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의 두 영웅

06-03 안토니우스와 파코미우스

by Peregrinante in Spem

수도원은 결코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수행 방식이 아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교 밖에서 훨씬 더 오래된 수도 문화를 찾을 수 있다. 고대 인도의 힌두교나 불교는 다양하고 풍성한 수도 형태를 보여준다. 특히 불교는 태생적으로 출가 수도승의 종교였다. 인도 불교는 중국으로 전파되면서 선(禪)이라는 형태로 또 한 번 꽃을 피운다. 장좌불와(長坐不臥)나 무문관(無門關)의 수행 전통은 용맹정진(勇猛精進)하는 선불교의 기개를 드높이 보여준다. 비교적 늦게 출현한 이슬람에도 신비주의와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수피즘(Sufism)이 있다.


어느 종교든 희생과 금욕, 깨달음과 초자연적 신비를 추구하는 수행 문화를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수행과 수도는 인간 내면의 깊은 곳에 자리한 어떤 갈망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닐까? 그리스도교의 수도원도 그런 보편적 갈망에서 태동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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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의 수도원 문화는 이집트 사막에서 그 기원을 찾는다. 3세기 후반에서 4세기 초 사이에 나일강 하구의 사막에서 메마른 땅에 샘이 터지듯 수도 문화가 피어났다. 거칠고 순박한 이집트의 그리스도인들이 아마도 박해를 피해 사막으로 찾아들었다. 그들은 홀로 또는 공동으로 수행하며 순도 높은 신앙을 추구했다. 이들이 더 효율적인 수도를 위해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수도원의 초기 형태가 탄생했다. 이런 수도 문화는 점차 소아시아 지역과 유럽으로 확산하였다.


사막의 수도 문화를 이끈 수도승으로 보통 두 사람을 내세운다. 성 안토니우스와 성 파코미우스이다. 두 사람 모두 이집트 출신으로, 나일강 유역의 사막에서 수도 생활을 개척했다. 안토니우스는 251년경, 파코미우스는 292년 출생이다. 그리스도교 공인(313년) 이전, 즉 박해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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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는 흔히 ‘사막의 은수자’로 불린다. 홀로 기도하고 홀로 해결하는 독수(獨修)주의 수도 문화를 대표한다. 그들은 사막의 동굴 속에서 홀로 온갖 유혹과 싸우며 극치의 영적 순결성을 추구했다. 서로 교류하고, 스승과 제자로서 애정 어린 가르침을 나눴지만, 주거를 함께 하지는 않았다. 안토니우스는 최초의 수도승은 아니지만, 구체적인 생애를 알 수 있는 최초의 수도승이다. 그의 삶과 영적 여정을 기록한 『안토니우스의 생애』는 수도 문화의 확산과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전기 형식이지만, ‘수도 생활로의 초대’로 읽어도 좋을 만큼 매력을 발산한다.


수도승이 홀로 영적 투쟁에 나서는 독수주의 수행 방식은 한편으로 상당한 위험이 따른다. 극단적 고행이나 의지의 박약으로 영적, 육적인 파멸에 이르는 수도자들이 종종 있었다. 안토니우스 같은 탁월한 수도승조차도 온갖 유혹에 시달렸다. 파코미우스는 이러한 ‘나 홀로’ 방식의 한계를 깨닫고 공동 수행 방식을 택했다. 그는 높은 담장으로 둘러싸인 수도원을 짓고, 엄격한 생활 규칙을 만들어 효율적인 공동 수행을 이끌었다. 장상의 가르침에 절대 순종하는 규율을 통해 개인의 나약함을 극복하고 사랑과 우애가 넘치는 공동체를 형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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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토니우스처럼 홀로 수행하는 수도자들을 독(獨)수도승 또는 은(隱)수도승이라 부른다. 파코미우스의 방식을 따르는 수도자들을 회(會)수도승이라 한다. 파코미우스는 회수도승의 아버지로 불린다.


파코미우스는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제도적 수도원 문화의 창시자로 꼽힌다. 그가 나일강 상류의 버려진 마을에 세운 최초의 수도원은 엄격한 규율과 공동생활로 오늘날 수도원의 원형을 보여준다. 그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수많은 제자가 모여들었다. 그는 잇따라 수도원 아홉 곳과 수녀원 세 곳을 세우거나 받아들였다. 그의 영적 권위 아래 형성된 수도원 공동체를 코이노니아라고 부른다.


안토니우스인가, 파코미우스인가. ‘홀로’ 방식과 ‘더불어’ 방식, 두 수도 방식은 나중에 제3의 길에서 서로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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