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산에 다녀온 그 주말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우리는 인사동을 가기로 했었다. 시내에서 만나게 되니, 좋은 점이 있었다. 차를 가지고 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주차하려고 신경을 쓸 일도 없었고, 무엇보다 내가 운전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녀도 전철 같은 대중교통을 타고 다니는 것을 편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우리는 안국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오늘 하루는 그녀의 계획에 따르기로 했고, 점심을 먹고, 인사동을 걷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는 모든 동선을 그녀가 생각해 오기로 했다.
약속 시간에 거의 맞춰서 안국역 6번 출구로 나오니 아직 그녀가 도착하지 않았다. 곧 그녀에게서 문자가 왔다. 조금 늦는다는 것이다. 버스를 타고 오는데, 길이 좀 막힌다는 것이다. 대략 5분 정도 후에 그녀가 도착했다. 화사한 봄을 품은 것 같은 모습으로, 그녀는 미안함을 온몸으로 표현하듯 내게 다가오며 말했다.
“늦어서 미안해요. 밥은 제가 살게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많이 늦지도 않았는데요.”
“그래도, 점심은 제가 살게요. 지난번 강화도에서 저녁 사셨잖아요.”
“그랬나요?”
그렇게 우리는 그녀가 생각해 둔 식당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일식과 한식이 섞인 듯한 특이한 솥밥이었는데, 꽤 먹을 만했다. 그리고, 커피를 마시러 가기 전에 인사동길을 여기저기 걸었다.
사실 대학생 시절, 인사동을 즐겨 찾았다. 지금은 경인미술관이 있는 곳에 “문향(聞香)”이라는 전통찻집을 특히 좋아했다. 인사동의 미로 같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막다른 골목 끝에 있는, 열려있는 대문을 들어가면 아기자기한 정원의 찻집이 나왔다. 이곳은 원래 개화사상가인 박영효의 생가터여서, 오랜 고옥의 느낌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별로 알려지지 않아서, 이곳에 오면 무언가 한가하고 고즈넉한 느낌이 들어서 좋아했다. 서울 한복판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이 말 그대로 ‘향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들의 표현대로 봄, 여름, 가을, 겨울의 향기가 각각 달랐다. 그때의 인사동은 이 찻집처럼 조금만 골목으로 들어가면 고요하고 조용했었다.
30여 년이 지난, 2018년의 인사동은 변하지 않은 듯, 꽤 변해있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과거와 비슷했지만, 좀 더 세련돼지고 활기찬 느낌이었고, 꽤나 북적였다. 그리고 예전과 다른 점은 꽤 많은 외국인이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난 무슨 일본이나 동남아의 도시를 걷는 것 같았다. 간판만 한국말이지, 무언가 느낌이 우리나라이면서도 우리나라 같지 않은 느낌이었다. 인사동 쌈지길도 그때 처음 가보았고,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이 여기저기를 구경하며 풋풋한 시간을 가졌다.
사람의 마음은 늙지 않는가 보다. 우리는 나이를 잊은 채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어색한 듯 자연스러운 듯, 서로에게 느끼는 호감과 인사동이 주는 생경함이 우리를 대학 시절의 데이트를 다시금 느끼게 했다. 얼굴은 나이를 먹었지만, 표정은 나이를 먹지 않았다. 우리는 설레는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서로를 느꼈고, 친밀감은 커져갔다.
그렇게 우리는 인사동을 걷고 구경한 뒤,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하고 나니, 저녁 시간이 가까웠고, 그녀의 제안으로 종로 피맛골에 있는 유명한 판메밀집에 가서 가볍게 저녁을 먹고 헤어지기로 했다.
저녁을 먹던 중에, 그녀는 대학생 때 사귀던 오빠가 있었는데, 이곳에 자주 왔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러려니 하며 저녁 식사를 끝낸 후, 그녀를 버스정류장까지 바래다주는 길이었다. 무슨 얘기 끝에 그녀가 말했다.
“대학교 1학년 때부터 7년을 사귀던 오빠가 있었어요. 좋은 사람이었는데, 제가 방송국에서 시사다큐를 하면서 바빠지고, 밤도 새고, 또 술도 많이 먹고 그러니까, 제 걱정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싸우게 되고, 점점 멀어지게 되면서 헤어졌어요.”
“아~. 그래요? 젊은 날엔 누구나 아픈 기억이 하나쯤 있죠. 근데 그 친구도 힘들었겠네요. 젊은 시절엔 그런 일들이 쉽지 않죠. 훗훗. 그래도 다행이네요. 그렇게 헤어져서요. 그래서, 지금 날 만날 수 있는 거잖아요. 흐흐.”
“하하. 그런가요? 관점에 색다르네요.”
이런 대화를 하면서, 중년로맨스는 ‘이런 점이 다르구나’하고 느꼈다. 이 나이 되도록 한두 가지 사연이 없을 수 없었다. 나이를 먹으니, 서로의 과거는 존중할 수 있을 정도로 우리에겐 세월의 능숙함이 묻어 있었다.
그래서, 나도 전 여친 얘기를 담담히 꺼냈다.
“산에 들어가기 전에 사귀던 사람이 있었어요. 물론 그전에 헤어졌어요. 제가 차였어요. 그런데 제가 산에 들어가서 스님이 된 후에, 그녀도 몇 년 뒤에 산에 찾아와서, 결국 스님이 됐어요. 그리고 지금도 스님으로 잘살고 있을 거예요.”
그때 우리는 나란히 걷고 있었는데, 이 말이 끝나자, 그녀는 갑자기 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잠시 생각에 빠진 듯 땅바닥에 시선을 두고 나서, 나를 돌아보며,
“우리 이제, 이런 얘기는 하지 말죠.”
나는 좀 당황스러웠고, 한편으로는 억울했다. 우리가 나이도 있고, 먼 과거의 일이기도 하고, 그녀가 먼저 자신의 과거 얘기를 꺼내길래, 나도 자연스럽게 얘기한 것뿐인데, 뭔가 그녀에게는 듣기 싫은 부분이 있었던 것 같다.
“네. 그래요. 그렇게 하죠.”
약간 어색하고 억울했지만, 그녀의 정색하는 표정에 당황하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리고 버스정류장에서 그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며 그날을 마쳤다.
꽤 시간이 흐른 뒤에, 그녀는 그때 굉장히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자신에게 일어나는 마음이 무엇인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에서 내가 하는 말을 계속 듣는 게 힘들었다고 했다. 그리고, 내 이야기가 무슨 드라마에서나 나올 법한 얘기로 들렸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