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페이지 유 Dec 13. 2022

참호 일기

이 또한 깨리니

2022. 11. 30.

북풍이 밤새 거세게 불었다.

어제보다 무려 15도나 떨어지면서 급격히 추워졌다.

오늘부터 난로에 불을 넣는다.


불을 넣으며 새벽꿈을 떠올린다.  너무 나쁜 꿈이었다.

어떤 불한당들이 집으로 몰려와 나를 제압하고 내 허리에 마취제를 주입했다. 정신은 온전한데, 몸은 꼼짝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그러자 곧 장기를 빼내겠다고 한다.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긴 했지만 그게 나의 일이 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었다.

무슨 일이든 할 테니 제발 살려달라며 애원하며 꿈에서 깼다.

꿈에서 깨고 나니 이게 꿈인 걸 알았다.  애원의 심장이 식지 않고 여전히 타오르고 있었다. 


꿈에서 깨고 나니 화가 났다.

애원하며 비굴하게 굴던 나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났다. 나쁜 놈들과 타협하려 했다니!

꿈에선 불한당들이 시키는 일은 뭐든 할 것처럼 무서웠다.

하지만 꿈이지 않은가? 꿈에선 죽어도 죽는 게 아니다.

그러니 죽을 때 죽더라도 기개를 한껏 펼치고 죽음을 택했다면 나 자신이 얼마나 자랑스러웠겠는가?

아이고, 억울해....  


이건 꼭 되씹어 볼 문제다.

우리 삶도 꿈과 같으니까.....




우리 삶은 어떤가?

우리 삶이 꿈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는가? 어떤 게 꿈인가?

우리 삶도 꿈과 같은 거라면 죽음에 대해 달리 생각해 볼 일이다.

죽음에 대해 달리 생각된다면 삶의 태도가 달라진다.


죽음의 순간, 나는 무엇을 후회할까?

 


꿈을 꾸고 있는 여러 암석들, 저 가운데 앉은 나도 아무 말이 없었다.


작가의 이전글 참호 일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