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 내 식당 창업하기 Ep. 3
한국에 돌아와서 취업자리를 찾고 있을 때 우연히 S 카지노 업체를 소개받게 되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 당시만 해도 카지노는 한국에서 낯선 업종이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호기심이 들었다. 아울러 캐나다에 막 돌아와서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젊은 청년이었던 나는 카지노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언가 모르게 호기로운 생각도 들었다. 지금 아니면 언제 할 수 있을까 싶어서였을까? 어느새 나는 S 카지노의 인턴으로 근무하고 있었다.
생애 처음으로 접해본 카지노는 생각보다 훨씬 화려하고 또 훨씬 초라한 세계였다. 수천만원의 돈이 한 순간에 생겼다가 사라졌고, 손님과 나는 같은 사람이면서 같은 사람이 아니기도 했다. 딜러라는 꿈에 빠졌다가도 계급의 차이를 확연하게 느꼈다. 화려한 조명 속에서 고급스러움으로 무장하고 있는 사람들은 빠르게 소비되고 사라졌다.
전 재산을 건 사람들의 에너지를 상대하는 일은 힘겨운 일이었고, 돈을 딴 사람의 하늘같은 성취감과 돈을 잃은 사람의 지옥같은 상실감이 공존했다. 이 곳은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었다. 나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퇴근 후 무심코 시청하던 다큐멘터리에서 히말라야의 이야기를 보게 되었다. 히말라야라는 말이 왜 그렇게 설랬던가. 화려한 삶의 정 반대의 세상이 주는 위안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충동적으로 구매한 론리플래닛에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길을 하나이니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다.” 퇴사를 결심했다. 하나의 길을 걷지 않았구나. 지금껏 길을 잃고 있었구나.
돌이켜보면 진짜 미련하게도 한결같은 인생이었다. 요리도 일도 한번에 되는 일은 없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우직하게 한 길을 가는 내 성격이 단 하나의 장점이었다. 그런 내가 잠시 화려함을 좇아 한 눈을 팔았으니 잘 될 턱이 없었다. 그저 우직하게 앞으로 가기만 하면 되는 히말라야는 딱 맞는 여행지였고 인생을 돌아볼 좋은 기회였다.
홍콩을 경유해 카트만두에 도착했다. 고요한 히말라야 등정에 앞서 화려한 홍콩을 경유하다니. 뭔가 내 삶을 압축하는 것 같아서 피식 웃음이 났다. 포카라라는 도시에서 4일의 여정을 보냈다. 예약할 필요도 서두를 필요도 없는 여유가 넘치는 곳이었다. 가이드나 포터를 고용하지 않고 혼자 올라가겠다고 했더니 만나는 사람들마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혼자 올라가야 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것이다. 내 마음은 한결같았다.
안나푸르나를 위한 입산허가증을 받고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포터 없이 올라간 히말라야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힘들었지만 그래서 또 하나의 생각만 할 수 있었다. 난 어떤 요리를 할 것인가. 오직 이 하나만 생각했다. 생각은 하나로 모였다. 난 행복을 주는 음식을 하고 싶고, 내게 행복을 주는 요리는 늘 바비큐, 그리고 햄버거였다고. 히말라야산도 요리에 대한 생각도 결국 또 우직하게 완주했으니 가이드 없는 산행이 헛된 일은 아니었다.
산을 오르면서 1년동안 일만 하고 6개월은 여행을 다닌다는 독일 부부도 만나고, 초롱초롱한 눈으로 ‘초콜릿’을 외치는 아이들도 만났다. 산을 오르는 동안 끊임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스무살 이후 떠돌이 생활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여전히 만남과 헤어짐에는 익숙해지지 않는다. 걸으면서 반가움을 잊고 또 걸으면서 아쉬움을 잊었다. 여행이란 삶의 축소판이 아닐까. 우직하게 하다보면 언젠가 이룰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길을 잃을 수 있으니 주의하라고 알려주며 얻는 것과 잃는 것에 대해 늘 기억하라고 충고하니 말이다.
이제 정말 요리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경력의 공백을 극복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심호흡을 하고 전념하고 집중하며 미래를 그려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분 전환겸 영화를 보기로 했다. 그냥 가까운 두산타워에 있는 영화관에서 상영시간이 맞는 영화를 골랐는데, 다시 한 번 느끼지만 운명은 짓궂게도 우연을 가장해 말을 걸어 온다. 그 영화가 바로 내 인생을 바꾼 ‘아메리칸 셰프’였기 때문이다. 새벽 1시쯤에 시작했는데, 관객은 나 하나뿐일 정도로 인기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덕분에 영화관을 전세냈다는 기분으로 더 몰입해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스타셰프였던 주인공은 레스토랑의 애물단지다.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고 싶지만 레스토랑 사장은 잘 팔리는 메뉴만 만들라고 성화다. 그러다 몰래 찾아온 음식 평론가에게 ‘발전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고 발끈, 새로운 메뉴를 개발하려다가 레스토랑 사장과 갈등을 빚는다. 결과는 ‘해고!’
무너진 자존심에 좌절한 것도 잠시, 그는 자신이 원하는 음식을 하겠다며 푸드 트럭을 운영하기로 결심한다. 한때는 잘나갔던 자신의 모습을 뒤로하고 미국 전역을 돌며 샌드위치를 팔기로 한 것이다. 물론 기본에 충실하는 것은 기초 중에 기초! 샌드위치에 들어갈 식재료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선택하고 좋은 재료를 구하기 위해 먼 길을 떠나는 것을 마다하지 않는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샌드위치를 만들자 놀라운 일이 펼쳐진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그의 샌드위치를 기다리며 행복한 맛을 기다리게 된 것이다.
내가 몰입된 부분은 그가 조리하는 과정을 즐기는 것이었다. 요리학원을 다녔을 때, 대학 실습시간, 화덕에서 요리를 할 때에도 내 모습은 즐거웠다. 결과에서 얻어지는 뿌듯함과 희열은 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스스로에게 물었다. “이 바보! 도대체 아직도 요리를 하지 않고 뭐하는 거야? 그렇게 요리를 하고 싶어 했잖아”
더 이상 미룰 필요가 없었다. 길을 하나이고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
프롤로그
─
1부 목차
ep. 3화 길이 하나라면 길을 잃어버릴 일은 없을 것이다 <현재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