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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문정 Aug 08. 2023

80년대생 여자들은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마흔여자탐구생활> 프롤로그


‘80년대생 여자들은 왜 이렇게 문제가 많아? 10대에는 빠순이 짓 하더니 20대에는 남자 등골 빼먹는 된장녀... 30대 돼서는 우르르 몰려가 맘충 짓을 하고 있어.’


한 신문 기사에 달려있던 베스트 댓글인데 수백 명의 추천을 받아 상단에 올라가 있었다. 평소 댓글을 잘 보지 않는 편인데도 눈에 턱 걸려들어왔다. 무시하면 되는 악플인 걸 이성적으로는 알면서도, 그 댓글이 잠시 나를 멈춰 세웠던 이유는 내가 80년대생 여자이기 때문이기만 해서는 아니었다.


80년대에 태어난 여자라면 2023년을 기준으로 대부분 삼십 대 중반에서 사십 대 중반까지의 나이다. 80년대생 여자를 한데 묶어 까만 쓰레기봉지에 밀어 넣어버리는 이 댓글을 보자 '빠순이' '된장녀' 같은 말을 들었던 기억이 빠르게 흘러 들어서였다.


어릴 때 다녔던 초등학교 운동장을 십 년 만에 찾아와서 여기저기를 둘러보는 사람처럼 새삼스러웠다. 그리고 떠올렸다. 그 말을 면전에서 듣던 때를. 그게 수치스러워서 한사코 고개를 흔들던 때를.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


처음에는 ‘소녀팬’이었다. ‘빠순이’가 아니라. 1992년 ‘서태지와 아이들’이 나타났고 한국 대중음악계에서는 댄스와 힙합이 주류가 됐다. 특히 90년대 후반은 1세대 아이돌 그룹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다.


1996년 HOT가 데뷔했고 97년에는 젝스키스와 SES가, 98년에는 핑클이 데뷔했다. HOT의 팬은 흰색 풍선을, 젝스키스의 팬은 노란색 풍선을 흔들었으며, god의 팬들은 하늘색 풍선을 들고 응원했다.


요즘은 초면인 사람에게 “MBTI가 어떻게 되세요?”라고 묻는 것이 익숙하듯, 십 대이던 그때의 우리는 처음 만나면 “연예인 누구 좋아해?”라고 물은 뒤 “그중에서 누구 제일 좋아해?”라고 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같은 연예인을 좋아할수록 친해지기 쉬웠다.


그때의 우리에게 어른들은 말했다. 아이돌은 상품이지 가수가 아니라고. 가수라면 노래를 잘해야 하는데 립싱크를 하는 이가 어떻게 가수일 수 있냐고. 가수도 아닌 이들을 좋다고 따라다니는 골 빈 십대라면서 비하하는 ‘빠순이’는 너무 일상적으로 쓰였기에 모욕감을 느끼는게 예민하다고 자책될 정도였다.


2021년 출간된 책 <지금 여기의 아이돌, 아티스트>라는 책을 보며 격세지감을 느낀 것도 그 기억 때문이었다. 저자인 대중음악평론가 김영대는 아이돌이 이제는 아티스트라 불러도 될 만큼 성장했다고 말했다. 90년대에 등장한 아이돌은 그저 아이돌일 뿐이었지만 그로부터 이십 년이 훌쩍 넘은 뒤의 아이돌은 아티스트라 불리고 있다.


2023년에 BTS나 뉴진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그러지 않지만 2000년에 HOT나 젝스키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빠순이’로 불렸다. 80년대생이 유독 극성이어서 ‘빠순이’라고 불려야 했을까?



tvN '화성인 바이러스'



잊고 있던 ‘된장녀’라는 말에도 딸깍, 불이 켜진다.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한국인들은 아메리카노를 마시기 시작했다. 커피 전문 브랜드 매장이 우수수 들어선 것도 그 시기다. 한국 스타벅스 1호점은 1999년 이화여대에 생겼는데 아메리카노 가격이 2,500원(숏 사이즈 기준)이었다. 당시 최저임금은 시간당 1,525원이었고 자장면 가격이 평균 3,500원 정도인 걸 감안하면 비싼 가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걸 마시는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도, 특히 성별의 문제로 몰아갈 이유는 없었음에도 스타벅스 로고가 그려진 종이컵을 들고 다니는 건 된장녀의 상징이 되었다. ‘맛도 잘 모르면서’ ‘남자에게 사달라고 하면서’ 허세를 부리는 여대생의 이미지를 거기에 구겨 넣은 잣대는 이십 대 여성을 평가하는 기준 중 하나가 되었다.


‘된장녀’라는 말의 반대말로 생겨난 말이 ‘개념녀’다. 브랜드를 따지지 않고, 연애할 때 더치페이를 하거나 데이트통장을 쓰는 여성은 개념녀라 불리었다. 생각하면 모두 다 우습기만 하다.



사진: Unsplash의Alex Ivashenko



나는 엄마로부터 “나처럼 살지 마라”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80년대 생들의 어머니 세대인 60년대 생에게 결혼이나 출산은 선택이 아니었다. 그건 여덟 살이 되면 학교에 가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었다.


80년대를 살아가는 어머니들에게 여전히 아들을 낳는 건 중요했다. 마침 태아 성감별을 가능하게 만든 초음파 기기가 상용화된 게 80년대부터다. 자연 상태라면 정상으로 나타나는 출생 성비(출생 여아 백명당 남아 수)가 아들과 딸이 106 대 100인데 반해 호랑이띠·용띠·말띠 해였던 86년·88년·90년 대구 지역의 출생 성비는 각각 126.9, 134.5, 129.9였다. 호랑이띠·용띠·말띠에 태어난 여자는 기가 세서 재수가 없다고 공공연히 떠들던 시절이었다.


나는 대구에서 호랑이띠로 태어났으니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하는 걸까? 엄마는 그 후로 생긴 여동생을 지운 끝에 결국 아들을 낳는 데 성공했노라 말한 적 있다. 그런걸 입 밖으로 꺼내놓기도 하던 때였다.


치킨 한 마리를 시키면 닭다리 하나는 아빠에게, 하나는 남동생에게 주는 걸 당연하게 여기며 자랐다. 자식이던 시절에는 아들이 더 귀한 취급을 받았는데 부모의 시절이 되자 딸을 더 선호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나는 가끔 이런 식의 변화를 체감할 때마다 의아해하곤 한다. 세상이 이처럼 빠르게 바뀔 수가 있나? 그때 정말 그런 말들을 했던 게 맞나? 그처럼 어지럼증을 느낄 때면 사십 년이 아니라 팔십 년은 살아버린 것 같기도 하다.


낯선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두리번 둘러본다. 어느새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되었다. 그때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들어버렸다.


빠순이와 된장녀라는 말을 몇 번이고 들었거나 또는그 말을 듣지 않으려고 애를 쓰다가, 이제는 맘충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 조심하고 또 조심하는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결혼 소식을 전했던 서른 살의 겨울이 떠오른다. 청첩장을 보던 한 후배가 이렇게 말했었다.


“축하드립니다. 선배도 이제 기득권이 되셨군요.” 그는 비아냥거리는 것처럼 들린다고 생각했는지 부연해 주었다.


“지방 출신으로 서울에서 취직도 하고 결혼도 하면 성공한 거죠.”


후배는 비꼬는 게 아니었다. 그걸 알기에 미소를 짓는 것 말고 더 좋은 반응이 떠오르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기득권으로 보일 수도 있을 내 삶은 신도시나 백화점이나 강남의 고급 주상복합에 있지 않다. 평일엔 보통 아침 7시에 일어나서 집 정리를 하고 아침에 아이를 유치원에 보낸 뒤, 점심 먹는 시간이 아까워 우유를 마시며 아이를 데리러 가는 시간까지 일한다. 주 2회~3회 정도는 밖에 나가 강의를 한다. 오후 5시 전에 하원하는 아이를 돌보다 저녁을 먹고 씻기고 함께 책을 읽다가 재울 때쯤이면 남편이 집에 돌아온다. 아이를 재우고 스마트폰으로 쿠팡과 마켓컬리와 이마트앱을 보면서 장바구니를 채우고 다음날 먹을 걸 챙겨두면 밤 10시가 된다.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는 하루. 그 쪼갬들 때문에 오늘도 무엇하나 온전하지 못했다고 자책하는 밤.


‘여자도 능력이 있으면 결혼하지 않아도 된다’ ‘알파걸’ 같은 말을 들으며 능력을 키우려 애쓰던 적이 있었다. 정신없이 살던 와중에 몇 개의 현실적 이유가 결정적으로 작용해 결혼을 했고 아이까지 낳았다.


아빠 같은 남자를 만날까 봐 절대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고

엄마 같이 살게 될까 봐 절대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생각했었는데….


내 선택의 과정을 돌이켜보며 크게 다르지 않을 또래 여성들을 생각했다. IMF의 여파를 앞에서 지켜보며 공무원이나 교사가 최고라는 말을 듣던 우리들, 곧 중국이 미국을 뛰어넘게 될 테니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는 말을 듣던 우리들. 밤 열시를 넘겨서까지 학교에 남아 자습을 하던 우리들. 네이트온과 싸이월드를 썼던 우리들. 그때의 우리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당신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당신도 이렇게 사는지 궁금하다.


푸석한 머리카락과 깊어지는 팔자주름을 보면서 서글퍼지는지.

어깨와 목이 습관적 긴장으로 딱딱하고 잘 때조차 입을 앙 다물어서 턱이 아플 때가 있는지.

내 인생에서조차 조연에 불과한 것 같아서 쓸쓸해진적이 있는지.

일단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하다가도 다 내려놓고 그저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는지.

불안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려서 약이나 술의 힘을 빌려야 할 때가 있는지.

이해받고 싶지만 이해받을 수 없을 거란 짐작 때문에 쏟아내고 싶은 말을 삼킬 때가 있는지.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 괜히 주변을 두리번거리고싶을 때가 있는지.


그리고...

마흔에도 이런 고민을 여전히 하고 있는 게 이상하다고 생각하는지.


<마흔 여자 탐구 생활>은 비슷한 경험을 함께 했던 80년대생 여성들에게 보내는 안부이자, 이토록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우리를 이해해 보려는 일지이자, 그간 했던 실수에 대한 부끄러운 고백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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