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의 章
나에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 아니 조카들이 있다. 여동생이 둘이 있는데, 여동생들의 자식, 즉 조카들은 우리 집 모든 가족에게 엄청난 기쁨을 안겨주며 태어났고 성장하고 있다. 그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남자친구들이 생기거나 연애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특히 감개무량하다.
바로 밑 동생이 결혼해서 낳은 첫 자식, 즉 첫 조카는 내가 서른 살일 때 태어났다.
얼마 전에 조카가 어느 날,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나에게 동생과 함께 만나달라고 했다.
“이모, 엄마랑 같이 나와”
“내가 왜 네 남친을 보니? 흐흐”
“아니, 아빠랑 같이 만나는 건 좀 그렇고, 엄마가 혼자는 좀 긴장되나 봐”
‘오호, 나에게 그런 역할을 부여하는군.’
‘근데 무슨 이야기를 할까? ’
‘학교는 어디 나왔을까? 경제력은 있는 걸까? 성품도 괜찮겠지?’
갑자기 부모 입장의 역할을 생각하다 보니, 실례가 될 수 있는 궁금증, 해서는 안 될 질문에 관한 생각들이 불쑥 튀어나왔다.
조카와 조카 남친과 동생과 점심을 먹었다.
약간 긴장했지만, 아이들을 향한 동생의 눈에 하트가 그려져 있는 걸 바라보면서
나는 그런 질문이나 생각들을 잊었다.
‘난 뭐가 그리 궁금했을까?’
조카 남친에게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로 없었지만, 조카가 참 기특하게 생각되었다.
‘어디서 저렇게 잘 어울리는 남자친구를 찾았을까.’
고려산에 다녀온 뒤 며칠 후, 봄날의 햇살이 가득한 주말에, 인사동에서 그를 만났다.
‘이 사람은 과연 나와 여러 가지로 잘 어울리는 사람일까?’
덜커덕 소개팅을 승낙해 버리고, 예상과는 달리 그의 온화한 풍모에 안도했다. 또 뜻밖의 설렘이 찾아오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그의 여러 가지 조건과 지나온 인생에 대해 자꾸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학교는 어디 나왔을까? 일은 왜 안 하는 걸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가족과 직장을 뒤로 한 채 절엘 들어갔을까?’
설렘과 함께 여러 의구심을 간직한 채로 찾은 인사동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로 북적였다. 그는 연신,
“와 많이 변했네요.”
“경인미술관 찻집은 아직도 있나요?”
“참 한국이 많이 발전했어요. 이곳이 옛 모습만 있는 곳이 아니라 먼가 옛것과 현대가 잘 어우러져 세련돼진 것 같아요.”
난 한번도 인사동을 세련된 곳이라고 생각한 적도, 표현한 적도 없었는데,
어찌 보면 그를 통해서, 즉 약 20년 전의 시각에서 본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늘 쭈욱 봐 오던 곳을, 갑자기 예전 시각에서 다시 바라봤을 때, 새롭게 보이는 그런 순간들이 꽤 흥미로웠다. 그와의 인사동 투어는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도 신선한 시간이었다.
난 인사동의 변한 모습, 상점이나 음식점, 혹은 유명한 스팟 같은 곳보다 인사동을 메우고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눈길이 갔다. 가족 동반의 외국인들도 많았고, 어릴 적 친구들과 함께 온 60대의 중년여성들도 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인들이 눈에 띄었다.
오래된 연인들의 느낌이 나는 커플도 있고, 막 사귀기 시작한 연인들도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 그들 틈에서 우리도 인사동 거리를 걷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봤다면 어떻게 보였을까? 중년 부부로 보였을까? 아니면 사업상 친구 같은 사이로 보였을까? 아마 누구도 우리를 막 사귀기 시작한 중년의 소개팅 남녀로 보진 않았을 것 같다.
그와 걸어가면서, 보폭을 맞추기도 하고, 지나가는 차량이나 사람들을 피하다 서로의 옷깃이 닿기도 했다.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가끔씩 그를 쳐다보면 그의 옆모습이 보였다. 그의 옆모습을 느낄라치면 다시 그가 나에게로 시선을 돌리며 이야기를 이어갔고, 나도 그의 시선에 반응하면서,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향해 나아갔다.
점심에 만나 저녁에 이르렀다.
무거운 저녁을 먹기는 부담스러워, 가벼운 식삿거리를 의논하던 차에,
옛날 대학 시절 만났던 남친과 자주 갔던 식당이 생각났다.
메우 오래된 판메밀집인데, 그 남친의 부모님이 젊은 시절부터 다녔다는 아주 유수한 역사가 서린 곳이었다.
“꽤 오래된 판메밀집이 있어요. 어떠세요?”
“아 좋네요. 가볍게 먹기에 딱이죠.”
장소엘 도착하니,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고, 우리도 그 줄에 서서 기다렸다가, 식당엘 들어갔다.
“참 괜찮은 곳을 많이 알고 있으시네요.”
“네. 이런 말 어떠실는지 모르겠는데, 대학 시절 남자친구와 자주 왔던 곳이에요. 그 이후에 그 남친과 헤어졌지만, 그래도 자주 여길 왔었어요.”
나는 일단 내뱉고, 잘 주워 담는 스타일이다.
계획형이긴 하지만, 연애하는 데 있어선, 마음이 가는 대로,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행동해 왔다. 해선 안 될 말 까진 아니어도, 하면 좀 복잡할 수도 있는 이야기를 그냥 할 때가 많았다.
“아, 대학 때부터 연애를 시작해 7년간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어요. 참 재밌고 선한 오빠였는데….”
‘에라 모르겠다.’ 하면서, 매우 어릴 적 연애 스토리이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할거라 생각하면서 메밀을 먹고 식당을 나올 때까지 그 연애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왜 헤어졌는지까지 죄다 이야기를 해버렸다.
서로 헤어질 요량으로, 버스 정류장을 찾아가면서도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조금 더 걸어갈까요?”
“네, 걸어가면 다음 정류장이 있어요. 거기서 버스 타도 됩니다.”
이제 그의 연애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저는 연애가 참 힘들었어요. 20대 후반에 만난 친구인데, 제가 품기에는 좀 힘든 스타일이었고….”
서로 20대 시절의 연애 이야기를 한다는 게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오십의 나이가 되어갈 무렵, 풋풋했던 어린 시절의 이야기는 남녀의 이야기라기보다 서로의 청춘의 한 페이지를 공유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로를 더 알게 되고 이해할 수 있는 교류의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친구도 스님이 되었어요. 제가 절엘 들어갔는데, 그 친구도 제가 있는 절엘 들어와서 스님이 되었거든요.”
‘덜컹.’
뭔가 내 가슴속에 매우 강한 충격의 진동이 생겼다.
침묵이 흘렀다. 그는 내 옆에서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일단 그 순간을 모면하고 싶었다.
“우리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죠.!”
버스 정류장엘 도착했지만, 버스는 아직 오지 않았다.
풋풋했던 어린 시절의 청춘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질기고, 강한 인연의 이야기였다. 둘이 연애하다 헤어졌다는 이런 이야기가 아니라, 둘이 헤어지기로 했고, 그는 세속을 버리고 절엘 갔는데 그 여자친구가 절엘 따라갔다니…. 그리고 그녀도 스님이 되었다니…. 이 질긴 인연의 이야기를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나는 그 짧은 시간이지만, 침착하게 냉정하게 상황을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싶었다.
“당신의 연애 이야기는 듣고 싶질 않네요.”
당황한 그를 느끼며 난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