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였다
적정한 삶 - 김경일
바람은 바람일 뿐, 다음날 아침부터 아이의 짜증을 듣고 나니 뭔가 끊어지는 거 같다. 그렇다고 전처럼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게 아니라 눈물이 난다. 터져버린 눈물과 터져버린 입. 못할 말을 한다.
너 도대체 왜 그래?
엄마 죽을 거 같아.
너 이러면 엄마 진짜 못 살겠어.
엄마 죽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더 무슨 말을 한 거 같은데 기억이 안 난다. 내가 말할 때마다 아이의 "나도 그래!"라는 외침에 "그럼 너도 죽고 나도 죽어야겠니?"라는 소리를 하고 방문을 잠그고 들어와 버렸다. 펑펑 울다 신랑에게 전화하고 하소연을 해도 가라앉지 않는다. 다른 날과는 다르다. 계속 가라앉고 더 울고 싶다. 무기력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방문을 긁는 소리 몇 차례에 몸을 일으켜 보니 방문 틈으로 노란 색종이가 보인다.
아이의 마음이 담긴 편지를 보는 순간 나 뭐 하는 짓이지 아차 싶었지만 역시나 기분이 올라오지 않는다. 아이를 불러서 안아주고 엄마도 사랑한다고 말해도 힘은 안 나고 여전히 침대에 누워서 울고 싶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는 신랑의 말을 기억하며 그냥 그대로 두 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는 혼자 간식을 꺼내 먹고 혼잣말 아닌 혼잣말을 큰소리로 하고 책을 가져와 옆에 눕기도 했다가 종이접기를 한다.
그런 아이를 보고 여전히 가라앉아있고 자꾸 눈물이 나는 나를 보면서 깨달았다. 이건 내가 나를 제일 사랑해서도, 내 중심이 흔들려서도, 아이가 말을 안 듣고 짜증을 내서도 아니다.
나 갱년기구나.
그래 45살 충분히 그럴 수 있는 나이였다.
그 모든 게 설명이 되었다.
그렇게 인지하고 나니 깊고 두껍게 낀 연무가 점점 걷히며 모든 정황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너무 울어서일까 머리가 깨질 거 같다. 여전히 입꼬리를 들어 올릴 힘은 없어서 아이에게 웃어주지는 못했다. 결국 밥을 먹고 타이레놀 한 알을 털어 넣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유아기를 제외하고는 평생에 낮잠을 잔 시간이 손에 꼽을 만큼 낮잠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오늘은 예외였다. 자려고 했다기 보단 눕고 싶었는데 눈을 뜨면 한 시간이 지나있기를 3번 반복하자 신랑이 왔고 활기가 따라왔다.
신랑이 가져온 케이크를 셋이 나눠 먹고 오늘 처음으로 눈과 입이 진심으로 웃으며 목소리에 생기가 돌았다. 아이 역시 물을 머금은 잎사귀처럼 연두빛을 찾았다. 케이크를 먹고 괴물놀이하자는 아이의 말에 같이 침대로 가서 아빠 괴물에게서 아이를 보호해 주는 엄마가 되었다.
셋이 함께 분리수거를 다녀와서 양치하고 잠이 들었다.
내 손을 잡고 잠든 아이의 작은 손이 소중하다.
이제 갱년기를 현명하게 이겨내서 성숙한 어른이 되는 플랜을 짜봐야겠다.
내가 갱년기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달라졌다.
보이는 것들, 느끼는 것들, 그리고 생각하는 것들이 예전과는 다른 속도로 다가온다. 모든 상황들이 너무 빨리 지나가서 붙잡을 수 없다는 무기력함과 미친 듯이 달려드는 것들을 피할 수 없다는 두려움, 피했어야 했다는 후회들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불안에서 기인했던 것이다. 나의 불안은 바이러스처럼 아이에게도 전염이 되었고 우리는 그렇게 불안한 아수라장을 겪었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은 그의 저서 적정한 삶에서 불안은 감정 중에서 가장 전염 속도가 빠르고 불안은 후회와 무기력을 낳는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불안은 불확실하고 모호할 때 확장된다고 한다. 불확실할수록 불안은 커지고 반대로 확실하다는 느낌이 들면 불안은 감소한다고 설명한다. 그리고 위로해 준다. "당신의 의지를 과신하지 말길 바란다. 강한 의지력으로 감정을 다스리려고 애쓰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자신을 탓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말고 상황을 조금만 변화시키자. 감정 정리는 의지력의 몫이 아니다. 이는 감정의 파도로 고통받고 있는 현대인들에게 인지심리학이 전해 주는 작은 지혜다."
갱년기를 인지하기 전의 짜증과 무기력은 이유를 알 수 없었기에 불안을 부채질했고, 해결할 수 없는 불확실성으로 인해 내 심리 상태는 더 극단적으로 치달았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나의 상태를 인지하고 인정하기까지 한 달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이라도 받아들이고 나니 변화가 보인다.
아이의 행동을 보는 시선에서 조급함은 어느 정도 사라졌고 아이도 엄마의 변화를 느낀 듯이 좋아지고 있다. 여전히 짜증이 올라올 때도 있지만 원인을 알기에 불안도가 낮아졌다. 그리고 문제의 원인이 아이보다는 스스로에게서 찾게 되니 "내가 아이를 잘못 기르지 않았구나"하는 안도감과 낮아진 엄마 자존감이 회복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의 상태를 마주하고 나를 오롯이 바라보고 보듬어 주게 되었다.
나는 엄마이기 이전에 한 사람이다. 나만의 감정이 있고 나만의 생각이 있고 나만의 호르몬이 있다. 내가 지금 어떤 감정인지, 어떤 생각인지, 어떤 상태인지를 충분히 생각했으면 좋겠다.
나는 나, 아이는 아이, 그러나 우린 가족! 오늘도 나에게 되뇐다. 그리고 이 또한 지나가리라는 확실한 답을 가지고 있다.
며칠 후 잠자리 대화...
나 "성숙한 어른이 돼서 꼰대 노인이 되기 싫어. 자긴 어떻게 늙고 싶어?"
신랑 "늙기 싫어."
...... 나도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