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여자탐구생활> 1화 -上-
“간식 시간에 토마토가 나왔는데 S가 그걸 보고는 안 먹겠다고 했어요. 제가 “먹어보고 나서도 정말로 싫으면 안 먹어도 돼. 하지만 먹어보지도 않고 싫다고 말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일단 한 입은 먹어보자”라고 했어요. 그래서 아이가 토마토를 먹었고요. 먹어본 다음에는 토마토주스 맛이 난다고 하더라고요. 앞으로도 이렇게 아이가 특정 음식을 거부하더라도 한 입 맛은 보게 지도할 생각인데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아이가 재학 중인 유치원의 담임 선생님과 면담을 하던 중이었다. 우리는 아이들이 모두 하원한 교실에서 무릎 정도 높이의 탁자를 사이에 두고 그보다 낮은 아이용 의자에 앉아 다리를 구부정하게 접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를 한 선생님은 이십 대로 보이는 앳된 모습이었다.
행여 말실수를 할까 봐 조심스럽던 중 토마토에 관한 질문을 받게 되자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망설여졌다. 선생님의 말이 너무나 지당하게 느껴져서(‘밥을 먹기 전에 손을 씻게 하려고 해요. 그래도 될까요?’ 같은 수준으로 들리는), ‘이게 굳이 물어볼 거리인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알레르기 같은 특정 사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아이가 편식하지 않도록 어른으로서 지도하는 게 맞지 않은가.
이 질문을 한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하며(특정 음식에 알레르기가 있는지를 물어보시는 건가?) 적절한 리액션을 떠올리느라 잠시 침묵이 흘렀는데 선생님은 그걸 내가 못마땅해한다고 오해한 모양이었다.
“혹시 불편하신 거면….”
긴장했는지, 또는 종일 계속된 면담으로 지쳐 있었는지 선생님이 쓴 마스크에 가려지지 못한 이마에 좁쌀 같은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다.
나는 황급히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아, 아니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골고루 먹어봐야죠. 앞으로도 그렇게 지도 부탁드립니다.”
저녁에 만난 남편과 식사를 하며 그날 있었던 면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의 질문이 너무 당연한 이야기 같아서 적시에 호응을 하지 못했다고 하니 남편이 젓가락을 움직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 그걸 신기해하는 내가 외려 엉뚱하다는 투였다.
“어떤 사람한테는 그게 당연하지 않은가 보지. 애가 거부하는데 억지로 먹인다고 싫어할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끄덕이긴 했으나 여전히 의아함이 남아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나, 왜 선생님이 '아이가 싫어하더라도 훈육해 보겠다'는 당연한 말조차 긴장하면서 해야 했는지를 체감한 일이 생기고 말았다.
네 시 삼십 분에 하원하는 아이의 손을 잡고 집에 가다가 왼팔에 뭐가 묻어있는 것 같아서 떼어주려고 보니 손목 안쪽에 작은 잇자국이 불그죽죽하게 남아있었다. 아팠느냐고 물어보니 대수롭지 않게 말하기에 나 또한 별일 아닌가 보다 하고 말았다.
이튿날도 아이는 팔에 새롭게 물린 자국이 생겨 돌아왔다. 두 번째 물려온 날은 이유를 물었더니 전날과 달리 “K가 문 거야” 하면서 꽤 오래 울먹여서 토닥여주었다. 첫날도, 둘째 날도 K가 물었다고 했다. 물린 순간에 울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아서 같이 있던 어른들이 미처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듯했다.
삼일째 되던 날 등원하면서 선생님에게 말을 해두었다. 혹시 오늘 일과 중 K가 S를 물지 않는지 봐줄 수 있느냐고. 아이들은 인과관계를 살피는데 미숙하고 자기중심적으로 이야기하거나 과장하기 일쑤이기 때문에 곧이곧대로 믿기 어렵다. 선생님은 화들짝 놀라면서 주의해서 지켜보겠다고 했다.
삼일 째 되는 날에도 K가 S를 물었기에 오후 돌봄 선생님은 자초지종을 알 수 있었다. 장난감을 가지고 다 놀고 나서 정리를 해야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S가 뭉그적거리며 더 놀고 싶다고 했고 그걸 본 K가 “빨리빨리 정리해야지” 하면서 순식간에 물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하원 시간에 맞추어 온 K의 보호자와 나를 함께 불러 그 내용을 전해주었다. S가 친구를 먼저 괴롭힌 건 아니라는 말에 일단은 안심되었다. 들어보니 그다지 심각하게 느껴지지도 않았다. 아이들이라면 그럴 수 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설 때가 많으니. S도 유치원에서 친구가 싫어하는 행동을 해서 지적을 받은 적이 몇번 있다.
나는 K를 양팔로 감싸 안고 선 보호자로부터 그저 이 정도의 대답을 기대했다.
“죄송합니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 않도록 제가 주의를 주겠습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그렇지 않은가? 아이는 실수하면서 자라기 마련이고, 어른은 그럴 때마다 가르쳐주면 되는 것이다. 남을 괴롭히면 안 된다, 공공장소에서 소리 지르며 뛰어다니면 안 된다… 같은 것들.
그러나 K 보호자의 말은 내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는 난처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아이 마음도 이해가 갑니다. 정리시간인데 친구가 안 하고 있으니 얼마나 답답했겠어요. 답답한 마음에 거칠게 행동을 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 아이 마음을 이해한다는 말이 나오다니?
나는 너무 감정적으로 들리지 않도록 주의함과 동시에 분노의 포인트를 정확히 짚어주려 애쓰며 말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아이의 답답했던 마음을 이해한다’고 하시는 게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답답하든 화가 나든, '어떤 이유에서라도 친구를 때려서는 안 된다'라고 우리가 아이들에게 말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가정에서 K에게 그렇게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이런 일이 또 발생하면 친구에게 '하지 마'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선생님께 도움을 청하도록 지도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