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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턴 에디씨 Dec 12. 2021

근데, 이제 어쩌실 생각이세요?

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내년 3월까지 약 3개월을 운영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소식이 전해진 뒤, 직원들은 다들 각자만의 걱정에 빠졌다. 


'과연 내가 그때까지 필요한 사람일까..?' 직원이 아니라 회사가 어떤 직원을 남기고, 3월까지 같이 할지 정할 거다. 그 기준은 '업무'가 될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사업 이해도가 높은 사람이 누구일까, 이 사람이 마무리 업무까지 할 수 있는 업무 커버리지를 가지고 있을까 정도가 기준이 될 것 같다. 직원들 간 급여 차이가 심하지 않기에 흔히 무거운(연봉이 높은) 사람부터 나가는 상황은 아닐 것 같다.


아래 나와 동료들을 비롯해 회사 구성원이 처한 상황별로 그룹을 나눠봤다.


[A그룹] 대표, 이사

대표를 포함한 회사 창립 멤버 그룹. 약 8명 정도로 구성되어있다. 고발 건 및 앞으로 남은 정리 업무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현재 맡은 공간 외 수입이 없기에 이후 회사의 존속을 위한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야 하는 상황. 초기 설득을 통해 이 공간에 들어온 여러 파트너들과의 계약 관계를 잘 마무리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 중 하나다.


[B그룹] 1년 이상 일한

실업 급여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그룹. 나도 여기에 속해 있다. 약 7명으로 중간 관리자 직급과 매니저(막내) 분들로 구성되어있다. 잘리는 상황에서 비교적 기댈 구석(실업급여, 퇴직금)이 있는 분들이다. 현재 담당하는 공간의 오픈 때부터 함께 했던 분들이 많아 A그룹과 거의 비슷하게 이 공간에 대한 이해도와 애정이 높다.(고 생각한다..) 정리까지 남아있겠다는 사람과 이직이 되면 언제든지 나가겠다는 사람, 그리고 정리하는 업무는 '짜칠 것 같아"며 언제든 나갈 사람 정도로 나뉜다.


[C그룹]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퇴직금은 물론 실업 급여를 받지 못하는 그룹. 약 4명으로 구성된 매니저분들로 올해 중순 새로 입사하신 분들이다. 이번 사태(?)에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볼 수 있는 분들로, 기댈 구석이 없는 상태이기에 회사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입사하신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이런 상황 속에서 회사 및 공간에 대한 애정을 기대할 순 없다.


[D그룹] 근로가 아닌 용역 계약으로 되어 있는

6개월부터 1년까지 용역 계약으로 체결되어있는 분들이다. 극소수다. 용역이라는 계약부터가 시작 시점과 종료 시점이 명확하게 기재되어 있기에 크게 감정 소모(?)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기존 근로 계약 관계에서 어떠한 이유로(비용, 예산 항목 등) 용역 계약으로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이런 경우에는 기존 직원들과 크게 다르진 않으나, 이런 회사가 정리되는 상황에서는 가장 약한 고리가 된다. 회사 입장에서는 어려워지면 재계약을 안 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물론 계약 만료에 따른 퇴사 사유도 실업급여가 나오긴 한다) 


한번 정리해보니 명확해지는 것이 두 개 있다. 계약서는 정말 중요하다는 것. 같은 급여와 근무여건이라 하더라도 이런 상황이 닥칠 때 가장 약한 계약의 고리가 위험이 높다. 정규직과 계약직 구분이 그 사람의 능력을 가르는 기준은 아니지만, 극한의 상황에서는 안전을 조금이라도 보장해 줄 수 있는 방패막이는 되는 것 같다.


남은 하나는 나만의 계획이 없으면, 남의 계획에 끌려 다닌 다는 것. 그리고 계속 끌려 다니면 자존감이 떨어진다는 것. 사실 몇 월까지 일할 수 있냐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그냥 내가 끝내는 시점을 정하면 된다. 물론 급여가 연결되어있기에 이렇게 쉽게 결정할 순 없지만, 나는 자존감이 급여만큼이나 중요한 사람인 것 같다.



*커버 : 영화 <Vampire's Kiss>, Robert bierman(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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