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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boveseoul Mar 08. 2020

쿨함을 강요하는 사회

쿨몽둥이로 맞아야 돼

싫으면 싫다고,

기분이 나쁘면 나쁘다고,

상처를 받았으면 받았다고 표현하는 것이 왜 '쿨하지 못한 사람'으로 치부 되어버리는 사회가 되었을까.


왜 사람들은 '쿨함'을 강요할까?

물론 '쿨해져라'라는 단도직입적인 형태의 강요는 아니지만,

본인의 기준에서 허용될 수 있지만 상대방의 기준에서는 충분히 상처가 될 수 있는 말과 행동을 서슴없이 저질러 버리며 '아 장난이었어요' 한마디면 상처 받은 사람이 '예민하고 쿨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종종 생기곤  한다.


물론 대다수의 상황에서는 (특히 나처럼 쓸데없이 소심한 사람은,) 상대방은 '아 장난이었어요' 라는 언질조차 해줄 필요 없이 상처 받은 사람이 상처 받은 표현, 또는 티조차 내지 못하고 넘어간다.


내가 너무 극단적인 상황만 표현하는 것 같나?

이런 상황은 사실 매일 매일, 학교에서, 회사에서, 인간과 인간이 교류하는 모든 공동체란 틀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런 상황에서 열에 아홉은 상처받은 사람이 오히려 감정을 숨기고 아무렇지 않은 척 해야만 하거나,

용기를 내어 '저 상처 받았어요' 라고 표현해도 머쓱한 상황이 생겨버리는 일들이 일어나고 한다.


개인적으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가 '쿨함'이란 껍데기 같은 말로 정당화 된다고 생각한다.

'더 쿨한'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덜 쿨한,' 또는 '쿨하지 못한' 사람들은 예민한 사람, 장난을 장난으로 받아 들이지 못하는 사람, 나약한 사람, 공동체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치부 되어 버리는 일이 빈번한 사회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내가 특히나 스스로와 타인의 감정에 예민한 편이라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걸수도 있겠지만,

'쿨하지 못한 것' 또한 개인의 차이에 따라 충분히 그럴 수 있는데 그마저에도 왜 죄책감이 들게 만드는가?


내가 상처를 받고 기분이 나빴는데 꼭 하하호호 웃으며 넘기는 게 이 사회가 추구하는 덕목인가?

‘쿨’한 게 대체 뭔데?


특히나, 사회에서 만나게 되는 '쿨한' 사람들의 또 다른 정당화 방식은 '공과 사는 구분해야한다'는 것.

그래서 개인의 감정, 또는 그 감정의 표현이 본인과 나의 관계상에서 너무 개입되는 것을 탐탁치 않아 하는 것.


로봇도 아니고, 우린 사람인데,

어떻게 감정 자체가 공적인 관계에서 완벽하게 배제될 수 있겠는가.

물론 프로페셔널함을 잃지 않는 것도 일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중요하고, 상처를 받는 기준에 있어서 모두가 다르니 모든 상황에서 피곤하게 살 필요는 없겠지만,


사람과 사람이 일을 하는데 한 사람이 나에게 배려가 부족했고

'아' 다르고 '어' 다른데 특정 언행이나 행동으로 나에게 상처를 주었고 나는 상처를 받았다면,

내 상태에 대해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알고, 

그 표현을 받은 상대방 또한 실수와 부족함을 직시하고 사과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 생활이라고 생각한다.





♫ 지켜줄게 - 백예린

(Our love is great)


'개인적으로 가장 솔직하고 순수한 감정에 가까운 표현을 해내는 노래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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