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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엔리께 Aug 19. 2022

조용히 휴일을 보내는 동네

《Hastings, UK》







 우리는 휴일을 맞아 헤이스팅스_Hastings행 기차에 올랐다. 런던의 차링 크로스 역에서 두 시간가량을 달려 도착한 이 작은 해안 동네는 정말이지 한적하고 평화로웠다. 곧 남미 여행을 앞두고 있던 내가 영국을 떠나기 전에 함께 근교 여행이라도 다녀오자며 크리스가 제안한 즉흥여행이었다. 우리는 걸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는 밝은 적갈색의 자갈이 깔린 해변을 걷다가 마음이 몽글몽글해져서는 그 자리에 가만히 누워 햇볕을 쬐었다. 잔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자갈 틈으로 꼬르르, 꼬르르 물이 차오르는 소리를 들었다. 해변의 한쪽에서는 곳곳이 부서진 배들이 복원 중이었는데, 배의 속이 어찌 생겼는지 궁금해서 텅 빈 그 안을 한참 들여다보다가 문득 배가 고파져 근처의 식당으로 들어갔다.  

 특이하게도 그 식당은 주방의 한가운데 두어 개의 식탁을 놓아 손님들을 앉히는 곳이었다. 우리는 한창 재료를 손질 중인 직원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붉은 샬롯과 레몬, 바질, 당근과 리크가 단정히 손질되어 바구니에 담기는 모습을 구경했다. 우리는 식재료들의 신선한 향을 맡으며 화이트 와인 한 잔을 먼저 마셨다. 이어 생선살을 잘게 부수어 바삭한 빵 위에 얹은 뒤 올리브유와 후추, 소금을 뿌린 오픈 샌드위치와 샐러리로 맛을 낸 홍합 스튜가 나왔다. 식탁 위로 드리워진 햇살 속에서 우리는 근사한 식사를 했다.

 식사 후 달뜬 기분을 안고, 성터가 남아있다는 언덕을 올랐다. 언덕 위에도 역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성채는 죄다 허물어진 채 성벽 아래쪽만 간신히 남은 성터에서 바다를 내려다보았다. 구름 한 점 없었고 서쪽으로 기울어가는 태양은 북해에 부딪혀 반짝이는 반사광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이스크림 미니 트럭에서 콘을 하나 사서 우리는 풀밭에 앉았다. 갈매기들이 마치 사람처럼 풀밭에 앉아 볕을 쬐고 있었다.

 따스한 오후가 되자 마을은 잠이 쏟아질 듯 나른하고 조용해졌다. 빈티지 가구와 소품들을 진열해놓은 샵들을 구경하다가 문득 사람들은 다들 어디에 있을지 궁금해졌다. 이렇게 좋은 볕을 두고 우리만 신이 난 것일까. 거리에 얌전히 늘어선 집들을 보며 저 안 어디선가 누군가는 친구들을 모아 파티라도 하고 있겠지, 상상해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휴일인데, 이렇게 조용할 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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