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프 톨스토이: 안나 카레니나 1~3부
이번에도 책을 읽으면서 졸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카페에서나 이동시간 중에 책 읽기를 선호하는데, 책 무게도 무게거니와 지루해서 절대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이 들어 도서관에서 책을 잡았다. 커피를 마셨음에도 몇 번을 꾸벅꾸벅 졸고 깨서 읽었다. 속도가 나지 않아 답답했는데 읽으면서 생각해 보니 농경지를 배경으로 목가적인 분위기가 풍부했던 3부의 배경처럼 여유롭게 읽을 수 있었던 것 같다.
레빈이 거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페이지들이었다. 좀 더 살펴보자면 그가 경영하는 농경지, 그 배경이 주인공 같았다. 러시아는... 분명 춥겠지만 읽으면서 따스한 느낌이 감돌았다. 책을 읽는 내가 주민 1이 되어 등장인물들 사이에서 숨 쉬고 흙냄새에 덮이는 느낌이었다. 수확을 위해 땅에 씨를 뿌리고 재배하는 시간들. 판매를 위해 가축을 기르고 돌보는 사람들. 보다 많은 수확물을 위해 농업경영을 고민하는 영주. 결혼으로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고 기르는 과정.
작은 장면 하나하나가 미소 짓게 했다.
특히 스테판의 아내 돌리가 아이들과 함께 보내는 장면은 엄마의 분주함과 피로도도 있지만, 자녀들을 사랑하는 큰 애정이 잘 드러났다. 책을 읽으면서 내 상상으로 장면을 그리는 것으로도 행복했는데 그 시대의 실제 농경사회나 식사, 의복에 대한 그림을 보고 싶어졌다. 러시아 주제의 전시 언제 안 열까나. 아니면 러시아사 책을 읽어봐야겠다.
돌리가 레빈에게 다시 키티를 만나도록 설득하는 장면인데 잠깐 생각을 다시 해보는 순간이었다.
남자의 청혼-여자의 승낙/거절.
다수의 로맨스 소설과 영화를 통해 이런 결혼과정이 익숙해져, 여성의 '적극적 구애'란 전혀 존재하지 않았구나 새삼 깨달았다. 여자는 그저 자신에게 호감 있는 사람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는 것은 기적, 그나마 괜찮은 사람이면 다행이고 이렇게 키티처럼 사교계에 나가지 못하고 정략결혼을 진행하는 건 운명이 정해져 있는 수순이니 얼마나 답답했을까.
남자들은 자신이 호감 있는 여성에게 먼저 다가설 수 있는 권리가 있었다. 레빈처럼 섬세한(소심한) 성격의 소유자는 적극적인 대시가 어려웠을 것 같기도 한데, 그럼에도 청혼까지 했으니 참으로 용기 냈네. 결과적으론 키티가 본인과 브론스키를 저울질해 자신을 거절한 게 마음에 남아, 계속 좀팽이 같은 속내로 돌리의 말이 귀에 안 들어온다ㅋㅋㅋㅋ 그래도 좋았다. 사랑 앞에서 얼마나 나 자신이 작아지는데. 그런 쑥스러움을 이겨내고 용기를 냈으며 그 상처를 여실히 다 받아서 나오는 삐뚤어진 마음은 그가 얼마나 진심이었는지 대변한다.
연애에 대한 명언이었다.
나는 장기연애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 장기연애에 긍정적이다. 밸런스게임으로 나오는 선택지: 10년 장기연애 1명 vs 1년마다 단기연애 10명 이라면 장기연애 픽! 많은 사람을 만나봐야 한다는 말에도 동감하지만 한 사람을 오래 만나는 것도 다시없을 경험임을 알게 됐다. 친구를 오랫동안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관계성이다. 그래서 저 문장에 진하게 동감한다.
한 사람을 제대로 안다는 것. 나도 나를 모르는데 말이다. 오히려 상대를 제대로 아는 건 쉬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켜보는 입장이니까. 그렇게 한 사람을 찬찬히 살펴보는 시간은 결국 인간을 배우는 과정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상대를 받아들이고 또 흔드는 시간 사이에 나도 몰랐던 나를 찾아주기도 했다.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를 기반으로 오랜 시간을 이어갔는데, 순간적인 기분에 따른 태도를 보이지 않는 것도 한 몫했다.
안나의 이야기에서 어떻게 이렇게 흘러왔지? 안나가 살아가는 그 시대의 삶이 궁금하다고 느끼고 이외에 많은 생각점과 감상을 남기게 한다는 점에서 읽을 때는 지루하지만 감상을 하면서는 재밌는 책이다. 3권에서 8부로 마무리되는데, 4~6부까지의 2차 감상문과 7~8부 3차 감상문으로 마무리해 보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