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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리께 Aug 19. 2022

해변을 걷고 있는 낙타

《Asilah, MOROCCO》








Dear X,


 이렇게 볕이 좋은데 해변에 왜 아무도 없냐고, 모로코의 아실라_Assilah에 도착한 첫날에 네가 했던 말이 기억나. 황금빛 모래가 우리 앞에 광활하게 펼쳐져 있었고, 그 위에 파란 바다 한 줄이 그어져 있었지. 이렇게 끝없이 넓게 뻗은 해안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었다는 뒤이은 너의 말에 여기 사람들은 이렇게 멋진 해변을 매일 같이 볼 수 있어서 참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어. 다만 대서양과 접한 그 작은 마을은 여행객이 찾지 않는 계절엔 졸릴 만큼 한적해서 저녁이 되어서야 사람 몇 명 외출할 뿐, 마을의 어느 누구도 물놀이할 생각을 하지 않았지. 낮에 해변을 걸었던 건 우리 말고 낙타뿐이었잖아. 한창 바다를 구경하던 우리 앞으로 난데없이 낙타 한 마리가 지나가서 무척 놀랐던 기억이 나. 여행객들을 낙타에 태우고 해변을 걷는 이벤트가 드문 계절엔 이렇게 낙타를 방목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어. 다만 남녀 주인공이 말을 타고 해변을 달리는 장면에만 익숙해 있다가 막상 낙타가 있는 바다를 보니 낯설었던 것 같아. 새삼 아라비아 정취가 느껴졌었어. 우리는 한참 낙타를 바라보았지. 흐릿하고 모호한 형태의 점이 되어 홀연히 사라질 때까지.

 그러고 보니 우리와 낙타 말고 몇 마리의 새들도 있었어. 새들은 분주히 움직이며 파도를 따라 쪼르르 뛰어들었다가 밀려드는 파도를 피해 다시 뛰어나오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파도에 날개가 젖어 주저앉아버린 벌레들을 쪼아 먹고 있었던 거였어. 우리도 새들처럼 파도를 뒤쫓아 들어갔다 다시 뛰어나오길 여러 차례 반복하다가 어느 순간 바보 같은 행동에 서로 민망해져서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었지.

 벽화가 그려진 좁은 골목들을 누비다가 햇볕을 피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노새 몇 마리가 주인 없이 걸어 다니던 것도 떠올라. 느닷없이 노새를 마주쳤는데도 이상하게 의문이 들지 않았어. 이 동네는 어차피 사람만 빼고 다른 어떤 동물들을 마주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할 것 같지 않았거든. 심지어 앞으로 어떤 동물들을 보게 될지 살짝 궁금해질 지경이었으니. 노새들은 줄을 지어 느릿느릿 걸었는데,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서 가까이 가서 노새들의 눈을 쳐다보았지만 그들은 나를 본체만체 묵묵히 앞으로만 걸어갔었어. 아실라는 심심한 동네지만 탕헤르, 셰프 샤우엔, 카사블랑카 같은 모로코의 다른 도시들보다 더 기억에 남아.




 하늘에서 불덩이라도 떨어지는 듯 햇볕이 뜨거운 오후에 우리는 낡은 호텔에 앉아 하루 종일 바다를 바라보았지. 홍차에 설탕과 민트를 잔뜩 넣은 모로칸 티와 중동식 사탕의 맛을 나는 아직도 잊을 수 없어. 향긋하고 달달한 내가 입안에 계속 맴돌았거든. 그렇게 한 모금 머금은 채로 가만히, 물 묻은 풍경을 응시했어. 갈매기 소리, 파도소리, 바다내음... 광대한 바다는 좁은 창을 비집고 밀려들어와 냄새와 소리로 좁디좁은 방안을 가득 채웠었지. 눈을 감고 온몸을 바다에 던졌던 그 시간들을 언젠가 다시 만끽할 수 있을까.


                                                                                                                             Yours truly,

                                                                                                                                  Enriq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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