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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경제 올드스 Olds Aug 03. 2023

"친구, 러시아는 러시아야" <2023.5>










“전쟁이 언제 끝날 것 같아?” 

내가 그에게 물었다. 우리는 영등포의 한 삼겹살 식당에서 만났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나는 여자친구와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그리고 우리 옆 테이블에 혼자 삼겹살을 굽고 있던 외국인 남자가 있었다. 한 팔은 문신으로 뒤덮였고, 한 팔은 아프리카 풍의 토속적인 팔찌를 차고 있었다. 긴 금발에 노란 수염이 듬성듬성 난 남자였다. 취기가 오르자 그가 궁금해졌다. 오지랖이었다.     




“실례합니다. 어디서 왔어요?”

여자친구가 담배를 피우러 간 사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바이킹 같은 얼굴, 바다처럼 차가운 눈동자였다. 

당황한 남자가 짧게 대답해 줬다. “러시아”

빗물이 묻은 창으로 여자친구를 바라봤다. 헐렁한 카키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자리에 돌아온 여자친구가 반가워했다. 

그녀는 러시아에서 오랫동안 공부를 한 폴란드계 유대인이다. 그녀는 러시아와 러시아어를 잘 알았다. 그녀는 바로 러시아어로 그에게 인사를 건넸고 소맥을 말아 건배했다. 그리고 둘은 내가 알 수 없는 단어로 대화를 나눴다. 마치 고향 친구를 만난 듯이. 서로 어디에 살았는지,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됐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그녀가 나에게 통역해 줬다.        



   




그는 모스크바 사람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코딩을 한 16년 차 프로그래머였고, 삼성에서 일을 하다가 때려치우고 아시아를 여행하고 있던 중이었다. 태국, 일본, 베트남, 인도네시아, 그리고 한국까지. 그는 프로그래머 일을 그만두고 친구와 함께 러시아 어딘가에 나이트클럽을 운영할 거란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함께 사업을 할 친구 중 한 명은 군대로 징집됐고, 한 명은 전쟁이 나자마자 조지아로 떠났다는 얘기를 했다.     



          

우리는 소주 한 병을 더 시켰다. 

그의 말 문이 트였다. 그는 가끔 영어로 가끔은 러시아어로 말했다. 전쟁 이후 막혀버린 러시아 계좌 때문에 고충을 겪었다며 토로하기 시작했다. “Sanction(제재)”. 그녀는 그에게 공감할 수 있었다. 그녀의 할머니가 러시아 사람이라 송금에 관련해서 비슷한 일을 겪고 있었으니. 말이 나온 김에 나는 전쟁에 대해 궁금한 걸 물어보기 시작했다. 버벅거리는 영어로. 작년 초부터 10월이면 전쟁이 끝날 거라고 잘난 체했던 학자들이 있었다, 10월이면 가을 장마로 진흙이 끈적해져서 탱크가 전진할 수 없다는 논리였다, 그들은 모두 틀렸다, 전쟁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전쟁이 언제 끝날 것 같은지 러시아 사람인 너의 생각이 궁금하다 등등.   



       

“안 끝나. 이 전쟁.”

나의 버벅댄 영어를 가만히 들어준 그는 뚝뚝 끊기는 영어로 대답했다. 

“한국. 휴전했어. 전쟁 중이야. 70년 동안. 똑같아. 한국처럼. 안 끝나. 이 전쟁. 잠깐 멈출 수 있어. 하지만 안 끝나. 어쩌면 몇 십 년. 러시아 슬라브족이야. 우크라이나 슬라브족이야. 슬라브족은 포기 안 해.”          



나는 젤렌스키의 말을 떠올렸다.

“전쟁을 끝내기 위해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과거에 우리는 그것이 ‘평화’라고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승리’라고 말합니다.” 러시아는 망신당하지 않는 선에서 땅을 먹으려고 한다. 땅을 다시 돌려준다는 건 푸틴의 실패를 의미했고, 그의 정치생명이 끝나는 일과 같다. 하지만 동시에 우크라이나는 땅을 되찾아야만 한다. 이는 한국이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점령당했다고 생각하면 공감할 수 있는, 당연한 의지였다.        



   

나는 다시 물었다.

“푸틴을 끌어내면 되잖아? 러시아 곳곳에서 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나는 걸 봤어.”

여자친구가 대신 답했다. “지지율은 조작이지만 그럼에도 푸틴은 인기가 많아. 모두가 푸틴이 보리스 옐친(러시아 초대 대통령)보다 낫다고 생각해. 물론 푸틴을 반대하는 사람도 많아. 하지만 푸틴을 반대하던 많은 사람들은 죽었어. 죽지 않으면 감옥에 가. 나발니 알지? 너무 무서워서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알아. 그런데 역사를 기억해 봐. 영국도 혁명에 성공했고, 프랑스는 왕의 목까지 벴어.” 

고개는 여자친구가 저었고 대답은 그가 했다. 



“친구. 러시아는 유럽이 아니야. 러시아는 러시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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