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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리 May 20. 2024

어머님, 저 놀고 싶어서 카페 시작하는 거 아니에요

20240520

최근 한 달 사이에 새로운 신분이 생겼다. 개인사업자. 그것도 동생과 함께 공동사업자로 카페주인장이 됐다. 오랜 시간 계획하고 준비해서 시작한 게 아니어서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초등학교 2학년 아이의 돌봄이다. 아직은 엄마의 손이 필요하고 엄마를 찾을 나이라 걱정을 했는데, 의외로 아이는 엄마가 돈을 번다고 좋아한다. 심지어 사장님이라는 말에 온 세상을 얻은 듯 행복해 보인다. 동갑내기 조카의 반응 역시 매한가지니 둘도 없는 베프가 맞나 보다.

카페 오픈을 열흘 정도 남기고 같은 단지에 살고 계신 어머님께 아이를 부탁드렸다. 우선 신랑을 통해 물꼬를 는데 어머님의 반응이 생각과 달리 시원하지 않다. 평소 어머님을 생각하면 흔쾌히 아이를 돌봐주신다고 할 줄 알았는데 상황이 되면 맡아 주시겠단다. 주말에 동생과 엄마와 카페에 비치할 가구를 구매하고 늦은 시간에 시댁으로 향했다. 어차피 신랑과 아이가 기다리는 중이어서 가야 했는데 발걸음이 편치 않다.

도착 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카페 자리 잡을 때까지 월, 화, 수요일 3시 30분부터 아이를 부탁드린다고 어렵게 입을 열었다. 어머님은 아이의 하교 시간과 이후 스케줄을 물으시며 돌봐주시겠다고 하셨다. 아마 신랑이 아이의 하교시간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이야기를 했나 보다. 정말 감사드린다 말씀드리고 일어서려는데 어머님이 말씀을 시작하셨다.




어머님은 결혼보다는 사회생활을 하고 싶던 여성이셨다. 이런 어머님을 걱정한 부모님께서 빨리 혼처를 구해 결혼을 시켰고 아이 둘을 2년 터울로 낳으셨다. 둘째가 돌이 지나고 사회생활을 다시 할 생각을 하셨다. 마침 시어머님과 함께 살았기에 아이들을 부탁하셨다. 하지만 아버님의 반대와 시어머님의 설득으로 결국 주부로 아이 둘을 기르며 아버님 월급으로 생활을 하셔야 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사회생활을 하지 않고 아이 둘을 건사하며 기른 게 정말 잘한 일이라고 하셨다. 얼마 전 아가씨도 엄마가 일 안 하고 잘 길러줘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했단다. 하고 싶어서 일하는 것도 좋은데 나의 연두빛깔아이가 많이 걱정되신단다. 마지막으로 아버님 월급으로 아끼며 살다 보니 살아지더라는 말씀도 셨다.

결국 나도 이야기를 꺼냈다.

"어머님, 저 놀고 싶어서 카페 하는 거 아니에요. 해야 해서 하는 거예요. 저희, 제가 벌어야 생활이 돼요. 지금까지 제가 하던 일들이 그대로 갈지 새로운 길로 가야 할지 결정을 해야 할 때가 왔어요. 그래서 제 카페를 하는 거예요. 멈출 수는 없잖아요. 그런데 저 정말 출근하는 거 생각만 해도 싫어요. 이걸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자다가 악몽도 꿔요. 저도 나가서 일하기 싫어요. 근데 시작했으니 잘해보려고요."


카페 창업이 내가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벌고자 함은 맞다. 하지만 좋아하는 일이라고 매일 출근해서 늦게까지 일하고 싶지 않다. 사랑하는 아이가 원할 때까지 하교를 지켜주고 오후 시간을 보내고 싶다. 주말에도 카페에 나가야 하고 여가 생활을 하고 여행 일정을 세우는데 제약을 받는 것도 싫다. 아침에 아이 등교 시키며 석촌 호수를 두어 바퀴 돌고 집에 와서 스트레칭을 하고 씻고 난 후의 개운함이 좋다. 남은 시간을 책을 골라 읽고 글을 쓰는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게 흘러간다.

이 모든 선택의 주체는 나다. 결심도 결정도 남이 아닌 내가 했다. 카페를 알아보며 너무 하고 싶어 안달복달했던 내 모습을 기억한다. 동생의 도움에 넙죽 손을 잡은 것도 내 손이다. 그렇게 일을 벌이며 별다른 말을 안 했으니 하고 싶어서 한다고 생각할 만도 하다. 하겠다고 하면 말릴 거 같아 결정하고 말씀드린 것도 한몫했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인데 어찌하랴. 잘해야지!


다가올 미래의 출퇴근이 걱정되지만 준비하는 과정이 설레고 즐겁다. 내 카페에서 하고 싶은 이벤트를 진행할 수 있다는 사실은 굉장히 매력적이다. 이벤트 호스트로 접하던 사람들을 이젠 카페 오너로 만난다는 건 또 다른 성취감이다.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건 내가 꽤 잘하는 일이다. 사십 대 중반을 넘은 나이에 안 해본 일을 한다는 것도 멋지다. 15년을 월급쟁이로 살았는데 내 사업을 한다는 것도 기대된다. 카페를 창업하고 운영하는 일로 글을 쓸 수도 있을 거 같다. 이 모든 것을 솔메이트라 생각하는 동생과 함께하니 한 움큼의  의미가 더해진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이유 뒤에는 수만 가지 의미가 있다. 물론 그 많은 의미를 다 찾지는 못했지만 앞으로 동생과 함께 하나씩 채워가야겠다. 부디, 우리가 서로에게 더 의미 있는 존재가 되는 여정이길 바란다.



#한달매일쓰기의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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