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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 에디씨 Feb 24. 2022

이건 그냥 둬도 될까요?

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이건 꽤 멀쩡한데, 그냥 둬도 될까요?

우리는 3월 31일 자로 끝이다.

그때까지 이 공간을 운영하고, 4월 1일부터는 다음 업체가 이 공간을 운영하기로 결정됐다. (만우절 거짓말처럼..)


약 한 달이 남은 시점, 우리는 공간 원상복구 작업을 시작했다.


꼭 있어야 하는 물건이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한다. 없다면 다른 공간을 기웃거리며, 곁눈질로 찾으러 다닌다. 네 사람은 족히 앉을 큰 원목 테이블 4개를 찾으러 다녔다. 애 업고 3년 찾는다는 표현이 적절하게도, 의외로 가까이서 발견됐다. 사람들 눈에 잘 띄는 출입문이나 주요 동선 창 측엔 시트지가 붙어있기 마련인데, 이걸 떼는 것도 원복 업무에 포함된다.


3월 31일 모든 게 '원상태'로 돌아간 날. 아직 마주하지 않은 생경한 장면이 기억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부족하긴 했어도 항상 뭐라도 채워져 있던 공간이다. 텅 빈다는 건 상상해보지 않았다. 더군다나 여긴 공간들이 큼직큼직하게 나있는 구조라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지겠지.




내가 맡고 있는 '팝업 식당' 공간을 얼추 마무리했다. 꼭 있어야 할 자산들을 확인했고, 외부 업체에서 들어와 청소까지 끝냈다. 작년부터 매달 꼼꼼하게 맡아주셨던 청소 업체 사장님. 마지막이라 정말 신경 많이 썼다는 말과 함께 아쉽다, 이제 여기 식당 자리 좀 잡았다 싶은데 이렇게 나가서 어떡하냐며 나 대신 넋두리를 해주셨다. 감사한 마음으로 사장님을 주차장에서 보내드리고 문을 잠그기 위해 다시 공간으로 돌아왔다. 공간을 바라보며 숨을 들이마시는 순간, 마음 한 구석이 쿵 하면서 내려앉았다. 숨을 마시고 뱉을 때마다 그 내려앉은 공간이 계속 시렸다.


@uuuuuutopia (unsplash)

'나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최선을 다한 게 맞나.' 갑자기 아쉬움과 미련이 밀려왔다.

'이렇게 끝이구나. 마지막 날도 이런 느낌이겠네.'




한창 기획 일을 할 땐 뭘 많이 샀다. (지금은 기획은 하지 않고, 공간 운영만 하는 상태라 딱히 구매할 게 없다.)


기획은 서로 다른 개념으로 출발해, 명확한 단어로 합의되고, 실제로 어떤 매개체를 통해 사람들과 만난다. 그래서인지 조그만 가격표를 선택하는 것마저도 왜 이거여야 해?라는 질문에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그렇게 다 나름의 이유가 있어 구매한 자잘한 물건들의 생사를 정하고 있다. 고를 땐 색이나 조그마한 디테일 하나 신경 쓰며 모셔오다시피 했는데, 막상 정리할 때가 되니 별로 고민도 안되고, 버리기 어렵지도 않은 딱 그런 마음이다. 왜 그럴까.


난 내가 맡은 프로젝트의 기획을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했지만, 문득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건 어떤 기획이고, 어떤 결이고, 사람들에게 어떤 효용이 있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근데 누가 그게 진짜 내가 주고 싶은 것이냐고 묻는다면, 그건 아닌 것 같다. 분명 거대한 기획의 흐름에서 나 다운 방식은 꼭 하나 들어가 있기 마련이다. 그 부분이 크다고 해서 진심이 가득인 것도 아니고, 작다고 해서 내 일 아닌 것처럼 여기지도 않았다. 다만 이제는 내가 주고 싶은 것을 주고 싶고, 나만의 방식대로 표현하고 싶은 그런 개인적인 욕심이 싹튼다. 이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내면에서부터 올라왔다면 좋았겠지만, 이런 생각을 정리하게 해 준 이번 계기가 오히려 고맙기도 하다.




"이건 꽤 멀쩡한데, 그냥 둬도 될까요?" 반쯤 코팅된 장갑을 끼고 이것저것 옮기던 매니저님께서 뭘 들고 오셨다. 검은색 플라스틱 폴딩 박스인데, 아마도 당신이 선택하고 구매하셨던 제품인 것 같다.


"그거 둬도 다음 팀이 버릴 수도 있어요. 혹 누군가 쓰겠지만 우리는 아닐걸요. 정 버리기 그러면 뒀다가 나중에 버려요."


원복은 공간만 비우는 게 아니라 마음의 아쉬움도 함께 버리는 작업인 것 같다. 기간은 얼마 안 남았는데, 왠지 더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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