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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리께 Aug 19. 2022

평화 속의 사람들

《La Paz, BOLIVIA》







 볼리비아의 수도, 라 파즈_La Paz는 '평화'라는 뜻을 가졌지만 전혀 평화롭지 못한 도시로 여행자들 사이에서 유명했다. 다양한 수법의 범죄들이 여행자를 노리기 때문에 매 순간 긴장을 늦춰선 안된다고 했다. 여행자를 상대로 한 범죄가 어찌나 극성인지, 소매치기 정도는 정말 소소하게 일어난다 하여 '소'매치기란 우스개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며칠 지내본 바로는 아늑하고 편안했다. 그 편안함 덕에 며칠 눌러앉았더니 일정이 계획보다 밀려버려서 아쉽지만 떠나야 했다. 버스터미널에서 표를 예매하는 그 잠깐 사이에 비가 내렸다. 밖으로 나왔더니 낡은 건물들 위로 무지개가 피었다. 마치 아치형 다리를 놓아 사람들이 도시의 이쪽에서 저쪽으로 건널 수 있도록 한 듯이 말이다. 도심 속에서 이렇게 뚜렷한 무지개를 본 적이 없어서 나는 넋을 놓고 한참을 바라보았다.



 

 분지 형태의 라 파즈는 옴팡한 구덩이 속에 도시가 들어찼다. 구덩이의 위쪽에 서면, 마치 블록 장난감을 끼워 넣은 것처럼 건물이 빼곡히 들어선 도시가 발밑으로 깔린다. 시외버스를 타면 분지 위쪽으로 난 길을 지나게 되는데 야간 버스에서 내려다본 라 파즈는 낮에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셀 수 없이 빼곡한 빛들이 창문에서, 거리에서, 그리고 자동차에서 흘러나와 별이 되었다. 마치 우주를 내려다보는 것 같았다. 사람의 생김새는 대륙 따라 피부색 따라 다르지만, 사는 모습은 이렇게 멀리서 보니 다 똑같구나. 그 속으로 나의 일상이 어렴풋하게 보이는 것도 같았다.

 참 우스운 것이, 일상에서는 여행이 간절하지만 여행 중에는 일상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일종의 향수다. 집밥이 생각나기도 하고, 시간 맞춰 보는 예능 프로그램이 생각날 때도 있다. 비 오는 날이면 친구들과 들렀던 포장마차가 생각난다. 알람에 맞춰 일어나는 것도 그립고 아침마다 그날 입을 옷을 고르는 것도 소소한 재미였음을 깨닫는다. 나는 늘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 했지만 한편으론 따박따박, 충실히 살아내는 그 생활에 '나는 무리 없이 잘 살고 있구나.' 하며 일종의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나 보다. 무지개 아래에서 여느 때처럼 살아가던 사람들을 떠올렸다. 시장거리의 사람들,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던 사람들, 손을 잡고 걸어가던 사람들... 버스를 타고 라 파즈를 떠나는 밤에 나는 문득 그들의 평화가 부러워졌다.

 하늘에서 무지개 피고 땅에서는 별이 쏟아진다. 우리가 사는 일상의 모습은 이렇게 아름답고 빛이 난다. 일상에 힘들어하지 말자. 오늘을 충실히 살아내는 것은 스스로에게 자부할 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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