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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rietto Aug 06. 2020

수술 보다 무서운 대기실의 싸한 공기

미션 :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를 깨우거라.

 onestop 검사란걸 했다. 아마도 지방에서 올라온 환자를 위한 병원의 배려인 듯 했다. 수술에 필요한 9가지 정도의 검사를 했는데 역시 그 중 최고는 CT촬영이다.  조영제가 들어가는 순간 고량주를 한 모금 탁 털어 넣는 그 느낌, 혈관을 따라 불 타오르는 느낌. 어후 정말이지 그 느낌 별로다.

 그리고 검사  이후 애타게 수술 날짜를 기다렸다.


 4년이 다 되어가지만 2016년도 8월 8일은 또렷하다. 전국적으로 매일 최고 기온을 갱신하며 폭염 주의보를 넘어 경보, 특보까지 내렸던 그 해 여름, 수술을 위해서 3일 정도 일찍 입원을 했다. 전이된 임파선의 위치를 그리는데 목 주변 여기저기 동그라미가 낙서돼있었다. 그 상태로 2일을 병원에서 더 기다렸다. 그렇게 우린 방콕 대신 병콕을 하게 되었다.





 수술 당일 새벽 5시에 깨어나 항생제 반응 검사를 마치고 건장한 남자의 도움을 받아 수술대에 눕혀져 흡사 냉장창고 같은 춥고 음습한 수술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는 수술받는 환자가 맞는지 확인을 하는데 출생 연도와 이름이 호명되면 예! 하고 대답을 하고 어떤 이유로 수술을 하는지 확인차 말을 해야 한다. 마치 마트에 진열될 물건이 된 기분이랄까?


"네~ 84년생 김개똥, 갑상선암입니다."


 20명 족히 돼 보이는 베드에 누운 환자들이 각자 제각기 다른 병명을 얘기했다. 책에서만 영화에서만 보았던 오만 암환자들의 총집합체였다. 그 소리를 듣고 있는데 심장 박동이 우사인볼트 급으로 요동쳤다. 다신 경험해보고 싶지 않은 공포 체험이었다.


 수술은 사실 마치과 선생님과 2마디 나누고 나서부터 기억이 없다. 깨어나 보니 회복실이었고 숨이 좀 가빴다. 자타공인 나는 좀 유별나다. 하나에 꽂히면 끝장날 때까지 파고드는 성격이라 수술 전부터 갑상선 암과 수술 후 증상 들까지 서점에서 책을 사서 정독을 하고 그걸로도 모자라 인터넷 카페며 블로그를 샅샅이 찾아 정보 수집을 했었다. 내 몸에 암이 자라고 있다는데, 이 정도는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몇 가지 알게 된 사실 중 중요한 점이 수술 시 전신마취를 하는데 마취에서 깨어나면 심호흡을 크게 해 주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수술 전에 남편과 엄마에게 미리 부탁을 했었다.


"내가 자려거든 무슨 수를 써서라도 깨워야 해"


마취약은 생각보다 강했고 잠은 쏟아져왔다. 자면 안 된다는 아주 희미한 의식이 저 밑에서 나를 깨우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나는 병든 닭 같이 계속 졸았고, 엄마와 남편은 정말 미친 듯이 나를 깨웠다. 누가 보면 아주 신앙심 깊은 사람들인 줄 알았을 거다. 끊임없이 박수를 치며 자면 안되를 외쳐댔으니 말이다. 덕분에 몽롱한 상태에서 꿈인지 생시인 줄도 모른 채 심호흡을 정말 열심히 했다.  쪼그라져있던 내 폐가 다시 예쁘게 펴졌다. 오늘도 편히 숨 쉴 수 있게 도움을 준 엄마와 남편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야겠다.


 수술 후 몇 시간 동안은 금식이었다. 그 시간이 지나면 첫 식사로 죽을 주는데 수술하는 동안 기도 삽관으로 인해 목구멍이 엄청 부어 있어서 처음엔 죽을 삼키는데도 몹시 아팠다. 배는 고픈데 못 먹는 그 고통을 어떻게 말로 표현하랴. 그래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먹을 거라며 용을 쓰는데 바깥 음식을 사와서 저녁 식사를 하고 계신 엄마와 남편을 보니 괜스레 눈물이 났다. 부러워도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목구멍의 소중함을 새삼 깨닫게 해 준 경험이었다.


 수술 첫날은 조금 많이 힘들었다. 특히 오른쪽 임파선에 전이가 많이 되었던 터라 박박 긁어내어서 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정신 없었던 수술 첫 날도 지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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