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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니 Nov 15. 2021

왜 가구를 옮기는가 물으시면

나이 오십에 아직도

가끔 가구 배치를 바꾼다. 이사 때 말고는 가구 옮긴다는 걸 꿈도 꾸지 않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가끔이 아니라 자주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래전에 한 선배는 혼자 사는 여자가 잠도 안 자고 가구를 이리 옮겼다 저리 옮겼다 하는 짓은 정신병에 해당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시엔 나도 가구 옮기는 사람이 아니었다. 주변에 사는 예의 그 정신병자들(^^)에게 배웠다. 가구를 옮겨도 된다는 걸 알려준 사람들.


이전에는 그냥 놓인 대로 사는 건 줄 알았는데 가구를 옮겨보니 좋은 점이 많았다. 묵은 먼지를 털어낼 수 있고, 옮기느라 땀을 흠뻑 낼 수 있어 좋고, 함께 옮기는 사람과 숨을 섞고 웃음을 섞고, 속도를 맞춰볼 수 있어 좋았다. 그리고 이사한 첫날처럼 낯설고 설레는 분위기가 돼서 좋았다.


2년 전 이사한 이 집에서도 소소하게나마 몇 차례 가구를 이동시켰다. 우리 방 침대는 냉체질로 바뀐 남편 때문에 창가 쪽에 붙어있던 침대 긴 쪽을 돌려 짧은 쪽이 창문 쪽에 가도록 놓았다가 다시 지금의 창문과 떨어진 반대쪽에 자리를 잡았다. 


퀸 사이즈의 침대쯤은 나 혼자서도 옮길 수 있는데, 안 되는 게 있었다. 책꽂이였다. 6단짜리 3줄이 붙은 책장은 책을 다 빼도 돌덩이 같았다. 아주 조금만 꿈쩍거려도 방법이 생기는데 - 밑바닥에 발 매트 같은 걸 뒤집어서 넣고 밀면 된다 - 꿈쩍도 안 한다. 


이사할 때 이삿짐센터 직원들이 어떤 차례로 짐을 싸는지 무거운 가구는 어떻게 옮기고, 좁은 곳에는 어떤 방법으로 들여보내는지를 유심히 보아 두었다. 더 힘이 좋을 땐 옷장까지 옮기면서 우리끼리 그랬다. 우리 나중에 퇴직하고 나면 이삿짐센터 해도 되겠다고. 그땐 나이 들고 몸 쇠해지는 건 생각도 못 했으니까.


일요일,

늦게까지 자고 떡만둣국 끓여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책상 자리를 이동했다. "미안한데, 책상을 옮기면 좋겠어" 하니 둘이 웃는다. 또? 하는 표정. TV 있는 거실에 책상을 두니 저녁이나 휴일에 문제가 됐다. 둘은 TV를 보고 싶고, 나는 TV 소리가 방해가 되고. 글이 안 써지는 날은 더 신경이 곤두서서 나도 모르게 툴툴거리는 얼굴이 되었다. 


침실에 넣기에는 책상이 좀 크지만 일단 한번 넣어보기로 했다. 일단 침실에 있던 서랍장을 빼고 아래 쌓인 먼저를 닦았다. 책상 위 책들과 물건들을 내려놓고, 책상을 옮긴 후 다시 책상 위에 있던 것들을 올려 정리했다. 서랍장 속에 어지럽게 섞여있던 알약들, 연고들, 파스, 밴드들을 가지런히 하고 유통기한 지난 것들은 버렸다. 그리곤... 정리할 때마다 꼭 한 마디씩 하게 되는데, 참기 어렵다. “정리를 해도 이 서랍 속은 왜 맨날 엉망일까? 뭐가 하나 생기면 자리가 어딘지 살피고 넣으면 좋은데 그냥 툭 던져놓으니 그렇잖아!” 부드럽게 나간 말은 아니라서 휴일에 힘쓴 사람 잠시 부글부글하게 했다.


엄마가 뭘 옮긴다고 또 집안을 뒤집고 있을 때, 딸은 제 방 문을 꼭 닫고 안 나오거나 어떤 날엔 저도 덩달아 제 방을 깨끗이 치우기 시작한다. 오늘은 후자의 어떤 날이다. 제 방에 깔린 러그를 가지고 나가서 탈탈 털어오고 책상 위를 말끔히 정리하곤, 와서 보라고 손을 잡아끈다. 


모두 노곤해진 오후, 아이는 제 방으로 들어가 낮잠을 자고, 남편은 거실에서 TV 소리를 작게 하고 노트북을 들여다보고 있다. 나는 책상이 들어온 침실에서 컴퓨터 자판을 또각또각 두들기는 중. 


어디서 살든 아무리 좁은 곳이라도 내 공간을 만들어왔다. 여분의 방이 없을 때라도 어느 한구석에 ‘혼자’ 일 수 있는 공간은 ‘우리’로 잘 살기 위해서 나에게 꼭 필요하다. 가구 재배치는 아름다운 인테리어 때문이 아니라 대개 내 독립적 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나의 저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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