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04 수도 생활의 두 유형
안토니우스의 ‘홀로’ 방식과 파코미우스의 ‘더불어’ 방식은 같은 목표를 향해 가는 서로 다른 길이다. 두 방식은 우열을 가릴 수 없지만 장단점이 뚜렷하다.
고독한 수행에서 오는 유혹과 위험을 충분히 극복할 수 있다면 독수도 방식을 택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과의 싸움에서 쉽게 무너지는 허약한 인간들이다. 수행이 깊어질수록 유혹도 강해진다. 식욕, 성욕, 소유욕 같은 기초적인 욕망은 차라리 쉬울지 모른다. 분노와 질투, 나태와 허영, 명예욕과 교만 같은 감정은 하느님께로 가는 길을 방해하는 대표적인 악습들이다. 이런 감정은 인간의 내면에 교묘하게 파고들어 수도승의 성덕을 무너트리고 결국은 좌초하게 만든다. 의지의 부족이 아닌 과잉이 초래하는 위험도 있다. 지나친 금욕과 고행에서 오는 영적 육체적 불균형이 수도승을 망상이나 파멸로 이끈다.
회수도 방식은 여러 수도승이 함께 생활하는 수도원을 말한다. 모두가 지켜야 할 규칙을 제정하고 잘 짜인 일과표에 따라 생활한다. 함께 모여 기도하고 소임에 따라 맡은 일을 한다. 공동체적 사랑과 형제애를 바탕으로 서로를 이끌고 격려할 수 있다.
수도원에서는 회칙(규칙)이 최우선이다. 입회 서약은 회칙에 순종하겠다는 약속이다. 모든 회칙은 하느님의 말씀인 성경의 가르침에서 나온다. 수도회 창설자는 자신의 치열한 수도 체험을 녹여낸 훌륭한 회칙으로 당대와 후대의 수도승들에게 모범적인 길을 제시한다. 회칙은 잘 정비된 도로와 같다. 수도승을 하느님께로 안내하는 바르고 뚜렷한 길이다. 스스로 길을 개척할 능력이 없는 수도승에게 회칙은 구원으로 향하는 고속도로 이정표와 같다.
수도원 방식이 누구에게나 최선일 리는 없다. 특히 침묵과 고독을 사랑하는 수도승이라면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다. 개인의 수도 열망과 지향이 공동체의 목표와 조화를 이루지 못할 경우 기쁨과 활력을 잃은 채 시들어 버리기도 한다.
수도원은 오랜 역사와 전통에서 오는 권위로 수도승을 맞는다. 창설자의 이상과 열정은 관습이 되어 일과표 속에 녹아 있다. 수도승은 전설적인 스승으로부터 별다른 영적 자극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회칙은 두꺼운 책 속에 있는 모범적인 교훈으로 존재할 뿐 신선한 감동을 주지 못하기도 한다.
수도원은 자칫 또 하나의 사회일 수도 있다. 세상을 떠나온 수도승은 그곳에서 또 다른 사회를 만난다. 피하고 싶었던 인간관계의 여러 측면을 다시 맞닥트린다. 인간은 결국 관계로부터 도망칠 수 없음을 절감하고 새로운 도전에 직면한다.
수도 전통은 독수도 방식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 위험성을 경계했다. 지혜로운 스승의 지도 아래 충분한 경험을 쌓은 수도승이 옮겨갈 수 있는 원숙한 단계로 여겼다. 오늘날 이 방식은 교회 안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어느 공동체에도 소속되지 않은 독수도승은 인정받지 못한다.
대신 독수도 생활과 회수도 생활을 혼합한 제3의 방식이 싹텄다. 큰 수도원 안에, 또는 가까이에 각 수도승을 위한 암자를 짓고 홀로 수행하는 방식이다. 그들은 각자의 암자에서 기도와 노동을 따로 하다가 정해진 시간에만 모여 공동기도를 바치고 미사를 봉헌한다. 11세기 유럽에서 출현한 까말돌리회와 카르투시오회의 수도원이 이 방식을 성공적으로 정착시켰다. 다양한 수도 생활을 체험하고 공부한 수도승 로무알도가 나이 예순에 이르러 도달한 이상이었다. 이로써 홀로와 더불어의 공존은 수도 생활의 새로운 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