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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국제교류 TAN TAN RoDee Nov 17. 2019

딴짓생존가이드

딴짓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딴짓러," 영어로는 이노베이터로 부른다.

"호기심천국"인 나의 모습과 "맏딸 콤플렉스"를 심하게 겪었던 나의 모습은 내 일상이 이중 삼중으로 겹겹이 보호막을 치도록 했다. 남들이 봤을 때 번듯한 가족의 모습이 중요했던 나의 아버지는 당신이 즐기는 취미 활동을 모든 가족이 매일 동참하도록 하고, 내가 정작 관심 있어서 시도해 보는 일들에는 "헛참...."이라는 짧은 한숨과 긴 시선을 한참 보낸 후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일인줄 모르겠냐? 아이고, 참....."이라고 일일이 커멘트를 달았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따라 가지 못하고 자꾸만 내 마음이 내 맘대로 가는 것에 불안해 하며, 내 마음을 아버지가 정해준 방향으로 틀고자 안간힘을 썼었다. 이 시간이 지나고 비로소 직장 생활을 하며 한참 커리어를 키우는데 재미를 붙일 때, 아버지는 당신이 챙겨준 취미 활동을 지속하지 않음을 못 마땅해 하며, "여유를 가지는 능력이 부족한 딸"로 다시 나를 평가했다.   


    "맏딸 콤플렉스"는 "부모나 동생들에게 맏자식으로서 기대를 충족시켜야 한다는 부담감과 의무감에 

    사로잡 힌 심리적 상태. ... 자신의 의지나 취향보다는 가족을 우선시함으로써 가족을 위해 희생하고 

    모범을 보이려 애쓴다." (출처: 네이버 국어사전) 


돈까지 써? 딴짓인데? 뭘 그딴 일에 돈을 부어? 너 돈도 없잖아. 철 좀 들지, 이제? 


내 인생에서 첫 국제회의를 가기 위해 고학생이던 나는 생활비였던 한 달치 과외비를 고스란히 부었다. 내가 공부하던 주제도 아니었고, 관심이 있어서 시간을 오래 투입한 일도 아니었다. "국제"적인 일에서 "회의"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호기심이 발동해서 그냥 따라 나섰다. 한국대표단은 나를 포함해서 4명인데, 일본대표단은 10명도 넘었고, 통역까지 2명이 있었다. 전세계에서 여성정치참여 분야에서 눈부신 업적들을 쌓은 국가대표급 활동가들이 아프리카에서 부터 캐나다, 미국, 오스트레일리아까지 모두 아시아로 모였던 대규모 행사였다. 한국팀 네 명 중에서도 두 분이 관광을 나가시는 통에 아무 것도 모르던 내가 일 복이 터졌고, 보도자료 작성부터 시작해서 국제회의의 전반을 두루 배울 수 있었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경험을 나는 얼떨결에 하게 되었다. 짧은 3박 4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 내 눈빛은 달라져 있었고, 그 후 몇 년 후 조직에서는 처음으로 여성임파워먼트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맡게 되었다. 돈을 왜 버는데? 결국 내가 하고 싶은거 하려고 그러는거잖아. 딴짓에는 돈을 써도 하나도 안 아깝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디즈니패밀리뮤지엄! 놀이가 아트가 되고, 아트가 놀이가 되는 역사의 현장을 보았다.  


어느 정도 하지, 뭘 그렇게 열정적으로 하니? 딴짓은 정신줄을 놓고 놀게 한다. 


미국 메이커스페이스들을 매년 여름 방학마다 방문하는건 우리 가족에게는 무리였다. 초등학생에 불과한 아이가 보면 얼마나 충분히 꼼꼼히(?) 볼 수 있을까 싶었고, 매번 "차라리 내년에?"를 열 번도 더 물어 보았다. 하지만 나의 딴짓을 부추길 수 있는 사례들과 결과들이 여행을 갔다 올 때 마다 우수수 생겼다. 메이커스페이스가 국내에서도 처음으로 관심을 끌 당시여서 국내 자료들도 틈틈히, 아니, 솔직히, 이 자료들 부터 우선적으로 다 뒤져서 읽기 시작했고, 미국 자료들도 웬만한 것은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그럼, 내가 하던 업무에 적용이 되느냐? 결코 아니었다. 재미 있어서 하면 몰입이 되지만, 일로 하면 집중을 해도 될까 말까다. 업무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나의 딴짓은 전문성을 넘어 버려서 불필요한 긴장도 초래하게 되었다. 딴짓은 생존력이 쎄다. 메이커스페이스를 보기 위해, 전세계 메이커페어의 메카이고, 실리콘벨리가 있는 미국 서부만 갔는가? 미국 중부인 시카고, 남부인 올랜도, 동부 보스턴 지역까지 종횡무진 나의 딴짓, 그리고 우리 가족까지 영입한 딴짓패밀리는 쏘다녔다. 이유는 "그냥 일단 보고 느끼자"였다. 출항할 때 목적지를 찍고 나서지 않는 딴짓표 항해는 다시 부두로 들어 올 때는 우주선으로 변신하여 나타난다.      


부모가 어떻게 딴짓을, 누가 그렇게? 학교에서 인정 되요? 나중에 과외비 딸릴텐데 .... 


우리 가족이 했던 딴짓의 백미는 여름 방학 마다 참여했던 미국서머프로그램이었다. 6월 말이면 개강이었다. 이 딴짓을 제대로 놀기 위해서는 중학교 기말고사를 선택하지 않아야 했다. 기말고사를 치지 않으면 "무단결석으로" 처리가 되는게 학교 규정이었다. 성적은 0점 처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반에서 최하 점수를 받은 학생 보다 -1점으로 기록이 된다. "무단 결석인 학생"의 성적표에 어떻게 "점수"가 적히는가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규칙이라니 따르고, 우리는 딴짓을 선택했다. 딴짓은 아무도 못 말린다. 딴짓은 거침없이 추진된다. 


미국 고등학교 과정을 온라인으로 수업 받는 것이, 그것도 모르는 부분을 물어 볼 수 있는 선생님이나 친구도 한 명도 없는 환경에서 혼자서 하는 것이 누구에겐들 벅차지 않을까? 한 주 한 주, 모든 과목에서 아는 것은 0(제로)이다. 혼자서 "주도적"으로 공부를 하다가 쉬는 시간에 음악을 듣는 것이 우리 딸에게는 최고의 즐거움이다. 어제도 휴식시간에 헤드폰으로 음악을 듣다가 "난 음악을 들으면 마치 지금 미국 고속도로를 달리는 느낌이 들어. 우리가 여행할 때 미국 길은 드라이빙 구간이 아주 길었잖아. 그 때 우리 음악 진짜 많이 들었지, 응?" 얼굴에 함박 웃음을 띄고 이야기를 한다. 딴짓을 했던 것이 이 아이에게 지금 힘이 되고 휴식이 되고 있다. 딴짓은 한 번 구입하면, 평생 쓸 수 있다. 시간이 갈수록 아련한 맛이 더해져 고급져진다. 


나의 딴짓러 DNA를 받은 주니어 딴짓러 신짱! 그녀에게 "추억자본"만큼은 세계 최고의 부호들 보다 더 주었다. @딴짓패밀리 


딴짓이 모이면 내 포트폴리오가 된다. 


딴짓은 끈질긴 생명력을 띄고 있는데 나의 경우에 가장 장수를 누리를 딴짓은 북클럽이다. 물론 종류도 여러 개이다. 리더십 관련 책을 읽는 모임은 직장생활을 하기 전에 시작해서, 매달 이어 왔고, 지금까지도 하고 있으니, 짧게 잡아서 22년 차이다. 읽은 책들이 우리집,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다. 딴짓의 발자국들. 생활의 한 쪽 귀퉁이에서 악착 같이 챙겨 오던 딴짓에게 이젠 내 시간 전부를 맡기고 있다. 딴짓을 전문적으로 영위하기 위해 책장을 매일 30분씩 정리하고 있다. 책 뿐만 아니라, 요약본과 노트들! 글로 기록하는걸 즐기는 나는 여기 저기에 내 관심사들이 적힌 증거조각들을 찾았다. 누가 볼까 쑥쓰러워하면서 별표를 해 둔 구절들, "책 목차, 책을 만들 때 기억할 점" 등. 책을 구상한 추억들이 여기 저기에서 생존 신고를 하듯 튀어 나왔다. 지난 날의 나, 나의 딴짓을 조금 떨어져서 살펴 본다. 부을 수 있는 모든 열정을 쏟아 부었던 직장 생활, 잦은 출장, 직장과 병행했던 대학원 석박사 공부, 늦둥이로 본 아이의 입학, 짱이가 자퇴하기 전까지 늘 처음 & 혼자 겪어 보던 학부모의 삶 등등. 몰입과 집중을 번갈아 가면서 열심히 살아 왔던 시간들 속에 딴짓들이, 줄기차게 진지하게 써 둔 나의 속마음들이 있었다. 딴짓은 어디에 쓰는건가 했더니, 내 행복에 쓰려고 꼭꼭 챙겨두는 것이었다.  




딴짓은 내가 나다울수 있는 틈이다. 

"나는 하고 싶은 말구나. 사람들과 공감도 하고 싶고. 그래, 나 작가 되고 싶구나. 그럼, 해야지. 하자, 이제." 


비로소 나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기회를 주게 되었다. 10년 전에 내 딴짓에게 자리를 내어 주었더라면. 딴짓인데, 짧은 시간인데, 그냥 마음 편하게 해 주었더라면.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이 핀잔 주지 않고, "너는 그런 사람이구나. 네 인생인데 나는 존중할 뿐"이라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여 주었더라면, 내 딴짓은 지금쯤 어떤 모습을 갖게 되었을까? 


불굴의 의지로? 아니, 그냥, 뭐!라는 말로 설명하는 딴짓을 하는 사람들을 나는 "딴짓러들"이라고 부른다. 주변변에 누가 뭐라는 것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서 남들이 보기에는 차선인 일들을 업으로 삼고 있는 프로 딴짓러들을 있다. 이 분들을 존경한다.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이렇게 자기 마음 속에서 어디서 왔는지도 모르는 어떤 동기가, 어느 순간 부터 우리를 이끄는 딴짓러들을 나는 영어로 이노베이터라고 부른다. 이들은, 우리들은 우리 주변에 대한 관심이 아주 크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고, 부탁하지도 않았건만, 지금의 상황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매우 커서, 주변에서 이해하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방면에 강도 놓은 관심을 갖고 있기에 해결책을 내놓을 때도 엉뚱한걸 넘어서 기발한 경우가 흔하다.  이제 내 딴짓은 세상에 나온다. "헬로우,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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