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_에필로그
세 달이 흘렀다.
나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적응하고 새롭게 배우느라 정신없이 꽉 채워 보내서 그런지 반년이나 된 것 같다.
코로나19의 확산세가 크게 꺾이면서 사람들은 꽁꽁 숨겨두었던 흥을 슬슬 꺼내고 있다.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페스티벌이 연이어 열리고, 야외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는 것이 조금씩 당연하다고 느낀다. 노들섬에도 서울 재즈 페스티벌이 열려 사람들의 흥에 부응하고 있는 모습이다. 노들섬에 넓게 펼쳐진 잔디마당 중앙에 무대가 들어섰다. 그 무대를 중심으로 부채 모양으로 사람들이 매트에 앉거나 누워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즐기는 모습들. 무대 뒤편으로는 진한 다홍색으로 물드는 노을은 사람들의 얼굴에 비쳐 웃음기 가득한 얼굴에 생기를 더한다.
그래 이거지, 이게 노들섬을 제대로 활용하는 거지라고 속으로 끄덕이며, 코로나만 아니었으면 우리도 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미련과 아쉬움이 생긴다. (정말 솔직한 마음으로는 새로운 주체가 운영을 정말 합리적으로 하지 않는다면 민원으로 혼내줘야지 하는 한때 못된 마음을 먹기도 했다.)
근데 다시 생각해보니 코로나가 아니었어도 우리가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났다. 지금의 노들섬은 서울 재즈 페스티벌을 비롯해 블루보틀 커피 팝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금 노들섬을 위탁받아 운영하는 곳이 어떻게 보면 음악섬, 시민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노들섬을 더 잘 가꾸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무조건 코로나19 뒤에 숨어서 변명할 생각은 아니지만) 큰 행사는 고사하고 5명이 모이는 프로그램이 가능하기까지도 수개월이 걸렸다. 언택트와 소규모가 필수 조건인 상황에서 모든 기획과 운영이 나왔기에 지금과 같은 노들섬은 애초에 불가능한 것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는 자기 위로를...)
다 떠나서 지금의 노들섬은 내가 일할 때 보다 더 좋아 보인다. 인스타그램에 올라오는 사진들과 스토리를 보다 보면 시민들의 사랑을 전보다 더 듬뿍 받는 것 같다. 노들섬은 꽤나 정치적인 공간이다. 서울 시장 자리와 함께 노들섬의 기조가 수없이 바뀌겠지만, 휴식과 충전의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변치 않는 사랑을 받길 진심으로 바란다.
그나저나 요새 노들섬 노을이 정말 예술이다.
아직 노들섬의 노을을 경험해보지 않았다면 오늘 해 지는 시간을 확인해 적어도 1시간 전에 노들섬에 도착해보시라.
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는 에필로그를 끝으로 마무리되었습니다.
이 격정의 순간을 기록으로 남겨보고자 시작했던 출발이 열아홉 편이나 되었네요. 이상하게 짤 욕심이 많아서 글보다 적당한 짤을 고르는 데 더 시간을 오래 보낸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합니다...
전 직장 동료들이 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자리를 빌려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함께 이뤄냈던 작은 성공들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과 긴 터널과 같은 어둠 속을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은 모두 그대들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동안 긴긴 제 이야기를 들어주신 여러분,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