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남자, 갑자기 왜 이래?
나는 퇴근 시간도 지났는데 아직도 일을 하고 있는 그 남자를 보면서 ‘오늘 야근하나?’라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퇴근 시간이 되면 그 남자는 칼같이 퇴근할 때도 있었고 오늘같이 야근을 하는 적도 꽤 많아 보였다. 하지만 내가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 문자 하나가 왔다.
“같이 술 한 잔 할래?”
나는 첫 사회생활인데 나이가 같은 동기가 생겼다는 게 내심 좋아서 그동안 그 남자랑 친해지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한 끝에 서로 사적으로 문자 주고받는 사이까지 발전했다. 하지만, 이 정도로 발전하기까지 나름 많이 힘들었다.
나는 그 문자를 받자마자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무슨 일이 있나?’였다. 왜냐면 그 남자가 나한테 먼저 뭐를 같이 하자고 한 게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어느 지하철역 출구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지하철을 탔다. 사실 집에서 쉴 생각으로 빨리 퇴근한 거였지만, 그 문자를 받고 바로 그 남자를 보러 간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모르게 그 남자한테 호감이 많이 생겨서 그런 것 같다.
지하철 출구 바로 앞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저 멀리 계단을 올라가고 있는 그 남자가 보였다. 나는 갑자기 장난을 치고 싶어서 몰래 그 남자 뒤를 따라서 올라갔다. 계단 중간까지 갔는데도 내가 뒤에 있는 걸 모르는 것 같아서 코트를 입고 있는 그 남자의 등을 툭 치면서 “야!” 하고 소리쳤다. 그 순간 뒤돌아보는 그 남자의 얼굴이 지금까지도, 그 이유가 정말 뭔지 모르겠지만, 기억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 지하철역 근처에 술집이 많아서 그 남자가 아무 데나 들어가자고 해서 한 술집에 마주 보고 자리를 잡았다. 그런데 그 남자의 얼굴이 오늘따라 많이 지쳐 보이고 힘들어 보이는 것이었다. 오늘 유난히 회사에 일이 많아서 정신이 없었던 날이라 힘들어서 그렇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회사에서도 일 얘기만 하고, 일부러 그러는 건지 사적인 얘기는 거의 하지도 않았던 그 남자가, 오늘 회사에서 일이 많아서 힘들었다는 얘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 남자와 둘만 같이 술을 마시는 건 처음이었는데 그 남자가 유난히 힘들어 보여서 보조를 맞춰주느라 한잔 두 잔 따라서 마시다 보니 점점 취기가 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너무 늦었다며 이제 집에 가자는 그 남자와 술집을 나왔다. 둘이 같이 걷다가 언제나 그랬듯 그 남자가 무심하게 지나가는 택시를 잡더니 먼저 가라는 것이었다. 술을 꽤 많이 마셨던 나는 정신이 거의 비몽사몽 한 상태였다. 택시를 타고 무심코 뒤를 돌아보니, 그 남자가 택시가 출발할 때까지 나를 계속 쳐다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그 남자의 표정이, 마치 내게 할 말이 있는 듯했던 그 표정이,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도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