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엔리께 Aug 19. 2022

해를 기다리는 사람들

《Bagan, MYANMAR》










 터미널에서 나오자 마부들이 승객들을 맞았다. 일출장소로 데리고 가기 위함인데, 바간_Bagan을 찾는 많은 여행자들이 사원의 꼭대기에서 일출과 일몰을 구경한다. 제시된 가격 중에서 나름 합리적이라 생각된 것을 골랐더니 어린 마부가 나와 동행하게 되었다. 아직 잠이 덜 깬 듯 눈이 졸린 소년의 이름은 '쪼쪼'였다. 쪼쪼의 옆에는 더 어린 동생이 반쯤 누워 자고 있었다. 마차를 타고 바간의 새벽 공기를 가로질러 달렸다. 번잡하고 복잡던 양곤과 다르게 평화롭고 목가적인 바간의 풍경에 지난 10시간 야간 버스에서 쌓였던 피로가 녹아내렸다.

 바간에 있는 수천 개의 사원들 중에서 일출로 유명한 곳이 몇 군데 있었다. 그중 하나에 도착했더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원의 꼭대기 앉아 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머리 위로 스무 개도 넘는 열기구가 하늘을 날고 있었는데, 아마도 열기구에서는 수천 개의 사원 사이로 햇살이 스며드는 모습을 내려다볼 수 있으리라. 풍선 수 십 개를 풀어놓은 듯 알록달록하게 하늘을 가득 채운 열기구를 보고 있으니 꼭 동화 속 풍경 같았다.






 낮에 사원에서 만난 여인은 어린 아들과 뭔가를 손질하고 있었다. 이따 저녁에 내다 팔 기념품이라고 했다. 레나토와 미겔(우리는 양곤에서 만났다가 바간의 숙소에서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나는 한낮의 뜨거운 볕도 피할 겸 그녀의 곁에 앉아 그 작업을 지켜봤다. 단조로운 작업 속에서 침묵이 계속되자, 그녀와 우리는 서로의 가족과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질문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어쩌면 서로 닿지 않을 먼 곳의 이야기겠지만, 그렇게 접점이 없기에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녀는 우리의 얼굴에 '타나카'라 불리는, 나무를 갈아 물에 희석시킨 미얀마식 천연 자외선 차단제를 발라주며 깔깔 웃었다. 재미난 양으로 얼굴에 바르며 그녀도 재미나 했다. 우리에게는 오후 일정이 있었기에, 그녀가 이따 저녁에 어디에서 기념품을 팔 건지 물어본 뒤 다시 만날 약속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즈음 우리는 마치 오래된 동네 친구들이 행진하듯이 오토바이를 나란히 몰며 일몰 장소로 향했다. 언덕 위의 울타리 안쪽으로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일몰을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신기한 게, 한낮엔 그리 조용하던 동네가 해가 뜨고 지는 시간만 되면 어디선가 사람들이 몰려나와 분주해졌다. 다들 어디에 있다가 나오는 것이람. 인파 사이에 그녀와 어린 아들이 보였다. 낮에 작업하던 기념품 외에 다른 것들도 함께 팔고 있었다. 잠깐의 대화를 나눈 사이지만 그녀는 우리를 보자 상당히 반가워했다. 내놓은 기념품들을 흥미롭게 살펴보다가 나는 열쇠나 클립 따위를 보관할 용도로, 나무로 만든 작은 함을 샀다. 이 함을 열어볼 때마다 아마도 나는 한낮의 풍경을 떠올리겠지. 나는 사람들이 한 곳을 바라보며 서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어서 언덕 아래쪽에 앉아 그들을 바라보았다. 빨갛던 달궈졌던 대기가 서서히 보랏빛으로 식어가는 가운데 모두가 숨죽여 일몰을 지켜보는 광경은 꽤나 낭만적이었다. 사람들은 해가 뜨는 순간엔 소원을 빌겠지만 해가 저물어가는 순간엔 무슨 생각을 할까.


- 미겔, 너는 지는 해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해?

- 음... 오늘 저녁에 뭘 먹어야할지부터 생각해야겠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