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이렇게 많이 써야 하는군요."
연차만큼은 눈치 보지 않고 붙여서 썼다. 그래도 오프라인 공간을 운영하는 업의 특성상 휴가가 3, 4일을 넘지 않았다. 내가 쉬면 누군가는 땜빵(?)을 나와야 하기 때문이다. 연차를 한 번에 14일 쓰려하니 뭔가 어색하다. 보통 연차는 사용하지 않으면 금전적으로 보상(?)해주기는 하나, 재정 상황이 넉넉지 않은 우리는 연차를 모두 사용하기로 했다.
기한은 3월 31일까지로 각자가 가진 연차를 그 안에 자유롭게 사용하는 조건이다. 회사 측에서는 운영 마지막 날(3월 31일)까지 현장 업무를 해야 하는 직원들이 서로 눈치 보지 않고 연차를 쓰기 위해 현장을 대신해 봐줄 인원을 추가로 채용했다. 적지 않은 인원이 세 달, 혹은 한 달 근무를 위해 출근했다. 운이 좋게도 예전에 몇 번 손발을 맞춰본 분을 포함해 모두 현장에 빠르게 적응해주신 덕분에 마지막 연차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었다.
동료들의 연차 사용은 모두가 제각각이었다. 연차 14일은 대략 3주 정도가 된다. 내 옆자리 매니저님은 월에 한주씩 총 세 번을 쉬는 게 좋다고 했다. 내 맞은편에 있는 분은 휴가를 맨 뒤로 붙여서 사용하신다고 한다. 나도 맨 뒤로 몰아서 사용하는 것으로 했다. 하나 다른 점이 있다면 난 마지막 날 전날까지 휴가를 사용하는 일정으로 정한 것이다. 마지막 날은 왠지 모르게 출근하고 싶어졌다.
(엄청난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군대에서도 전역 전날에는 휴가를 끝내고 부대로 복귀한다. 저녁에 부대로 다시 복귀한 뒤 하룻밤을 자고 다음날 오전에 전역을 하는 일정이 대부분이다. (규정이기도 하다.) 하루가 채 안되지만, 부대원들과 못 다했던 인사, 아쉬움, 미안함, 그리고 군인이기 이전에 인간적인 면모들을 서로 확인하는 소중한 시간을 가진다. 그런 시간이 있어야만 비로소 제대로 정리를 했다고 생각한다.
긴 휴가를 떠나는 전날 사무실에 있는 짐을 정리했다. 정리할 시간이 많았음에도 챙길게 한가득이었다. 박스 한가득 나왔다. 차에 싣고 주차장을 빠져나가는데, 책상 아래에 두고 온 검정 고무신이 생각났다. 슬리퍼 대용으로 꽤 오래 신었다. 휴가 중이라도 여기를 한번 더 들리고 싶은 마음에 그냥 그대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