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3월 31일 목요일 오늘 회사가 없어진다.
좀 자극적으로 제목을 쓰긴 했다만,
회사를 구성하는 요소를 <일거리>, <일하는 장소>, <일하는 사람>으로 본다면, 오늘은 회사가 없어지는 날이라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우리 회사는 공공시설의 기획과 운영을 관으로부터 위탁받아 운영하는 공간 기획 스타트업이다. 우리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맡았던 이번 공간은 도심 속에 있는 자연공간으로 그 외형만큼이나 우리가 이 공간을 맡게 된 절차도 특별했다.
우리는 공모를 거쳐 이 공간의 운영자가 되었다. 이 공간에 알맞은 소프트웨어(콘텐츠)를 먼저 기획한 뒤, 그게 맞는 하드웨어(건축)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번 공간은 2019년 가을에 시민을 위한 공간으로 개장했다. 축제의 섬으로 시작을 알렸지만, 2020년 1월 코로나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기본적으로 시민들에게 휴식과 충전을 주기 위해 기획된 공간에 사람들을 불러 모을 수 없다는 현실은 우리에게는 너무나 가혹했다. 제한된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행사와 프로그램이 가능한 방법을 찾아 2년을 운영했다. 작년 말 관의 심사를 통해 3년의 재계약을 따낸 우리는 '코로나만 끝나 봐라'라는 생각을 가슴에 품으며 다시 축제의 섬으로 돌아갈 날만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리에게 운영 업무를 맡긴 '관'에 어떠한 변화가 생겼고 그로 인해 우리는 짐을 싸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2021년 11월 우리에게 통보가 내려졌고 3월 31은 '3월의 마지막 날'에서 '회사의 마지막 날'이 되었다.
작년 11월 회사를 접어야 한다는 소식을 들은 후 많은 질풍노도와 같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기분이 바뀌는 상황을 경험하고, 어느 순간 평온을 되찾았다. 마지막 출근길엔 분노는 없었고, 아쉬움과 무엇보다 '실감 안남'이라는 감정이 전부였다.
회사 앞 버스 정류장에서 내려서 사무실로 걸어 내려가는 순간까지도 별 감정이 없었다. 건물 입구에는 우리가 만든 영상이 오늘도 롤링되고 있었다. (이 공간을 처음 기획하고 개장하는 순간까지의 과정이 담긴 영상이다) 내가 영상을 바라보는 순간 이 영상의 크레딧이 올라가고 있었다. 회사의 이름과 내 이름을 마주하는 순간, 영화가 끝난 뒤 올라가는 크레딧처럼 느껴졌다.
'이제 정말 끝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 보이는 모든 것을 스마트폰에 사진으로 담기 시작했다. 아직 생생하게 머릿속에 남아있는 기억들을 회상하며 쭉 한 바퀴를 걸었다. 겨우내 앙상했던 나무 가지에는 연두색 새 잎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제 봄이 오는데 난 떠나야 하는구나.' 아쉬운 마음은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다.
그렇게 사무실로 향했다. 마지막 날까지 바쁜 경영지원팀 분들이 반가운 인사로 날 맞아주었다. 나머지 주인 없는 책상들이 보였고, 마지막 날까지 휴가를 쓰신 분들은 안 나오실 것 같다는 이야길 들었다. 아쉬움보다는 회사에 대한 배신감과 상실감을 가진 분도 계실 거라 생각하니 다 내 마음 같진 않을 것 같긴 하다.
나를 이곳에 소개해주신 (정말 고마운) 매니저님은 오늘까지 휴가를 내셨지만, 나오신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 분과는 나이도 같고, 경력도 비슷해 회사 생활을 하며 많은 고민들을 나눴던 사이다. 작년 겨울 회사와 한판(?)할 때도, 성명서를 쓸 때도 같이 작업했기에 그분의 마지막 출근 소식에 마음이 조금 가벼워졌다.
오늘 공식적인 업무는 없다. 그저 함께 일한 사람들하고 인사하고, 오후에 마지막 파티(?)를 할 예정이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예정대로 되는 것은 없었다. 마지막 날까지 업무와 공간을 정리하고 우리의 파티는 느지막한 8시쯤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