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자의 회사 정리기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팀장님 전화를 받은 건 어제 저녁 11시쯤이 다 되서였다.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고,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어떤 자리에 함께 하자는 제안이었다.
"현장에 꼭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출근해서 내일 오전 중으로 말씀드려도 될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새로운 일이 사업인지, 이미 존재하고 있는 회사에 들어가는 것인지. 프로젝트일 수도 있겠다 싶다. 다음날, 난 현장에 있어야 했고 결국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금 혼란스럽기도 했지만, 내심 좋았다. 누군가가 나를 찾아준다는 것. 내 얕은 능력을 써줄 만한 자리가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에 안도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바보 같은 내적 웃음을 짓고 있는 나를 다잡는다. 조건을 듣기 전까진 좋아하지 말자.
속물 같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난 일의 세계에서는 '능력 = 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내 능력과 업계 사이즈에 맞춰 가치가 결정된다. 물론 능력에는 커뮤니케이션 능력, 인성 등 퍼포먼스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항목들도 포함된다. 동료, 후배, 관리자들과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렵진 않다. 하지만 내가 인정받고 싶은 능력은 퍼포먼스를 내는 능력이다. (이건... 잘하는지 잘 모르겠음...)
조건을 더 쉽게 이야기하면 연봉이 된다.
내 능력만큼 연봉이 책정되고, 내 연봉이 내 가치를 나타낸다. 사회 초년을 언론 홍보일로 시작했던 내가, 연봉을 낮추어 '콘텐츠 기획' 분야로 넘어왔다. 그만큼 해보고 싶었고, 간절했다. 그 정도 희생은 감수할 수 있었다. 이제 기획 일을 한지도 2년 반이 됐다. 이제 겨우 홍보일 당시 초봉을 살짝 넘길 정도가 됐다.
지금 난 얼마일까?
내 능력은 얼마에 팔릴 수 있을까.
알고 싶으면서도 알고 싶지 않은 묘한 느낌.
"팀장님, 어제 말씀해주신 거 내일 한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커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