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 앞에서 자기소개를 해 본 지가 대체 얼마나 되었을까?
회사를 다닌 지도 오래되었고, 요가원을 운영했을 땐 사람들은 이미 나를 알고 오는 경우가 많았다.
오랫동안 '저는 누구누구입니다.'라는 말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일은 참 모른다. 얼마 전 자기소개를 할 날이 오고야 말았으니.
써두지 않으면 날아가버릴 것 같아서 일상의 것들을 기록하고 있지만, 마음 한편에는 언젠가 끄적이던 소설 몇 개를 완성시키고 싶었다. 그런데 속에서 보글대는 것들을 글로 막상 꺼낼라치면 전혀 다른 것들로 치환돼서 나오질 않나, 갑자기 구리구리한 스토리가 되질 않나. 그런 식으로 해서 이제까지 한 번도 단편소설 하나를 완성시킨 적이 없었다.
한 편이라도 꼭 완성해 보리라 하고 덜컥 신청해 둔 <단편소설 쓰기> 수업이 얼마 전 개강이었다.
새롭게 배우러 간다는 것은 설레고 즐거운 일이지만, 혹시 있을지 모를 '자기소개' 때문에 며칠 전부터 두통이 생겼다. 이 수업을 한 달을 넘게 기다렸건만 취소할까..? 잠시 고민했는데 역시 해보지도 않고 취소를 한다는 건 있을 수 없었다. 나 그렇게 용기 없는 사람은 아니잖아. 스스로를 다독이다 그날이 왔다.
첫 시간이기도 하고 분명 그것을 하겠지 하면서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대를 저버리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글로 내라고 하면 좋을 텐데. 머릿속이 정리가 아무것도 되지 않은 상태로 교실로 들어갔다. 수강인원 14명이 모두 출석했고 현역 소설가이신 선생님이 들어오셨다. 책상은 부담스럽게도 ㅁ자 모양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선생님은 초반에 수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다가, 자기도 싫어하지만 하긴 해야겠다며 자기소개를 시키셨고 소설반이니까 소설이야기 중심으로 하라고 했다.
아아, 가나다라 순으로 시키는 건 왜 그런 걸까.ㄱ으로 시작하는 성을 가진 나는 두 번째로 자기소개를 하게 된 것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자기소개는 '망'했다.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다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분명 헛소리를 했다. 굳이 이야기하지 않았어도 좋았을 전공이 일어였다는 이야기, 전공 때문은 아니었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를 잠시 덕질했었다는 쓸데없는 이야기, 그리고 그 보다 더 쓸데없는 이야기. 두서없이 자기소개를 꺼냈고(엄연히 말하자면 자기소개라고 하기 어려운) 얼굴이 빨개졌다. 귀까지 빨개진 것 같았다. 다행스러운 것은 내가 야구모자를 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그렇다. 가능하다면 그 모자 속으로 들어가고 싶었다.
그 뒤로 다른 사람들의 자기소개가 이어졌지만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내리느라 의도적으로 다른 생각을 해야만 했다. 그렇게 2시간이 넘는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바보 같던 나를 자책하며 이런 질문이 머릿속에서 계속 맴돌았다.
'자기소개가 이렇게 어려운 것이었나? 내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었나?'
분석모드가 되어 곰곰이 생각해 봤더니 몇 가지 답이 도출되었다.
나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게 어려운 사람이 아니라 '자기소개'를 하는 것이 싫었던 것이고,
그 이유는 현재 내가 어느 곳에도 속해있지 않으며, 나 자신조차도 나를 어떻게 소개해야 하는지 감이 오지 않은 상태였다는 것이다. 나는 지금 여백 위를 걷고 있는 사람이니까.
정확하게는 지금의 나를 소개할 문구가, 문장이 없었다.
아까 말했던 것은 모든 게 과거형이었다. 대학에서 일어일문학을 전공했고, 어떤 작가의 책을 읽었고, 요가강사였고, 이런 것들. 이유를 알고 나니 머리가 띵해졌다.
집에 도착해서 쓰러지듯 침대 위로 몸을 던지고 2시간을 내리 잤다.
며칠이 지나고, 생각들이 정리된 지금은 자기 객관화가 어느 정도 되었다.
나는 그날 이렇게 이야기하면 좋지 않았을까.
"글 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서 소설에 대해 배우러 왔습니다.
단편소설을 몇 개 써봤지만 완성시키지 못한 채로 있었고, 완성하고 싶습니다."
이게 내 솔직한 '자기소개'이자, 마음이고 현재이다.
과거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삶은 축제다
-희노가
오늘은 '자기소개'를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