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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방의 무게를 느껴본 적 있나요?

매주 뭘 해먹을지 고민하게 되다니

by 하나


주부가 아닌 싱글일 때도 매일 메뉴 고민을 하긴 했다. 오늘은 뭘 사 먹을까? 였다. 하지만 싱글일 때의 고민은 비교적 간단했다. 식당이 브레이크 타임이나 종료시간이 아닌 '운영 중'이기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곧 종료한데도 괜찮았다. 그땐 포장이라는 추가 선택지가 있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결혼 이후에는 같은 메뉴고민이지만 이는 훨씬 다채로운 활동이 되었다. 메뉴 고민을 해결하는 주체도 내가 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일단 메뉴를 선정하면 재료를 사 와야 하고, 재료 손질도 해야 했으며 남편의 퇴근 시간에 맞춰 조리까지 해야 했다. 숙달된 주부라면 간단히 해낼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나는 아직 숙련된 주부가 아니므로 장보고 재료 손질 하는데 1시간, 조리하는 데 별도로 1시간은 필요했다.


그렇다고 힘들기만 한 건 아니었다. 요리를 하는 모든 아내 혹은 남편이 그렇듯, 맛있게 식사해 주는 가족을 보고 있노라면 그 노고가 사라지곤 했으니 말이다.


남편은 아침, 점심, 저녁 삼시 세끼가 모두 회사에서 제공되는 편이다. 그리하여 평일엔 각자 끼니를 해결한다. 나는 일하는 평일에는 주로 저녁 9시에 퇴근하므로 함께 밥을 못 먹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밥을 먹는 건 주로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과 일요일을 포함하는 주말 시간이다.


나는 이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다섯 끼의 식사를 책임지기 위해 대체로 수요일 정도부터 메뉴고민을 시작한다. 그리고 늦어도 목요일 정도에는 재료 주문을 한다. 우리 집 냉장고는 목요일쯤 가득 찼다가, 일요일까지를 보내고 나면 다시 홀쭉해지는 사이클을 겪는다. 지금은 어느 정도 루틴이 잡혀가지만, 초창기에는 내가 매주 밥 메뉴 고민을 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이런 순간이 올 줄 몰랐다.


이렇게 매주 밥 뭐 할지 고민을 하다 보면 한 세월이 가는 거였구나가 체감되기도 했던 순간이었다. 매일 설거지를 하며 가끔 주방 일이 얼마나 지겨운 지를 넋두리하던 엄마의 모습도 스쳐갔다. 엄마는 내게 집안일을 잘 시키지 않는 편이었다. 종종 명절에 도와드리려고 해도, 엄마는 "앞으로 너도 시집가면 맨날 하게 될 텐데 지금부터 안 해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는 엄마의 말이 크게 와닿지 않았었다. 그 매일매일의 무게를 차마 가늠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제 매주 메뉴 고민을 하게 되면서 그 평생의 굴레에 발을 들이게 된 거구나 생각이 들자 서글픈 마음이 들기도 했고, 내 청춘이 주방에서 지나가게 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주방이 숨 막히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 감정들을 느끼며 엄마가 나를 주방을 통해 키워 낸 30년이 스쳐가기도 했다. 이래서 딸은 결혼을 해봐야, 더 나아가서는 본인도 아기를 낳아봐야 비로소 엄마를 이해하게 된다는 말도 있나 보다.




그러던 어느 날 TV, CF에서 삼성전자 비스포크 냉장고 광고를 촬영한 전지현 씨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아침마다 뭘 먹을까? 뭐 해줄까? 이런 고민할 줄 몰랐죠"


과연 실제로 전지현 씨도 겪고 있는 먹고사는 문제인지, 그저 광고 담당자가 작성한 원고인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내게 그 문구는 너무나 공감이 되었다. 정말 몰랐다. 먹고사는 문제가 이토록 반복되는 권태로운 문제일 줄 말이다. 이 문제는 남편의 다정함과는 별개이다. 주부로서 겪어내야 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남편들이 집안일을 함께 분담하는 시기라 해도, 여전히 주방 일의 책임은 여성에게 좀 더 부여되는 사회적 시선이 강하기 때문이다.


최근 이야기를 나누게 된 한 주부는 이런 말도 했다. 남편이 조금씩 자주 식사하는 편이라 하루에 6끼를 먹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리하여 아침부터 저녁까지 6끼를 모두 챙겨주느라 그날 하루 종일 주방에서 나오지 못했다는 이야기였다. 어쩌면 전업 주부에게는 이 주방이 남편들의 회사 출근과 같은 전쟁터가 아닐까.


훗날 내가 아이를 낳게 된다면 이 주방은 내 남편도, 내 아이도 먹여 살여줄 고마운 존재일 것이다. 하지만 그 세월만큼 내겐 주름을 안겨주지 않을까. 주방은 앞으로 내게 어떤 존재가 되어갈까. 주방과 친구가 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오늘도 여전히 주방과 씨름 중인 모든 주부, 엄마들은 대단하다. 그래서 모든 어머니는 위대하다는 말이 있나 보다. (주방과 씨름 중인 남편이 있다면 그도 위대하다.)


그렇다고 내가 주방을 나쁘게만 생각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요리하는 재미를 느껴가기도 한다. 이번 주 메뉴는 주꾸미, 오징어 볶음, 소고기다. 야식 만두도 샀다. 과일 주스 만들어 먹을 바나나와 우유도 샀다. 남편이 바지락 칼국수 또 먹고 싶다고 해서 칼국수면도 사러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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