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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달보름 Aug 23. 2022

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티니핑 노래를 들으면 그때 생각이 나, 가부장제에 발을 들인 결혼이.

‘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이렇게 헤어지면 언제 또 만날 수 있을까~~~~? 반짝반짝 보석 같은 마음! 우리 모두! 티니핑과 함께!’      


이 노래를 아는 사람이라면 당신의 아이 역시 티니핑을 좋아하겠죠? 하나의 9800원 하는 피규어(심지어 포켓몬처럼 티니핑들이 너무 많아요..)를 사줘야 하는 양육자의 숙명 앞에 어쩔 수 없이 엄마는 돈을 벌러 간다는 구차한 변명을 늘어놓으며 딸래미의 노래를 듣고 있자니 첫 소절이 어쩐지 매우 서글프다. 특히 공기 반 소리 반 노래하는 우리 딸(도치 맘입니다. 죄송합니다)의 청량한 목소리로 듣자니 아름다우면서 더 외로움이 느껴지는 저 첫 구절... ‘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이 노래의 구절을 들으면 결혼이라는 제도에 발을 처음 담글 때의 그 설렘과 두려움이 떠오른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영화 <헤어질 결심>에서 탕웨이가 그렇게 따라 하던 사극의 대사 ‘독한 년~’ 소리를 들으며 자란 대한민국의 삼 남매 중 가부장제에 반대하는 독한 차녀로, 주변 사람들은 나를 보며 항상 절대 결혼하지 않고 혼자 잘 살 거라고 호언장담을 했던 사람이다. 생각해 보니 주변 사람만 그랬지, 나는 항상 연애라는 걸 빼놓지 않고 살았던 것 같긴 하지만. 흠흠. 이 세상에 많고 많은 언니는 말하지. 그렇게 말하고 결혼 안 하는 애를 보지 못했다고. 네 그게 접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결혼했네요. 그것도 아주 어린 29살에요?! 과연 내가 왜 결혼했는지 되짚어 보자니 당시 줄 연애를 하며 두 번이나 애인에게 차여버리면서 ‘이별 따윈 하고 싶지 않아~’ 외치며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에 빙의해 버렸다. 근데 왜 이별의 대안이 결혼이었어야만 했을까? 아, 제가 정말 어렸죠. 2015년에는 지금과 같은 여성주의에 대해 공부도 해 보지 않았던 알 속에 갇혀 있던 아이였던 걸요. 당시엔 마침 이직 준비를 하면서 변변치 않게 프리랜서로 돈을 버는 내 모습을 걱정했던 부모님은 하루라도 빨리 ‘보호자’를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서두르는 시가 못지않게 결혼을 밀어붙였다. 독했던 나는 어느새 순두부처럼 나를 둘러싼 순두부 포장지에 담겨 칼에 베이면 베이는 대로 손으로 주물러 짜면 주물러 짜이는 대로 찌개에 풍덩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시가는 경상북도다. 그렇다.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TK의 작은 지역에서 가부장제가 너무나 당연한 듯 공기처럼 빨아들이고 뱉으며 살아가는 사람들. 인사드리러 갔을 무렵에 그런 것 치고 아버님은 너무나 친절했다. 바다 마을에 사는 예비 시부모님께 인사드리러 갈 때면 그날은 대게며 해삼이며 멍게며 성게며 내가 좋아하는 해산물 파티를 하는 날이었으니까. 예비 사돈에게 드셔 보라며 보낸 대게는 무뚝뚝한 아빠의 입에 함박웃음을 짓게 했다. 우리 가족은 태어나서 대게를 그렇게 많이 먹어 본 적이 없었으니. 그 모습을 보면서 속으로 ‘아빠, 지금 대게로 딸을 파시려는 겁니까?’ 외치고 싶었지만 너무나 맛있는 대게 맛에 마음의 소리는 대게와 함께 십이지장으로 소화돼 버렸다. 모든 일은 순조로웠다. 결혼식 날짜가 잡혔고, 날짜가 다가오는 동시에 시어머님이 되실 분이 서울에 오셔서 허리디스크 수술을 하신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개인주의 끝판왕을 달리는 나는 사실 부모님이 입원하셨어도 잠시 방문하는 것으로 끝이 났을 것이다(부모님 죄송합니다). 그런 아무 생각 없는 내게 전화가 왔다. 엄마였다.     


‘보름아, 그래도 네가 예비 며느리인데 병문안은 가봐야 하지 않겠니? 가서 하룻밤 간호해 드려.’     


네?! 어머니?!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간호라니요. 제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어 사회에서 규정한 보호자에게 기대어 살려고 결혼을 결심한 저에게 누굴 간호하라뇨?! 어이없는 마음과 함께 반발하고 싶은 과거의 보름이가 튀어나왔지만 애써 캄다운을 시켰다. 그래, 난 지금 부모님에게 치워버리고 싶은 애물단지이니 속상하게 하지 말자고. 그렇게 병원을 나서는 발걸음은 참 무거웠다. 예비 시어머니와 일대일 관계를 그런 식으로 시작하고 싶지 않았다.      


막상 병원에 가보니 사정은 달랐다. 이미 젊었을 때부터 허리 디스크 수술을 하신 어머니인지라  번째 심을 박는 수술이었고, 요즘은 아프지도 않다는 시술에 비하면 디스크 수술은 엄청난 고통을 동반한다는 사실이미 90 넘은 할아버지를 통해 많이  와서 잘 알고 있었다. 나를 반겨  힘도 없던 어머님은 입이 바짝 말라 마시지도 못하는 물을 입술을 적신다는 명목으로 찾았고, 밤새 끙끙 앓는 소리를 들어야 했다. 예비 며느리  시어머니가 아닌 사람  사람으로 만난 어머님의  모습은 너무나 안쓰러웠다.  번의 수술 역사는 그동안 얼마나 고생하며 사셨는지 상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외면하고 싶었던 병간호에서 여성으로서 어머님을 외면할  없었다.  때문에 올라오지 못하신 예비 시아버님이 원망스러울 정도였으니까.      


병문안을 마치고 이제 결혼만 하면 된다는 생각에 펑펑 놀고 있던 나는 두 번째 엄마의 호출을 받았다.      


‘보름아, 시댁에 가서 어머님 일 좀 도와드려.’     


엥?! 어머니?! 지금 또 뭐라고 하셨습니까? 시댁에 가라니요? 서울에서 차를 타고 무려 4시간이 걸리는 그곳에 가서 뭘 하라고요? 일을 도와요? 제가요? 왜요? 이번에 튀어나오려 하는 과거의 반항적인 보름이는 조금 더 강했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을 뱉으려다가 요즘 나의 밥벌이에 대해 떠올리니 구역질처럼 올라오는 말을 인상을 쓰며 삼킬 수밖에 없었다. 당시 운전도 못 했던 나는 동서울에서 버스를 타고 시가가 있는 지역의 터미널에서 내렸고 택시를 타고 시가로 향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살아계시던 시할아버지가 문득 떠오른다. 꼬부랑 할배라고 하는 게 더 어울렸는데, 청력도 이미 손상되었고 말도 잘하지 못하셨지만 난 할아버지가 좋았다(어머님은 아니셨겠죠..?). 가장 먼저 나를 반겨준 사람도 할아버지였으니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어머님도 내가 그곳까지 가는 것은 시나리오에 없었던 것 같다. 애가 오긴 왔는데 뭘 할 줄은 모르는 것 같고, 결혼도 안 한 예비 며느리에게 뭔가 시키는 게 어머니로서는 영 시집질 하는 것 같아서 하기 불편하셨던 것 같다. 찾고 찾다 시킨 일은 커튼 떼어서 빨기, 냉장고 정리하기 정도였던 기억이 난다. 잠깐 스톱. 생각해보니 이건 집안일 중에서도 상위에 랭크돼 있는 일이네? 어머님의 행동과 표정은 매우 미안해 보였지만 나는 집안일 최상에 랭크된 일을 해치웠구나?! 아아, 그랬구나. 아마 그때 내가 노동을 착취당한다고 느끼지 않았던 이유는 아버님이 대접해 주셨던 신선한 해산물 때문이겠지... 그래요, 나는 나를 대게에 팔았습니다. 이것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으니깐요!     


시간이 지나고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이런 일이 있었더라며. 개중엔 경악하며 ‘언니가 그럴 줄 몰랐다!’고 외치는 친구도 있었다. 거길 무슨 생각으로 갔냐며, 가서 왜 일했냐며, 언니는 그런 사람이 아니지 않냐며. 그러게, 무슨 생각이었을까? 가부장적인 예비 시가의 문화와 함께 가부장제에 순응하며 살던 부모님은 당시 위태위태했던 나를 그 제도에 욱여넣었고, 아무 힘도 근력도 없던 나는 순두부처럼 거기에 들어갈 수밖에. ‘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수십 번 질문하고 의심했지만, 외로운 마음에 멀쩡한 남자와 결혼하는 꿈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그리고 이런 상황은 평생 반복되지 않을 거라고 단지 일시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헛된 꿈을 꾸었기에. 어머니와 나의 관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굳이 첫 장부터 어머님을 대변하자면, 이랬던 며느리가!!! 갑자기 말을 안 듣는 며느리가 된다는 것이 더 기가 차고 코가 막힐 노릇이었을지도. 하지만 어머님! 지금도 어머님에 대한 저의 마음은 진심입니다! 왜냐면 우리는 이제 진정한 가족이 되어 가고 있으니깐요. 난 과연 잘할 수 있을까 현재에도 매일같이 의심하고 질문하며 살지만, 어머님과 잘하고 싶어요. 뭐든요. 그러니 조금 미운 MZ 며느리를 어여삐 봐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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