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이상한 남자

by 사리

이상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 남자와는 성당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에서 만났습니다. 연수 봉사자였던 여자는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실천하는 마음으로는 연수생이던 남자를 살펴주다가 자꾸 다가오는 남자에게 끌리며 둘은 아름다운 사랑에 빠져 결혼했습니다. 는 동화에서나 나오는 이야기다.


팩트 1. 난 봉사자, 넌 연수생

30대 초 중반 이것저것 놀 거 다 놀고 나니 하느님의 부름이라 쓰고 엄마의 성화에 성당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연수에 참가하게 되었다. 3박 4일의 연수기간 동안 뛰쳐나가기를 340번 결심만 하다 마지막 파견미사에서 하느님의 뜻을 알게 되었다. 그래! 지금 남자 손을 잡고 성가를 부르는 이것이 하느님이 나를 여기로 인도하신 이유였어! 함께 손잡고 성가 부를 수 있는 남자를 만나라는 하느님의 깊은 뜻을 깨달은 후, 남자를 만나기 위해 연수 봉사자를 지원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봉사자는 소수, 연수생은 다수, 그리고 연수봉사자는 연수생을 (돌) 보는 역할이다.

그렇게 나의 첫 연수가 시작되고 간절한 기도 덕일까 진정 하느님의 뜻이었던 걸까? 나의 그룹에 남자 연수생이 2명이나 있었다. 심지어 연하라고 부러움도 받았다.


팩트 2. 그리스도인의 사랑

아무리 남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연수 봉사라는 것이 그것 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준비를 하면서 내가 받은 봉사자들의 사랑과 돌봄, 그리고 그 과정에서 느낀 하느님의 사랑을 전달하고 싶었다. 그리고 연수생들은 다들 나보다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오빠바라기인 나에겐 남자로 보이지도 않았다. 그래서 열심히 착한 봉사자 역할에 충실할 수 있었다. 연수가 끝나고 한 달 후 애프터 모임에서 전체 150여 명의 연수생 중에서 소감을 발표할 2명의 연수생을 자원받았고 나의 지극 정성인 봉사 덕인지 우리 그룹원이 발표를 하겠다 손을 들었다.


팩트 3. 연수생이던 남자를 살펴주다

발표 준비를 하며 원고를 작성하는데 왜 우리 집 앞에 오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나도 봉사자는 처음이니까 감기약 때려 먹고 카페로 향했다. 근데 이상하다. 왜 글을 쓸 생각은 안 하고 잡담만 하는 걸까? 비도 오고 몸도 아픈데 집에 가고 싶다. 하지만 난 봉사자, 넌 연수생. 무튼 그렇게 비 오는 창밖을 보며 한참을 수다를 떨다가 결국은 초고도 작성 못하고 근처 지하철 역까지 바래다주었다. 애프터 모임까지는 착한 연수 봉사자에 충실해야 하니까 빗길 운전을 감내했다. 그리고 그 연수생이 멋지게 소감을 발표하고 나의 첫 연수봉사는 공식적으로 마무리가 되었다.


팩트 4. 자꾸 다가오는 남자

남자가 관심 있어하던 귀엽고 어린 연수 봉사자와 연결시켜 주고 싶은 오지랖에 홀리하게도 성지방문 약속을 잡았다. 당일에 일이 생겼다고 눈치있게 빠지려는 계획이었지만 그 동생에게 갑작스러운 일정이 생기며 결국 남자와 둘이 가게 되었다. 남자차로 도착한 성지에서 기도도 하고 콧바람도 쐬고 돌아오는 길에 서로 신상털이를 하다 술이야기가 나오니 신이 났다. 남자가 나의 최애 술인 공부가주에 관심을 보이니 더 신이 난 것 역시 팩트다. 예의상 다음에 누나가 쏜다는 말에 남자는 오늘 저녁에 먹자며 차를 두고 가기 위해서 남자 집으로 향했다. 그런데 잠시 집에 들어오란다. 이건 무슨 시추에이션? 하지만 당황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따라 들어갔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아무 일도 없이 곧 나왔다. 서초동의 방 5개짜리 집을 자랑하고 싶었나 보다 하기로 했다.


나는 이날 결혼 지향을 빌었다! 초도 밝혔다!

며칠 후 직장 동료들과 우연히 들른 와인바가 남자 집 앞이었고 “올래요?” 던진 말에 함께한 남자는 직장 동료들과 나를 챙겨서 택시 태워 보내준다. 그 후에도 우연인지 의도인지 몇 번의 만남을 이어갔다. 결정적으로 나의, 우리 둘이 아니고, 여름휴가로 프랑스 여행을 떠나기 전날 만나서 알람 시계며 여행에서 필요한 물품을 선물하더니 귀국 날 공항으로 데리러 왔다.


착각 1. 아름다운 사랑 말고 치열한 사랑

이 남자 진짜 이상하다. 그리고 끌린다. 근데 말을 안 하니 성격 급한 내가 졌다.

“우리 사귈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어... 미안해”

이 이상한 남자 내 승부욕 버튼을 누르셨습니다.


‘그래 너 어디 나한테 결혼하자고 안 하나 보자!’

팩트 5.

그래서 둘은 결혼해서 떡두꺼비 대신 원숭이 같은 아들을 낳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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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