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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ietto Aug 06. 2020

암환자가 되면 유별나 집니다.

퇴원도 유별나시네요.

 수술 2일째, 암환자가 된 내게 몇 가지 약이 배달되었다. 그중 하나가 평생 복용해야 할 씬지로이드다. 평소에 비타민도 잘 챙겨 먹지 않는데 까먹지 않고 매일 먹을 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섰다. 그것보다 더욱 걱정인 것은 약을 복용하고 적어도 1시간은 공복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게 무슨 큰 일이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눈을 뜨면 가장 배고픔을 심하게 느끼는 나에겐 참기 힘든 고통일 수밖에 없다.




 수술을 집도하신 교수님께서 수술 후 상태를 확인하러 오셨다. 첫 번째 확인했던 것이


"목소리 한 번 내보세요"


였는데 한 마디 내뱉곤 입을 꾹 다물어버렸다. 내 안에 짐승이 있는 줄 알았다. 지하 5000m는 되는 땅 속에서 울리는 동굴 소리에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럴 리 없다며 고개를 갸우뚱하셨지만 나는 그 이후로 한참 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가끔 수술 중에 갑상선 주위 성대가 다쳐 목소리가 변형되기도 하는데 혹시나 내가 그렇게 된 건 아닌가 겁을 먹고 쉰소리를 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몇 시간 지나지 않아 곱진 않지만 여자의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유별나 질 수밖에 없었다. 난생처음 암이라는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녀석과 맞서 싸우려니 작은 것 하나하나도 놓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중에 갑상선암으로 아주 유명한 카페에서 정말 수없이도 읽었던 글이 하나 있다.


                                                               닭. 발. 을 조심할 것.


 가만히 잘 있다 불시에 짜릿한 전기 통함과 내 팔과 다리인데 움직임을 통제할 수 없는 쥐. 야옹 야옹 야옹을 세 번 외치고 코에 침을 바르고 나면 그 끔찍한 쥐가 달아난다는 그 쥐. 그 쥐와 함께 닭발을 경험할 수 있다는데? 무슨 말이냐면 갑상선 전절제를 하면서 부갑상선이 다치거나 수술 후 일시적으로 칼슘 수치가 떨어질 수 있는데 이때 손과 발이 닭발처럼 휙 꼬꾸라진다고 한다. 많은 분들이 이로 인한 고통을 겪었다는 글을 보고 한동안 목소리를 낼 수 없었던 나는 이것 또한 미리 남편과 엄마에게 신신당부했었다.


"손과 발을 잘 봐. 혹여나 닭발처럼 되면 간호사를 불러줘"


다행히 닭발이 되는 경험은 해보지 않았고, 나의 호들갑은 그렇게 그냥 호들갑으로만 끝났다. 보통 대학병원은 암 수술을 했다 할지라도 생명에 지장을 주는 정도가 아니면 빠른 퇴원을 권한다. 갑상선 양쪽을 다 떼내고 오른쪽 림프절도 제거했는데 4일 만에 퇴원을 하라신다. 심지어 목에 꽂아 놓은 배액관에 피도 멈추지 않았는데.


" 간호사 선생님, 배액관에 피가 안 멈추는데 퇴원은 어떻게 합니까?"


자칫하면 배액관을 달고 KTX를 타고 내려갔다가 다시 피가 멈추면 서울에 달고 올라와야 할 판이었다. 아무래도 나는 못한다 싶어 주치의 선생님께 부탁을 해서 하루 더 입원을 하고 경과를 지켜보기로 했다. 기적이었다. 밤새 피 양이 아주 많이 줄었다. 다행히 나는 배액관을 목 양 쪽에 달고 퇴원하는 끔찍한 일을 면할 수 있었다.


퇴원 후 근 일주일 만에 만난 바깥세상은 생각보다 너무 아니었다. 일단 너무 심하게 더웠다. 수술로 절개해 놓은 부위가 햇빛에 노출되지 않도록 목에 손수건을 두르고 잘 가눠지지 않던 목에 편안함을 선사하기 위해 목베개를 하고 있던 행색이라 땀 샤워를 했다. 여기까진 그럭저럭 참을만했다. 문제는 차 안에서였다. 건강한 사람이라면 절대 경험해보지 못할 이 불안감. 차가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내 목도 함께 넘실대며 부러지는 것만 같았다. 목베개를 얼마나 열심히 부여잡았는지 모른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 이후로도 한동안 목을 잘 움직이질 못했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이 문제는 차차 해결되었다. 그리고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던 불안감과 두려움에서도 차차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래, 외관상 나는 거의 다 나은 환자였다. 하지만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호르몬의 노예가 되었고 시도 때도 없이 우울감이 밀려왔으며 날씨가 좋으면 좋다고, 흐리면 흐리다고 심술을 부리며 가장 가까운 내 옆사람을 힘들게 했다.


그렇게 2차 전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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