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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와서 이것 좀 먹어봐

by 이정연


아빠는 뭔가를 사들고 들어오는 사람은 아니었다. 몇 번이었던가, 시장 통닭을 한 마리 튀겨서 종이봉투에 담아가지고 왔던 기억은 있다. 그러나 사업을 하며 잘 나가던 사람. 남자가 뭘 들고 다니면 모양 빠진다고 생각하던 사람. 그냥 본인이 가 본 좋은 식당에 데리고 가서 사 먹이는 것이 최고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던 사람.

아빠의 사업이 휘청거렸던 때였던가. 엄마와 아빠가 함께 시내에 볼일을 보러 갔다가 돌아오는 길, 아이들이 얼마나 우리를 기다리겠냐며 햄버거라도 사다주자고 하는 엄마의 이끌림에 햄버거 가게에 들어갔던 아빠. 사업하는 사람이 실생활의 물가 따위는 알지 못했다. "햄버거 뭐 그깟 거 한 500원 하나?" 아, 그래서 우리 집이 망했던가! 당시에도 ㄹ 프랜차이즈 햄버거 세트가 3000원 가까이했던 것 같은데, 500원이라뇨 아버지.

ㅁ 햄버거도 있고 대형마트도 있는 우리 동네에 ㄹ 햄버거는 없어서였는지, 부모님이 사다 주신 햄버거 세트를 좋아라 하며 먹던 어린 우리를 보며 아빠가 미소 짓던 기억이 난다. 그런 살뜰함을 뒤늦게 배운 아빠는, 집이 쫄딱 망하고는 많이 달라졌다.

일을 구하러, 또 일을 하러 수도권과 지방을 고루 돌아다니며 집으로 돌아올 때 자주 무언가를 사들고 들어왔다. 한 번은 수원까지 갔던 아빠가 수원역 앞에서 중국호떡을 팔더라며, 종이봉투에 담긴 중국호떡을 등가방에서 꺼내어 건넸다.

당시 우리 동네는 전철이 지금처럼 개통되지 않은 상태라, 수원에서 기차를 타고 서울까지 와서 다시 버스를 타고 길게 와야 집에 도달할 수 있었다. 아빠는 수원역에서 산 호떡을 등가방에 고이 넣고, 2시간을 넘게 집까지 온 것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이미 식어빠진 호떡을 꺼내어주고는 우리가 맛있게 먹는 모습을 아빠는 한참 보았다. 호떡은 식었지만 알 수 있었다. 호떡 몇 천 원어치를 아빠가 얼마나 귀하게 품고 왔는지.


어제 버스에서 할머니 한 분을 보았다. 역 앞에 있는 피자가게에서 포장한 빨간 피자상자를 들고 타셨다. 갓 구운 피자 향기가 솔솔 났다.

이제 무엇이든 배달을 시켜 먹을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아빠의 정을 알아서, 알바를 하던 어린 날에는 집에서 나를 기다릴 동생을 생각하며 무어라도 동생이 좋아할 만한 것을 꼭 사가지고 집에 갔었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그럴 필요가 없는 세상이 되었지.

그런데 커다란 피자상자를 보는 순간, 할머니의 피자를 기다리고 있을 할머니의 아기는 누구일까 생각했다.

내 손에는 마시던 라테가 들려있다. 가족을 위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귀가하는 길에 가족들을 위한 주전부리를 들고 가던 그 낭만은 어디로 갔을까.


"얼른 와서 이것 좀 무봐라."

그 시절의 우리가, 아빠의 목소리가 너무도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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