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 영성 고전] 4
신비신학의 전통은 14세기 후반 영국에서 다시 찬란한 꽃을 피운다. 이번에도 익명의 저자가 펴낸 『무지의 구름(The Cloud of Unknowing)』이라는 책이다. 제목이 시사하는 바와 같이 신비신학의 맥을 잇는 작품이다. 저자는 오랜 수도 생활로 경지에 오른 수도원 소속 사제이거나 수도승으로 짐작될 뿐이다.
“그대는 처음 시작할 때 오로지 어둠밖에 발견하지 못하는데, 이것이 말하자면 무지의 구름입니다. 그대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모르고, 오직 그대의 의지를 통해서 하느님께로 뻗어나가려는 순수하고 단호한 의향만을 느낄 것입니다. 그대는 뜻하는 바를 행하되, 이 어둠과 이 구름은 그대와 하느님 사이를 가로막아 사리에 맞는 밝은 오성의 빛으로 그분을 바라보지도, 그분 사랑의 감미로움을 그대의 감성으로 체험하지도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필요할 때까지 이 어둠 속에서 참고 기다리면서 사랑하는 그분을 끊임없이 애타게 바라보십시오. 왜냐하면 그대가 이승에서 그분을 감지하거나 뵙게 된다면 그 일은 언제고 바로 이 구름 속에서, 바로 이 어둠 속에서 이루어질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성찬성 옮김)
물론 어둠은 불빛이 없다는 뜻이 아니며, 구름 또한 하늘의 구름을 가리키지는 않는다. 어둠은 바로 ‘앎의 결여’를 뜻하며, 구름은 무지의 구름을 말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언제까지나 어둠과 구름 속에서 헤매야 할까. 정녕 그분을 뵙고 일치를 체험하는 일은 어렵단 말인가.
저자는 여기서 은총과 사랑을 역설한다. 은총은 그분께서 무상으로 베푸는 선물이다. 그것은 죄의 유무나 수도 생활의 충실성 따위와는 관련이 없다. 그 주도권은 그분에게 있으며, 인간의 노력으로 얻어낼 방법은 없다. 인간은 다만 겸허히 기도할 수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 어떤 것이 그대를 제 뜻대로 다루고 이끌도록 맡기십시오. 그것이 적극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그대는 순순히 따르기만 하십시오. 그대가 원한다면 지켜보기는 하되 가만히 놓아두십시오. 그대가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듯이 간섭하지 마십시오. … 그대는 기꺼이 소경이 되고 ‘왜’나 ‘어떻게’를 알고 싶은 욕구를 모조리 버리십시오. 아는 것이 도움이 되기보다는 방해가 될 공산이 크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영혼이 그분과의 일치를 체험하려면 마땅한 준비가 필요하다. 그것이 사랑이다. 그분의 속성이 사랑이므로 사랑은 사랑과 합일한다. 인간의 영혼이 밝고 따듯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을 때 비로소 영혼의 경계가 무너지고 관상과 합일의 길이 열린다.
“사랑으로는 그분을 붙들고 차지할 수 있지만 생각으로는 결코 되지 않습니다.” “영혼이 은총으로 제 모습을 되찾을 때, 그 영혼은 사랑으로 온전히 그분을 이해할 수 있는 완전하고 충분한 상태가 됩니다. 그분은 우리 인간의 지성으로 이해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 그러나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지성일 뿐 우리의 사랑이 그렇다는 말은 아닙니다.”
결국 사랑인가. 평생을 기도로 살아온 훌륭한 스승들의 가르침은 사랑으로 귀결된다. 신의 신비는 지성으로 이해할 수 없기에 인간의 노력으로는 그 비밀의 정원에 들 수 없다. 다가갈수록 구름과 어둠이 짙어질 뿐이다. 그 속에서 관상을 통해 그분을 체험하는 일은 오직 은총일 뿐이다. 다만 사랑으로 가득한 영혼은 사랑의 원천인 그분께로 회귀하려는 사랑의 속성으로 인해 신비로운 합일을 경험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