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휴, 최악은 면했다.'
저번 주 금요일 3개월 정도 더 할 수 있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등장인물
1-1) 공공기관 (공간 소유자, 위탁 운영을 맡긴 주체)
1-2) 담당 부처 (공공기관 소속으로 운영에 직접적으로 관여하는 부서)
2) 위탁 운영사 (공공기관에게 위탁을 받아 실제 공간을 운영하는 주체)
상황
21년 6월, 우리 회사는 지금 공간을 향후 3년 간 더 운영할 수 있는 '재계약' 체결.
9월, 공공기관에서 감사 진행.
11월, 공공기관이 우리 회사를 *횡령 혐의로 경찰에 고발. 22년 예산 삭감.(예산은 감사와는 무관)
12월, 감사 결과 '위탁 계약 해지할 것'
담당 부처 미팅. '뉘앙스는 3개월 정도'
*회사의 편을 드는 것은 아니나 '그때는 되고 지금은 안 되는' 건으로 의도적으로 내보낼 의도를 가지고 내린 결론이라고 함.
나와 다른 동료들은 사망 선고를 받은 심슨처럼, 부정과 분노의 감정을 느끼다가 이제는 서서히 인정하고 차분해진 상태다.
감사 결과로 우리는 결국 위탁 계약 해지를 당할 거다. 담당 부처는 우리와 실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주요 안건은 '실제 공간 운영 기간', '인수인계 업무 범위'다. 첫 미팅 이후 우리가 이해한 뉘앙스는 '한 3개월 정도는 더 운영할 수 있겠네.'였다.
3개월이라는 시간 안에는 실제 정리하는 업무도 포함될 것 같긴 하나, 자세한 사항은 22년 사업계획 업무를 진행하며 차차 구체적으로 정한다고 한다.
회사는 이 상황을 우리에게 팀별로 안내했다. 회사가 생각하는 최악의 상황인 12월 OUT은 피했다고 이사들과 대표는 조금은 안도하는 분위기였다.
이사들은 직원들에게 너무 일찍 이야기한 것을 후회하는 듯했다. (일찍 안내해야 한다고 한 판단은 대표가 조금 더 리딩 한 부분이라고 한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가 달렸기 때문에, 난 대표가 이야기한 시점은 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조금의 시간을 벌었지만, 문제는 예산이다. 올해와 달리 예산이 팍! 줄었다. 문제는 줄어든 예산에는 인건비도 포함이다. 그 작은 주머니 안에서 지금 일하는 모두가 같이 갈 수 있을지는 아직 확답받지 못했다.
3개월을 벌었다고 안도하는 회사 측의 분위기와 직원들의 분위기가 다른 이유가 그것이다. 하지만 직원도 모두 같은 그룹으로 묶을 수 없다. 업력이 짧은 스타트업이라 퇴직금만 하더라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있으며, 심지어 실업급여도 받을 수 없는 신규 입사자 분들도 있다.
몇 년 전, 커리어를 바꿔보겠다며 젊은 패기로 회사를 나온 그때 내가 생각난다. 실업급여는 없었고, 물론 뒤에 갈 회사도 없이 나왔다. (생각해보니 대책 자체가 없었다.) 그해 봄과 여름을 생각하면 입가에 쓴 맛이 돈다. 그런 경험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앞으로 난 어디로 가야 하며 여기선 뭘 남겨야 할까.
*커버 : @fallen(1998), denzel washingt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