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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윤달 Nov 21. 2023

[오늘독서] 귀족사회 로맨스 소설 빙의 가능한 세계관

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3부


<행복한 가정은 모두 모습이 비슷하고, 불행한 가정은 모두 제각각의 불행을 안고 있다.>


안나 카레니나가 시작되는 첫 문장.


여름, 미술관에서 가정에 대한 전시 도슨트 투어를 하며 들었던 문장으로 책을 꼭 읽어봐야겠다-! 마음먹었다. BUT 내 마음과 달리 책이 너무나 두꺼웠어... 시간을 두고 1권을 겨우 완독하고 2권을 읽을 시간적 여유가 생겨서 '2권까지 읽고 독후감 쓰자!' 생각하며 다시 도서관을 방문했는데 3권까지 있었다.(숙제가 늘어나) 그리고 2권이 제일 두꺼웠다.(좌절)


결론은 소설이 나눠진 부에 따라 감상문을 쓰기로 계획 수정. 책을 읽고자 하는 분들은 그전에 영화로도 제작되어 있으니 꼭 영화를 우선 감상하길 바란다. 소설의 스토리가 강렬하던가 특별한 서사가 있진 않다. 인물들의 사상과 심리에 대한 묘사가 상세하다. 그래서 당대 러시아의 시대상을 살필 수 있는 책으로 꼽히는 듯하다.


1권을 읽고 시간이 꽤 지나서 기억이 소실되는 중이라 다시 읽어야 하겠지만 지금은 아닌 것 같다... 재밌게 다시 읽을 자신이 없다. 그래도 1~2부로 이뤄진 1권은 스토리의 흐름이 역동적인 편이다. 안나가 가정교사와 부정을 저지른 오빠의 가정을 살피러 떠나고, 그곳에서 만난 브론스키와 사랑에 빠진다. 안나는 본인의 가정이 있기에 불타려는 마음을 다잡지만 이미 두 사람의 마음은 이어져있어서 거부할 수 없이 사랑에 빠져버린다. 안나의 남편 알렉세이도 이를 어느 정도 느끼던 때, 브론스키가 나간 경마대회를 보러 간 안나는 낙마한 브론스키를 보며 비명을 질러버린다.(불륜관계라는 걸 공공연하게 드러낸 것) 안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알렉세이에게 본인은 브론스키를 사랑한다고 밝힌다.


2권의 3부는 키티와 레빈, 특히 레빈에 대한 삶이 그려진다. 1부에서 둘의 스토리를 전하자면 레빈은 안나의 오빠 스테판의 친구이기도 하며 스테판의 처제=키티를 사랑하여 청혼을 했지만 거절당한다. 키티는 당시 자신에게 호감을 갖는 이성들 중 브론스키가 있었고 조건이 제일 월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나의 등장으로 브론스키의 시선을 통해 그가 사랑하는 건 안나라는 걸 알고 키티는 상심하며 몸이 아프기까지 한다.



자신의 상태에 대해 말하는 키티.

'내 속에 있던 선한 것이 모두 어디론가 숨어 버린' 마음에 동감했다. 그런 마음인데 저렇게 언니에게 말을 예쁘게 하는 키티... 나는 욕부터 박았을 텐데 자신의 마음상태를 저렇게 차분하게 설명할 수 있다니.


나도 심한 좌절감에 계속 땅으로 꺼지는 심리상태에 놓이기도 했다. 그땐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를 끊을 수 없었고 잠시 다른 생각이 들어도 안 좋은 방향으로 계속 마음이 끌려갔다. 상사병처럼 마음에 기반해서 신체상태가 나빠졌었는데, 둔감하다 보니 그렇게 몸 상태도 안 좋다는 걸 몰랐. 무튼 그런 심리상태가 일찍이_1877년 출판된 책이니 150년 정도_적혀있었다는 사실에 묘했다.


이렇게 부드러운 문체로 흘러가다 보니 지루하고 지금의 시대상과는 맞지 않아서 갸우뚱하는 부분도 있었지만, 아름다운 문장들이 많았다.



3부로 시작하는 2권. 책을 빌릴 때는 늦가을이었다.


이번에도 책을 읽으면서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카페에서나 이동시간 중에 책 읽기를 선호하는데, 책 무게도 무게거니와 지루해서 절대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도서관에서 책을 잡았다. 커피를 마셨음에도 몇 번을 꾸벅꾸벅 졸고 깨서 읽었다.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했는데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농경지를 배경으로 목가적인 분위기가 풍부했던 3부의 배경처럼 여유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레빈이 거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페이지들이었다. 좀 더 살펴보자면 그가 경영하는 농경지, 그 배경이 주인공 같았다. 러시아는... 분명 춥겠지만 읽으면서 따스한 느낌이 감돌았다. 책을 읽는 내가 주민 1이 되어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숨 쉬고 흙냄새에 덮이는 느낌이었다. 수확을 위해 땅에 씨를 뿌리고 재배하는 시간들. 판매를 위해 가축을 기르고 돌보는 사람들. 보다 많은 수확물을 위해 농업경영을 고민하는 영주. 결혼으로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과정.



작은 장면 하나하나가 미소 짓게 했다. 


특히 스테판의 아내 돌리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장면은 엄마의 분주함과 피로도도 있지만, 자녀들을 사랑하는 큰 애정이 잘 드러났다. 책을 읽으면서 내 상상으로 장면을 그리는 것으로도 행복했는데 그 시대의 실제 농경사회나 식사, 의복에 대한 그림을 보고 싶어졌다. 러시아 주제의 전시 언제 안 열까나. 아니면 러시아사 책을 읽어봐야겠다.



돌리가 레빈에게 다시 키티를 만나도록 설득하는 장면인데 잠깐 생각을 다시 해보는 순간이었다. 


남자의 청혼-여자의 승낙/거절. 


다수의 로맨스 소설과 영화를 통해 이런 결혼과정이 익숙해져, 여성의 '적극적 구애'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구나 새삼 깨달았다. 여자는 그저 자신에게 호감 있는 사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기적, 그나마 괜찮은 사람이면 다행이고 이렇게 키티처럼 사교계에 나가지 못하고 정략결혼을 진행하는 건 운명이 정해져 있는 수순이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남자들은 자신이 호감 있는 여성에게 먼저 다가설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레빈처럼 섬세한(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는 적극적인 대시가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럼에도 청혼까지 했으니 참으로 용기 냈네. 결과적으론 키티가 본인과 브론스키를 저울질해 자신을 거절한 게 마음에 남아, 계속 좀팽이 같은 속내로 돌리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온다ㅋㅋㅋㅋ 그래도 좋았다. 사랑 앞에서 얼마나 나 자신이 작아지는데. 그런 쑥스러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냈으며 그 상처를 여실히 다 받아서 나오는 삐뚤어진 마음은 그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대변한다.



연애에 대한 명언이었다.


나는 장기연애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장기연애에 긍정적이다. 밸런스게임으로 나오는 선택지: 10년 장기연애 1명 vs 1년마다 단기연애 10명 이라면 장기연애 픽!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는 말에도 동감하지만 한 사람을 오래 만나는 것도 다시없을 경험임을 알게 됐다. 친구를 오랫동안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계성이다. 그래서 저 문장에 진하게 동감한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 나도 나를 모르는데 말이다. 오히려 상대를 제대로 아는 건 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켜보는 입장이니까. 그렇게 한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는 시간은 결국 인간을 배우는 과정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상대를 받아들이고 또 흔드는 시간 사이에 나도 몰랐던 나를 찾아주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를 기반으로 오랜 시간을 이어갔는데, 순간적인 기분에 따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도 한 몫했다. 


안나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이렇게 흘러왔지? 안나가 살아가는 그 시대의 삶이 궁금하다고 느끼고 이외에 많은 생각점과 감상을 남기게 한다는 점에서 읽을 때는 지루하지만 감상을 하면서는 재밌는 책이다. 3권에서 8부로 마무리되는데, 4~6부까지의 2차 감상문과 7~8부 3차 감상문으로 마무리해 보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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