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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프로 Feb 08. 2022

왜 마케터가
스토리텔링을 고민하냐구요?

벌써 10년이 넘은 기억입니다. 누군가 직업을 '에반젤리스트'라 소개하길래 꽤 당황한 적이 있었죠. 마케팅 관련 모임이었으니, 종교 관계된 일을 하시는 분은 아닐 것 같고.. 도대체 무슨 일을 한다는 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는데요. (그분들께 미안하지만, 아직도 잘은 모르겠다.) 


최근엔 '스토리텔러'라는 타이틀을 쓰는 분들이 늘어났더군요. 참고로 말하자면, 위의 '에반젤리스트'도 그렇고, '스토리텔러'도 그렇고 둘 다 실리콘밸리의 빅 테크 기업들에서 시작됐습니다. 


에반젤리스트 보다야 직관적이지만, 스토리텔러는 또 뭘까요? 할리우드도 아닌 IT 기업에서 왜 '스토리텔러'가 필요한 거죠?


저는 스토리텔러가 아니기 때문에, 미리 스포를 하자면 그 이유는 'SNS' 때문입니다. 




소비자는 더 이상 광고를 믿지 않는다.


미디어의 변화는 광고의 형식이나 내용에도 꽤 많은 변화를 일으켰지만광고주나 광고회사에서 여전히 오해하고 있는 점이 있습니다. 좋은 모델, 멋진 크리에이티브가 제품을 팔아준다는 믿음이죠. (에이, 요즘 누가? 하시는 분이 계신다면 지금 TV 광고들을 몇 편 보세요..) 


사실 우리가 아날로그의 세계에서 만들었던 마케팅의 원칙들이 여전히 각 기업과, 광고 회사와, 그리고 미디어 회사들을 움직이는 메커니즘이기 때문에 디지털 세계에서도 이를 완전히 바꾸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를 생각해보죠. 


우리 주변엔 '코드 커터족'(TV 선을 끊는다는 의미로 TV를 보지 않는 사람)이 흔해졌습니다. 굳이 정해진 시간에 모여 앉아 드라마나 뉴스를 기다릴 필요가 없죠. TV 프로그램도 짤로 보거나, 넷플릭스, 웨이브 등의 OTT를 통해서 봅니다. 대부분 유료 서비스를 이용하니 누군가 공들여 찍은 광고도 볼 일이 없죠. 


얼마 전 마케터분들을 만나서 요즘 가장 괜찮은 TV 광고가 뭐던가요? 하고 물었는데.. 아무도 대답을 못하더군요. 딱히 떠오르는 게 없어서일 수도 있지만, 대체로 TV 광고를 볼 일이 없는 게 더 큰 이유일 겁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이제 어떤 브랜드의 메시지를 접할 때 '원본이 아닌 누군가의 공유'를 통해 접하게 됩니다. 즉 SNS에 태워질 가치가 있는 정보만이 소비자에게 전달된다는 거죠. 


우리가 매일 습관처럼 마시는 '스타벅스 아아'는 광고 때문에 마시게 됐나요? (스벅 광고를 본 적이 있나요? 다른 회사에서 사은품으로 내세운 광고 말고?) 서점가엔 '소크라테스 익스프레스'가 베스트셀러라는데, 이 책이 갑자기 인기를 끌게 된 배경은 뭐였을까요? '당근 마켓'을 처음 알게 된 계기는 뭐였죠? 지금 내 스마트폰 화면을 차지하는 수많은 앱들은 왜 깔게 됐을까요? 


아마도 누군가의 추천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카톡이나 인스타, 유튜브 영상을 통해서죠. 그것도 아니면 요즘 트렌드를 소개해주는 뉴스 레터나 드라마 속 PPL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역시 전통적인 느낌의 광고는 아니죠. 


우리는 유튜브 영상을 만들거나, 광고를 할 때나.. 여전히 조회수, 도달 같은 것을 중요시합니다. 기존 광고의 문법이죠. 하지만 SNS에서의 문법에서 본다면 우리의 이야기가 재공유될 가치가 있는가가 훨씬 중요한 요소가 되지 않을까요?  


과거의 '광고'가 '도달'과 '기억'을 위한 것이라면,
지금의 '스토리'는 '공감'과 '공유'를 위한 것이다.




항상 소비자처럼 생각하라.


고객이 왕이다. 소비자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 이런 얘기는 우리가 광고를 만들거나 스토리를 짤 때 지겹게 듣는 말이고, 또다시 반복하는 게 식상할 정도지만 늘 놓치는 부분입니다. 마케터는 마케터입니다. 우린 여전히 좋은 제품, 또는 좋은 콘텐츠는 소비자에게 도움이 되며, 그것이 곧 소비자들의 생각이라는 신앙을 갖고 있죠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소비처럼 입장을 반영하기 위해 진행하는 FGI(또는 FGD, Focus Group Interview)의 풍경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마케터 : 이번 신제품은 성능은 20% 개선되었으면서, 기존 제품 대비 1.5배 오래 쓸 수 있어요..
소비자 : 정말요? 그동안 자주 교체해야 해서 아까웠는데, 정말 잘 됐네요. 
마케터 : 그럼, 기존 제품 대비 10% 정도 인상된 가격에 출시된다면, 구매하실 의향이 있으신가요? 
소비자 : 그럼요. 더 오래 쓸 수 있는 제품이니 오히려 절약되는 거 아닌가요? 바로 구매하시 싶네요. 


물론 실제로 저렇게 하진 않겠지만, 보고서를 요약하면 대충 이렇단 의미죠. 소비자는 좋은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며, 그런 제품은 좀 비싸도 구매할 것이라는 착각(?)에 바탕을 둡니다. (사실은 내부적으로 믿고 싶은 걸 그냥 확인하는 과정이죠) 


이에 관해 다른 에피소드 하나를 보죠. 


< 중소 가전 업체의 사례 > 

회사에서 나올 신제품을 테스트하기 위한 대기업 제품과 자사 제품의 블라인드 테스트를 진행했다. 목적은 브랜드를 떼고 보면 합리적인 가격의 자사 제품을 선택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

결과는? 대다수 소비자들이 대기업 제품을 선택했다. 비슷한 성능에 훨씬 비싼 가격으로 책정되어 있음에도... 왜 그랬을까? 소비자는 이미 익숙한 디자인과 사용자 환경에 가치를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이 테스트의 최종 보고서는 만들어지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세운 가설이 틀렸기 때문이죠. 테스트에 맞는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가설에 맞춘 테스트가 필요했던 셈입니다. (여러분의 회사라면 다른 결정을 했을까요? 그렇다면 아직 관료주의화되지 않은 겁니다.) 


그럼 소비자는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요? ‘소비자는 합리적이지 않아서’라는 고전적인 답도 존재하고, '브랜드의 힘'(브랜드 자체를 가렸어도 알 수 있는..)으로 답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각자의 취향이 명확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록 그것이 어떤 마케팅의 결과라도 말이죠. 


소비자는 각자 SNS를 하면서 자기 정체성이 더욱 강화되고 있습니다. 또 어떤 제품을 쓰는 사람인지가 곧 내 이미지와 연결된다고 믿죠. 인스타그램에 올라간 사진이, 카톡 프사가, 블로그에 올린 리뷰가 모여 내가 되거든요.  


그럼에도 우린 무슨 모션이니.. 몇중 필터니 이런 걸 알리길 원합니다. 혹시 이런 걸 강조하는 인플루언서라면 바로 뒷 광고를 의심받지 않을까요? 마케터가 해야 할 일은 그들에게 기능이 아닌, 적당한 이야깃거리를 제공하는 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광고주는 누차 효율이 떨어진다 강조했음에도 극장광고를 원하더군요. 어두운 극장에서 앞만 보고 있어야 하니 우리 제품 광고를 더 정확히 전달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였습니다. 요즘 광고 잘 안 보니 여기가 가장 적합하지 않겠냐며.. 


또 다른 광고주는 월 1억 정도 하는 고속도로 광고(흔히 야립광고라고 하는)를 1년 계약했는데, 오너가 출퇴근 길에 보시기 좋더라는 이유였습니다. 


우리는 정말 소비자의 입장에서, 오늘의 소비자들에게 맞는 마케팅 방식을 고민하고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스토리를 만들까요? 어떻게 소비자들의 우리 스토리를 퍼트리게 할까요? 다음 글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 좀 더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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