스를 쓰고자 했다. 게다가 성숙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자마자 갱년기를 맞이하는 블랙코미디를 찍는 건 인생 2회 차도 NG 없이 가기는 어려울 거다. 내 상태를 인지하자 불안도가 낮아지며 다소 안정되었다 해도,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갱년기를 넘어 성숙해질 수 있을지 막막했다. 그래서 소문을 내고 도움을 얻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답변들은 크게 와닿지 않았다. 용기 내어 소문은 냈지만 깔끔하게 해결이 안 되다 보니 괜한 짓을 했나 싶고, 혹시라도 너무 많은 TMI로 괴롭힌 건 아닐까 걱정도 됐다. 그러다 보니 점점 지인들과 연락이 줄어들었다.
그렇게 집에서 책을 읽으며 자발적 은따생활을 하던 중, 친한 지인이 아이가 좋아할 오로라 불멍을 구매했다며 여행을 가자며 전화했다. 거절할 핑계를 찾지 못해서 그러자고 했지만 마음이 동하지는 않았다. 아직 사람들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니, 갱년기 극복 방안과 관련 없는 여행에 에너지를 쏟고 싶지 않은 게 솔직한 내 마음이었던 거 같다. 아이를 재우며 어떻게 거절할지 고민했고 잠든 아이 곁을 나와 책을 읽다가 들키고 말았다.
잘 버텨줘서 고맙다는 말. 고생했다는 말. 따뜻하게 입으라는 말. 그 하루가 힘들어서였을까.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았다. 어쩌면 우리는 거창한 위로보단 고맙다는 말 한마디,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생각해 주는 말 한마디가 필요했던 것이 아닐까.
그저 누군가에게 고민을 얘기하는 것만으로도 쌓여있는 어떤 것들을 털어내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일까.
<내가 죽으면 장례식에 누가 와줄까 중 말 한마디>
지인들에게 하고 얻고 싶었던 것은 정보가 아니었다. 해결책이 아니었다. 경험담이 아니었다. 내가 던진 물음부터가 틀렸다. 다시 물어보고 싶다.
"나 갱년기 인가 봐요.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괜찮아지겠죠?"
'괜찮아?'라는 전화가 그 답이었고, 아직 갱년기를 경험하지 못한 지인들의 염려와 응원이 그 답이었다. 갱년기를 넘긴 언니들의 이해가 그 답이었다. 그리고 여행을 함께 가자는 지인의 마음 역시 그 답이었다. 그렇게 나를 위로하고자 하는 그 마음들이 있었는데 헤쳐나갈 방법만을 찾느라 미처 몰랐다. 아이를 데리고 지인들과 다녀온 여행에서 장작불에 오로라 불멍을 던지고 그보다 따뜻한 온기를 느끼고 돌아왔다.
소문내길 잘했다.
며칠 후 잠자리 대화...
나 "자기야 난 다시 태어나도 여자로 태어나서 자기랑 결혼하고 싶어. 자기는?"
신랑 "난 여자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어."
공무원 국어 시험엔 주제파악이 없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