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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덕에 파오리가 되어간다

요리 성장형 아내

by 하나


자취를 할 때 종종 생존형(?) 요리를 하긴 했다. 이를 테면 간장계란밥 같은 메뉴였다. 매번 사 먹기도 뭐 하고 끼니를 적당히 때우려거나 식비를 조금 아끼려는 마음이 들 때 시도하던 것들이었다. 때때로 요리에 대한 열망을 느껴 카레 정도를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딱 그 정도였다. 내가 시도한 메뉴들은 모두 끼니를 간단히 때울 수 있는 쉬운 요리들 위주였다.


밥도 대체로 '햇반'으로 때우곤 했다. 혼자 지낼 때 종종 밥솥에 밥을 하긴 했지만, 약속이 생기거나 일이 생기면 밥은 보온 상태로 오래 지속되기 일쑤였고 결국 버리게 되는 일도 잦았기에 햇반으로 자리 잡았다. 밥을 하려면 쌀 보관문제부터 소비 기한을 챙겨야 하는 일 등 부수적인 것도 신경 쓰였다.


그렇게 자리 잡은 습관은 결혼 이후에도 '햇반'을 고집하게 되었다. 주기적으로 남편에게 햇반을 주문해야 할 때가 왔다고 이야기하곤 했다. 그럴 때마다 남편은 군말 없이 주문해주곤 했지만, 때때로 밥솥을 보며 아련하게 말했다.


언젠가 한 번은 쓰지 않을까?


나는 그 말이 참 아련하게 들렸고, 내심 마음에 걸렸다. 아무리 평일 삼시 세 끼는 회사에서 다 먹고 오는 남편이라 할지라도 일하고 온 남편에게 맛있는 요리를 차려주는 아내의 도리란 것이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처음엔 내가 이사를 오면서 가지고 온 커피 머신이 기존 밥솥 차리를 뺏는 일마저 있었다. 밥솥에게 서랍장 신세를 지게 하면서, 내심 마음이 무거웠던 것이다.


또한 남편은 종종 이런 말도 했다.


여보 요리 실력이 늘면 좋겠다!


그 말에 나는 오늘은 배달시킬까?로 응수해 왔지만, 나도 항상 열망해 오던 '요리'에 대한 바람이 조금씩 싹트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한 때 요리사가 꿈이기도 했다.



손질되지 않은 대파와의 강렬한 첫 만남

그리하여 본격적으로 집밥 요리에 도전을 시작한 메뉴는 닭볶음탕이었다. 닭볶음탕은 혼자서도 종종 해먹기도 했었고, 무엇보다 '닭볶음탕 소스'를 사면 부담 없이 기본 맛은 보장되었기 때문이다.


이때 손질이 되어있는 줄 알았던 '대파'를 시켰는데, 배달시키고 보니 손질 전 대파였다. 손질 전 대파의 길이를 재어보자면 웬만한 어른의 상반신 크기만 할 정도로 길다. 햇반과 간단식 위주였던 우리 집 주방에 흙으로 휘감긴 엄청난 재료가 배달되어 온 것이다. 남편도 그 광경을 보더니 재료가 너무 본격적이라며 놀라워했다.


그게 손질되지 않은 첫 대파와의 만남이었다.


대파와의 만남은 꽤나 강렬했다. 대파가 너무 커서 쓰고 남은 대파를 보관하는 일부터 그 많은 대파를 다 먹어야 하는 일까지 부차적인 일이 많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파를 다 먹기 위해 활용을 고민하다 보니, 나는 대파가 그렇게 저렴하면서도 맛있는 재료란 걸 처음 알았다. 대파는 국에도 넣을 수 있으며, 간단한 볶음밥, 계란말이 같은 반찬에까지 모두 사용이 가능했다. 심지어는 메인 요리 전에 대파로 '파기름'을 낼만큼 음식에 큰 맛을 주는 녀석이기도 했다. 지금은 대파 전용 락앤락까지 사며 대파를 잘 손질하여 넣어두고 있다.



4년 만에 밥솥 첫 취사를 하다

그렇게 한 두 개의 요리를 도전하다 보니, 어느 날 남편이 햇반을 시켜주지 않고 말했다. 이제는 밥솥을 써봐도 좋을 것 같다며 말이다. 나에게 또 다른 목표가 주어져서 나는 좀 얼떨떨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햇반에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남편 집에 있던 밥솥과 처음 대면을 시작했다. 최근 잘 먹지 않는 커피 머신을 당근하고 밥솥은 서랍장에서 나와서 다시 기존의 차리를 찾았다. 마음의 준비 후 밥솥을 열었더니 그 녀석은 새 제품이었다!


우리는 신혼 준비를 할 때 모든 가전을 다 구입하지는 않았다. 기존 제품을 그대로 쓰는 것들도 많았기에 새 제품인 것에 놀라서 남편에게 물었다. 그랬더니 4년 전 이 집에 처음 이사를 올 때, 어머니가 밥솥을 사야 좋다 하셔서 밥솥을 사긴 했지만 그 후 한 번도 쓰진 않은 제품이라는 것이다. 4년 만에 빛을 본 밥솥이 안쓰럽기도, 조금 짠하기도 했다. 요즘은 '잡곡'밥을 열심히 지어주고 있다.


남편은 햇반보다 지은 밥이 훨씬 맛있다며 좋아라 하고 있다.



반찬에 도전하다

누가 뭐래도 집밥의 묘미는 반찬이라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내가 닭볶음탕 같은 주요리부터 시작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오히려 주요리는 쉽게 느껴졌다. 그러나 자잘한 손질과 간이 맛이야 하는 반찬은 꽤나 클래스가 높게 느껴졌다.


그리하여 일단 눈으로 배우기 시작했다. 요리 관련 쇼츠와 영상들을 열심히 보기 시작한 것이다. 그 이후로 땅콩조림, 계란장조림, 감자채볶음 등의 요리를 하나씩 해내고 있다. 레시피를 따라한 후 생각보다 맛있어서 나도 많이 놀라고 있다. 남편이 좋아하는 것 이외에도 직접 만든 반찬으로만 채워진 밥상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뿌듯했다. 음식은 곧 나를 건강하게 채워주는 양분이기도 하니 말이다.


내가 보는 요리 쇼츠 영상에서는 대부분 ‘깨'로 마무리를 하곤 한다. 나는 요리를 자주 하지 않기에 '깨'는 사치가 될 것 같아 사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요리 횟수를 늘리며 그에 맞춰 요리 아이템들도 하나씩 사고 있다. 나의 요리 실력에 비례하여 주방에 재료 병이 늘어나는 것을 보는 것도 꽤나 어깨가 으쓱하다.


한 손에 파를 든 요리 성장형 파오리가 되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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