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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 덕에 뉴발란스 지네가 되었다

서로의 취향 물들이기

by 하나

함께 산다는 건 특별한 일이다. 특히 취향이 섞인다는 점에서 그렇다. 무던한 사람이라면 좀 나을 수 있다. 그러나 취향이 확고하면 확고할수록 함께 사는 일은 다소 스트레스로 다가올 수 있다. 이를테면 부모님 집에 살던 20대 때가 그랬다. 나의 취향이라는 것이 생겨나면서 이미 엄마의 취향으로 가득 찬 집이 못내 아쉬울 때가 있었다. 특히 엄마의 픽이었던 꽃무늬 이불이 그랬다. 이불은 가격이 나가는 물건이었기에, 쉽사리 바꾸지도 못했다. 그러다 침구도 브랜드와 가격대가 다양해지며 드디어 내가 좋아하던 베이지색 이불로 바꿨을 때의 행복은 이불을 덮을 때마다 몰려오곤 했다.


그랬다. 결혼은 현실이라 하는 이유도, 결혼은 단순히 사랑 이외에 상대의 물건, 생활습관, 하물며 청결도까지를 모두 받아들여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가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에 이 정도를 나열한 것이지, 결혼 전체를 본다며 상대의 부모님 및 종교, 미래에 대한 가치관 등 중요한 것은 더 끝이 없다.


결혼 후 서로의 빨래를 함께하게 된 일도 나에게 색달랐다. 특히 속옷은 민감한 영역 아니던가. 또 서로의 속옷을 개줄 때는 어땠던가. 그 오묘한 감정은 느껴본 자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결혼은 자연스레 서로의 취향이 물들이게 되는 일이었다. 대표적으로 각자 좋아하는 물건을 대할 때가 그랬다. 남편은 신발 브랜드 중에서도 뉴발란스를 특히 좋아하는 편이다. 구두와 같이 운동화 외의 제품도 품어야 하기에 모든 제품이 뉴발란스일 수는 없다. 하지만, 운동화 중에서는 뉴발란스 제품만 품는다. 그리하여 그 기준은 내게도 적용되었다.


뉴발란스 지네가 되어가다

나는 학원에서 일하는 동안 운동화를 신는다. 회사를 다닐 땐 회사로 출근 후 보통 실내화로 갈아 신었다. 그런데 현 학원은 강사마다 1개의 강의실을 독점적으로 주는 구조가 아니다. 내가 주 4일을 출근한다면, 나머지 주 3일은 다른 강사가 활용한다. 그렇기에 물건을 두고 다니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매번 실내화를 챙겨 다니자니 그것도 불편하여 결국 운동화를 착용한 채로 일한다. 한 때는 크록스를 신고 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미관상 보기 좋지 않다며 크록스를 금지한다는 내용을 들었다. 특히 아이들 및, 학부모님들을 종종 마주해야 하기에 용모단정이 무엇보다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리하여 나는 여름에 운동화의 답답함을 토로하게 되었다.


그걸 들은 남편은 뉴발란스 모델 중 메쉬 소재의 운동화를 사러 가자고 했다. 처음엔 얼마나 다르겠어했는데, 소재가 바람이 잘 통하여서인지 일반 운동화보다 훨씬 시원했다. 또 필리핀 출장을 가서는 국내에는 나오지 않는 모델이라며 보라와 초록 등 다양한 빛깔을 뿜어내는 산뜻한 뉴발란스 모델의 신발을 사 오기도 했다.


그 이전에 이미 뉴발란스 커플 운동화로 맞춘 것이 2개 있었기에, 이렇게 총 4개의 뉴발란스 운동화가 추가로 생긴 셈이었다. 이런 남편의 취향 덕에 이젠 이 4개의 운동화를 신기에도 바쁘다. 그리하여 내가 별도로 운동화를 구입하는 일은 생기지 않고 있다.


예쁜 식기 쓰기를 물들이다

나의 경우는 남편에게 예쁜 식기 사용하기를 물들이고 있다. 솔로 때에는 적당한 식기를 썼지만, 그래도 신혼이 되면서 예쁜 식기 한 세트 정도는 사고 싶었다. 이 이야기를 하니 남편은 쿠팡에서 가성비 제품으로 주문을 해줬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식기는 좀 더 비쌌다. 가성비 제품으로 충족이 되지 않았다. 결국 세일 기간에 맞춰 예쁜 식기 한 세트를 들여놨다. 남편은 이미 구입한 식기가 있는데 안 사도 되는 물건을 산 게 아니냐며 처음엔 다소 부정적인 감정을 드러냈다. 그러나 새로 구입한 식기를 쓰다 보니 남편도 이 제품은 무게감이 다르다며 차별되는 부분을 언급했다. 그렇게 디저트 식기도 구입했다. 처음엔 가격에 다소 놀라 하더니 이내 예쁘다며 이야기했다.


함께 키위를 먹을 때의 일이었다. 보통 새로 구입한 디저트 식기로 함께 키위를 파먹는데, 그 식기가 설거지통에 담겨있었다. 다른 수저를 꺼내와도 된다는 말에 굳이 그 디저트 식기를 새로 설거지하여 가져다주는 것이 아닌가. 나의 취향을 맞춰주기 위한 행동이었던 건지, 남편도 이제 예쁜 식기로 먹는 즐거움을 깨달은 것인지 까지 묻지 않았다. 다만 이제 남편도 식사 시간에 맞춰 예쁜 식기를 세팅한다는 사실이었다.


이외에도 지난겨울엔 따뜻한 매트에 대해 부정적 견해를 드러내던 남편에게 '온수 매트'를 영업한 일도 있었다. 무척 성공적이었다. 날이 더 추워졌을 땐 오히려 남편이 먼저 온수 매트를 켜기도 했다.


이렇듯 결혼은 서로의 물건 선택이 서로 섞이는 일이다. 상대의 픽을 부정적으로 보기 시작하면 끝이 없겠지만, 그래도 못 이기듯 써보고 그 제품의 좋음에 서로 공감하게 되는 것. 이 이야기를 결혼의 재미있는 점에 대해 묻는 남편의 친구에게 들려주니 본인도 빨리 결혼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했다. 재미있어 보인다고 말이다.


그렇다. 결혼은 재미있는 점이 분명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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