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메리' 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할 때 그 메리.
밝고 사랑스러운 이름과는 다르게
어딘가 모르게 이상하고,
우울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였다.
그 느낌이 되게 독특했다.
메리는 내가 운영하던 작고 낡은 위스키 바의
단골 손님이었다.
나는 지금도 메리가 처음 이곳에 왔을 때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한다.
밖에는 비가 많이 왔었는데,
그녀는 반 고흐의 아몬드 나무가 그려진 우산을
쓰고 있었다.
핏기 하나 없는 창백한 흰 피부에
새까만 긴 곱슬머리.
태어나서 한번도 웃어본 적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으로 자리에 앉는다.
손에는 검은색 새틴 장갑,
무릎을 덮는 가죽 부츠,
새빨간 트렌치 코트.
모든것이 끝내주게 어울렸다.
누구라도 한번쯤 뒤돌아볼 모습이었다.
아무렇게나 대충 묶은 머리를 하고선,
늘 오른쪽 다리를 꼬고 앉아
차 마시듯 위스키를 홀짝이며
혼자 그림을 그렸다.
그녀가 그림을 그릴 때면,
무언가 오라 같은 것이 느껴져서
말 한마디 걸기가 괜히 어려웠다.
그녀의 주문은 언제나 글렌피딕 18년산.
얼음 가득 넣어서.
눈썹을 찡그리며 천천히 위스키를 음미하는 모습에
굉장한 술꾼일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위스키를 마셨다.
언제나 일정한 시간에,
반드시 한 잔을 마신 뒤 돌아갔다.
메리와 내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건,
아마 그녀가 마신 위스키가
적어도 스무 잔은 되었을 때 즈음이었다.
그 날 가게에서 흘러나오던 노래는
에디트 피아프의 '라비앙 로즈'.
그녀가 작은 목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나는 그 순간을 정말이지 잊을 수가 없다.
그 때 처음으로 메리의 목소리를 들었는데,
느낌이 너무 오묘했다.
차분하고 잔잔한 중저음의 목소리.
슬프고, 슬프고, 슬프고, 너무.... 너무 너무 슬펐다.
넋을 잃고 보다가,
노래가 끝나자마자 나도 모르게 박수를 쳤다.
하하. 그 모습이 얼마나 바보 같았을까.
처음으로 그녀가 웃는 모습을 봤는데,
붉은 조명의 가게였는데도,
양 볼이 빨개졌다는 걸 알아챌 수 있었다.
"늘 같은 위스키를 드시네요. 이건 아드벡이라는 위스키인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술이에요. 노래 정말 잘 들었습니다."
"사실 저는, 위스키를 잘 마시지 못해요. 그냥 한 잔으로 취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해서 마시는 거죠."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가 건넨 아드벡을 우아하게 음미했다.
시작이 언제였는지도 모르겠다.
그 날의 일이 시작이었는지
그녀를 만난 순간부터가 시작이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우리는 사랑을 했다.
그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 인생의 모든 것은 메리를 향해 있었다.
그녀를 위해 요리를 하고,
돈을 벌고,
좋아하는 영화를 몇번이나 함께 보고,
그녀의 아름다운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
서로를 만지고,
담배를 피우고,
위스키를 마셨다.
우리는 함께 웃었고,
함께 우울해했다.
메리가 내게서 흔적도 없이 자취를 감춘 것은
정확히 1년 전.
말도 안 되게 아름다운 화이트 크리스마스였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녀가 해맑게 웃으며
내게 했던 마지막 말.
오늘은 2016년 12월 25일.
메리가 떠난지 1년째 되는 크리스마스다.
사람들은 기대에 부풀어
트리를 꾸미고, 편지를 쓰고, 선물을 준비하고,
예쁜 전구로 집을 장식한다.
어차피 지나고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그들만의 '메리 크리스마스'를 위해.
바깥엔 첫 눈이 내린다.
자꾸만 그리운 겨울 냄새가 코 끝을 스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