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아수라장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아수라 왕이 될 것인가, 제석천이 될 것인가?

by 사리

나는 왜 너의 손을 놓지 못했을까?


근 한 달여간 아이와 함께 허리케인에 휩쓸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버텨내고 있다. 살기 위해 서로를 붙잡았지만 오히려 여기저기 부딪치며 서로를 잡으려는 건지 상처 내려하는 건지 치열한 관계를 맺어왔다. 그렇다고 그 손을 놓고 각자 살자고 하기에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친 아이의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아니 그래서 어쩌면 더 그 손을 꽉 잡고 손이 아닌 목줄을 잡고 끌고 가듯이 아이를 끌어안으려 했던 거 같다.


근래 들어 도무지 이해 안 되는 아이의 행동과 말에 더 많은 지적과 잔소리를 하게 되고, 예전과는 달리 돌아오는 반발에 아이를 마주하며 웃는 시간이 점점 잦아들었다. 하루 일과의 끝은 화내다 지치고 후회하기를 반복하다 소멸되듯이 잠이 들었다.

아이 역시 이상징후를 보였다. 손끝을 물어뜯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면서 뭔가 불안하고 불만이 생긴 적신호를 눈치챘지만 빨리 멈춰줘야 한다는 생각에 지속적으로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단속을 했다.

여전히 아이의 손끝은 입을 향한다.


처음에는 무엇 때문에 아이가 이렇게 반항심이 커진 건지, 왜 이러는 건지 원인을 아이에게서 찾으려 했다. 수많은 육아서를 읽고 주위 아들 셋 맘을 비롯한 아들 맘들을 만나서 조언을 듣고 위로를 받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점점 세지는 강도와 늘어나는 빈도에 지쳐 날카로워진 화살은 아이를 맞추고 부메랑처럼 돌아와 나를 관통한다. 남는 건 나를 잠식해 가는 상처와 점점 곪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다.

어떻게든 잘해보려는 헛발질과 아무렇지 않은 척 끌어올리는 에너지에 결국 금이 가버린 가면을 쓴 망가진 마리오네트인 나를 마주한다. 내 인생 최악이다.

출처 픽사베이


며칠 전 동생과 엄마와 이야기를 할 때도 나는 그냥 웃으면서 너무 힘들다고만 했지 사실 늪에 빠진 거 같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을 꺼내지 못했다. 말을 하면 정말 늪에 가라앉을 거 같아서였을까. 어릴 때부터 힘든 일을 말하지 않던 습관 때문이었을까. 큰딸, 큰언니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까. 솔직한 조언을 감당하기 힘들어서였을까. 사실 그냥 위로받고 싶었는데 말을 꺼내지 못했다.

분명 엄마와 동생은 내 편이고 나를 안아주었을 텐데 말을 꺼내면 판도라의 상자가 열려버릴 거 같았다. 그리고 그 세상을 직면할 힘도, 자신도 없었고 희망만이 남은 상자를 끌어안을 여력도 없었다.


그러던 중, 동갑내기를 기르는 동생의 요즘 생활을 듣다가 스스로를 성숙한 어른이라고 깨달았다며 웃는 모습이 많이 부러웠다. 성숙한 어른. 한 번도 나한테서는 느껴보지 못한 두 단어이자, 굳이 내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건 아니라고 생각했던 나와는 거리가 있는 삶이다. 사실 내가 영유하고 만족하며 살던 내 모습은 성숙함과는 거리가 있는 철이 없는 나이가 많아서 어른이 된 어른사람이다. 편하게 웃는 동생을 보니 아수라장 같은 내 생활이 떠오르면서 이제 이렇게 살기 싫어졌다.


주말 외출, 역시나 아이와 부딪치게 되었고 결국 이렇게는 같이 못살겠다고 던진 못할 말에 자기도 그렇다는 아이의 대답을 견디지 못하고 자리를 일어나 나와버렸다. 좋아하는 카페에서 좋아하는 음료를 시켜놓고 어찌해야 할까, 진짜 가방을 싸서 주말 동안 나와버릴까, 무엇들을 챙길까, 내일 아이의 스케줄은 어쩌지. 홍수처럼 밀려드는 고민을 막은 건 신랑의 전화였다.

자기한테 너무 미안해.
근데 나 정말 버틸 수가 없어.
나 너무 힘들어.
나는 나를 더 사랑하나 봐.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철없는 아이가 커서 세상은 같이 살아간다는 것을 아는 어른이 되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나 보다. 어느새 엄마가 되고 보니 내 세상은 나를 중심으로도, 아이를 중심으로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돌지 않는 카오스 그 자체다.

카페에 찾아온 신랑과 아이를 따라 같이 집에 돌아와 잠이 들었지만 다음날 또다시 반복되는 상황에 결국 화를 다스리지 못하고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침대에 누웠다. 그나마 아이에게 날이 선 화를 내지 않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거실에서 성질을 부리는 아이의 울부짖음과 달래는 신랑의 소리, 그리고 흐르는 눈물. 잠시 후 들어온 신랑을 끌어안고 말했다.

"나 성숙한 어른이 되고 싶어."

말없이 다독여주는 손길과 완벽한 사람이 어디 있냐는 말. 고마워.

내일은 부디 덜 힘든 날이 되길...


며칠 후 잠자리 대화...
나 "성숙한 어른이 되기 위해 플랜을 짜야겠어."
신랑 "성숙한 거 필요 없어. 돈 많은 게 중요해."
머냐 너......




阿修羅場 아수라장 (표준국어대사전)

1. 명사 싸움이나 그 밖의 다른 일로 큰 혼란에 빠진 곳. 또는 그런 상태.

2. 명사 불교 아수라왕이 제석천과 싸운 마당.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