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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Sep 17. 2024

45. 사마타와 위빠사나 (1)

- 남방상좌부불교의 명상

초기불교와 남방불교의 관계


남방불교에서는 자신들의 불교가 붓다의 말씀이 그대로 전해진 초기불교라고 주장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가 알고 있는 남방불교의 수행법은 붓다 당시의 초기불교의 명상법이 아니다. 북방불교나 남방불교 모두 붓다의 후계자임을 자처하지만, 사실상 그 누구도 붓다의 수행법을 이어받지 못했다. 아니 이어질 수가 없었다.    

  

북방불교는 기원 전후해 인도에서 발생한 대승불교가 전해져서 주류를 이루었다. 사실 대승불교의 경전 대부분은 붓다의 친설이 아니다. 붓다께서 직접 설하신 것이 아니라, 후대에 와서 만들어진 경전이다. 그럼에도, 대승불교의 경전을 부정하지 않는 이유는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이 붓다의 말씀에 준한다고 믿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이유로 남방불교에서는 북방대승불교를 상대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남방불교 역시 붓다의 친설(親說)을 유지하고 있다고 하지만, 북방의 아함경전군에 해당하는 ‘니까야’ 역시 붓다의 친설이 그대로 전해졌다고 하기에 무리인 내용들이 많이 있다. 붓다 입멸 후 100여 년이 지난 후,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로 분열되고, 이 두 부파는 다시 여러 갈래로 분열되어 부파불교시대가 열린다. 이 말은 붓다 입멸 후, 불과 100여 년 만에 붓다의 말씀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는 시대가 열렸다는 의미이다. 이렇게 해석의 차이가 시작됐고, 점차 갈라져서 20여 개의 부파로 갈라진다. 결국 붓다의 친설을 해석하는 방식이 20여 가지에 달한다고 볼 수 있다.      


만약 붓다의 친설이 토씨 하나까지 그대로 전해졌다면, 여러 갈래의 부파로 갈라질 수가 없다. 붓다의 친설은 하나이며 한 갈래이기 때문이다. 이 시기에는 붓다의 친설은 글로 전해지지 않고 오직 암송으로 전해졌다. 그런데, 이 암송된 경전에 대해, 20여 개의 부파가 있고, 각자의 해석이 가미됐다면, 붓다의 친설 역시 어느 정도 왜곡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부파불교의 생성 자체가 남방상좌부불교가 초기불교가 아님을 증명한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붓다 입멸 후, 100여 년의 기간을 근본불교, 원시불교라고 하고, 그 이후의 불교는 근본불교와 구분하여 부파불교라고 칭한다.


동남아의 남방불교는 상좌부불교의 갈래 중 하나인 분별설부에 근원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많은 일파 중의 하나에 불과한 분별설부의 일파(一派)가 인도 남부의 스리랑카에 전해진 것이다. 더구나 스리랑카에서는 불교의 공백기가 존재한다. 전쟁으로 경전이 불타서 소실되고, 스님들이 도피했던 시절이 있었고, 다시, 미얀마에서 경전을 다시 들여온다.     


남방상좌부불교가 초기불교를 제일 많이 포함하고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많이 포함한다고 해서 초기불교를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사마타·위빠사나의 이론적 배경     


‘사마타·위빠사나’ 명상은 동남아지역에 널리 퍼져있는 테라바다불교 혹은 상좌부불교라고도 하는 남방불교를 대표하는 명상법이다.      


남방불교의 명상법인 사마타 위빠사나 명상법이 우리나라에 소개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물론 이전에도 남방상좌부불교를 공부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소개되고 대중들에게 알려진 것은 90년대라고 할 수 있다.     


남방불교의 수행법인 사마타·위빠사나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책은 대략 5세기경 스리랑카의 붓다고사라는 분이 지은 청정도론(淸淨道論)이라는 책이다. 현재 남방불교의 이론이나 수행법은 모두 이 책을 기본으로 해서 펼쳐진다. 또한 대념처경에 나오는 사념처를 가지고 위빠사나수행을 하게 된다. 그런데 이 대념처경의 역사는 의외로 오래되지 않다. 1905년 독일 출신의 나냐띨로까라는 스님이 빠알리 경전인 니까야에서 발췌하여 정리한 책인 ‘붓다의 말씀’ 가운데, 사성제의 도성제, 도성제의 팔정도, 팔정도의 정념(正念) 파트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삼학(三學)과 사마타·위빠사나 명상     


남방상좌부불교의 명상은 계·정·혜, 삼학(戒·定·慧, 三學)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첫 번째, 계(戒, Sīla)는 계율(戒律)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시대의 변천으로 옛날의 계율을 오늘날에 적용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기본적인 5계(五戒)를 제외하고는, 도덕적이고 절제된 삶이고 볼 수 있다.    

 

두 번째, 정(定, Samādhi)은 마음집중을 통해 번뇌 망상을 가라앉히는 명상법을 통해 얻을 수 있다. 정은 삼매(三昧)나 선정(禪定)의 상태를 말하는데, 어떤 한 대상에 마음을 집중해 나가는 사마타(Samatha)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이렇게 마음을 집중하면 마음이 고요해지고 청정해진다고 한다.    

 

세 번째, 지혜(慧, Paññā)는 계율로 청정해진 몸과 선정으로 고요해진 마음을 가지고 다시 몸과 마음을 관찰하는 명상법인 위빠사나(Vipassanā) 수행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본다. 위빠사나 수행이란 신·수·심·법(身·受·心·法)이라고 하는 몸, 느낌, 마음, 법을 관찰하는 사념처 수행을 통해, 끊임없이 생멸 변화하는 몸과 마음의 현상들을 관찰하여, 그 현상들에서 무상·고·무아라는 본성을 통찰하는 것이다.      


사마타(samatha, )와 위빠사나(vipassanā, )의 목적     


사마타를 통해 갈애(渴愛, taṇhā)를 제거하고, 위빠사나를 통해서 무명(無明, avijjā)이 제거된다고 본다. 갈애는 욕망, 욕구를 계속해서 추구하는 마음이고, 무명은 진리에 대한 무지이자 어리석음이다. 여기에서 진리란 연기설(緣起說)과 사성제(四聖諦)를 의미한다. 즉, 사마타를 통해 선정을 닦아 갈애를 가라앉히고, 위빠사나를 통해 지혜를 증득해서 무명에서 벗어나려는 것이다.      


사띠(Sati)     


남방불교의 이런 수행 과정을 관통하는 가장 핵심이 되는 단어는 사띠(Sati)이다. 이 사띠에 대한 설명과 해석은 다양하다. 그중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의미는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이고 북방불교에서는 ‘념(念)’이라고 하고, 서양에서는 ‘Mindfulness’라 한다. 빨리어 사전에서는 ‘사띠’를 ‘기억(인식, 의식)’과 ‘마음의 의도(주시), 주의집중, 깨어있음, 마음챙김, 정신 차리고 있음(憶念)’의 두 가지 카테고리로 해석한다.      

명상의 입장에서는 ‘현재 이 순간에 명료하게 깨어있는 마음’ 혹은 ‘정신을 세워 대상에 온전하게 주의를 기울이는 마음’을 의미한다. 즉 명상을 시작할 때, ‘정신을 집중하여 대상을 정확하게 알고 있는 마음’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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