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것도 사랑으로 취급되나요?> 20

예상치 못한 선물

by 에스

20


6월


어제 점심을 정말 먹기 싫은데 먹었더니 오후에 바로 체한 느낌이 들었다.

성질이 더러워서인지 원체 많이 먹지도 못하고, 많이 먹더라도 바로 탈이 나버린다.


보건실에서 약을 먹어도 나아지기는커녕 점점 손끝이 싸해지는 느낌에 퇴근시간이 되기 10분 전 부랴부랴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체한 데에 몸살까지 더해졌다. 온몸이 아파서 잠시도 가만히 누워있질 못하고 끙끙대며 뒤척여야 했다. 덩달아 속도 안 좋아서, 이럴 때마다 늘 하던 대로 손가락 두 개를 땄지만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오히려 구토가 나서 몇 번의 시도 끝에 조금 토했다.


그러고는 다시 풀썩, 끙끙.


밤새도록 앓고 중간에 토하러 화장실에 기어가길 몇 번이나 했을까,


날이 밝았다.


다시 학교. 공강시간을 틈타 병원에 가서 약을 먹었다. 돌아와서는 다행히 마지막 수업인 7교시까지 버텼고, 조퇴를 하고 다시 풀썩 쓰러져 잠을 잤다.


덕분에 몸살은 좀 나은 모양이었다. 드디어 꿈까지 꾸며 한 2시간 정도를 잘 수 있었다.

잠에서 깨자 방금 꿨던 꿈 생각이 났다.


오래된 한옥 같은 집에 갔는데 그릇공예를 하는 교수님 댁 같았다. 집 앞마당에 접시며 컵이며고 아기자기한 도기들이 많았다.

대부분 하얀색이었는데, 나는 꿈속에서조차도 내내 그 사람에게 줄 그릇을 고르느라 여념이 없었더랬다.


기억하고 나니 웃음이 나왔다. 이놈의 마음은 꿈에서도 여전하네.


이렇게 한바탕 크게 아팠음에도 그는 아무것도 모르겠지, 그래도 간간히 하던 연락을 오늘따라 통 해주지 않는다. 아픈 날엔 더 생각이 난다. 하지만 더더욱 연락할 없는 것이다.


빨리, 보고 싶다. 얼마 전 공동구매 카페에서 슬램덩크 폰케이스를 샀더랬다. 빨리 주고 싶다.


그가 쓰는 폰 기종과 통신사를 알아내기 위해 애를 썼었다.


[오빠, 저 폰을 새로 사고 싶은데 혹시 오빠는 무슨 폰이에요?]

[나? 난 갤럭시 00이지. 꽤 오래 썼다.]


아무 생각 없이 해준 대답. 아마 놀라면서 좋아하겠지. 슬램덩크를 무척 좋아하니까.


언제쯤 그 얼굴을 볼 수 있을까.



6월 27일


뜬금없이 그가 택배를 보냈다고 했다.


거의 날듯이 퇴근해서는 경비실에 온 상자를 보니 인터넷 주문인지 컴퓨터로 인쇄된 주소가 쓰여 있었다. 손포장을 기대했던 나는 살짝 어깨가 처졌다.

상자에 붙어 있는 글씨들을 훑어보니 그 안에 든 건 머그컵이었다. 세상에. 나한테 컵이 얼마나 많은지 지난번 구경해 놓고는 컵을 주다니... 저번에 갑자기 받은 선크림도 그렇지만, 참 예측이 불가능한 남자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들어왔다.


구시렁거리면서 상자를 뜯으니, 역시나 머그컵이 들어있을 법한 분홍색 포장지가 나왔다. 열어보니 뽁뽁이로 고이고이 포장한 연두색 컵뚜껑이 제일 먼저 나왔다. 연두색이라니.... 충격이었다. 개인적으로 초록 계열을 별로 좋아하지 않기에 헛웃음이 나왔다.


그런데 컵은 더 충격이었다!


지남 록페스티벌 때 찍은 셀카 사진 세 장이 인쇄된 머그컵이었다. 그리고 닭살 돋는 문구도 함께.


나는 옆집에서 고성방가 신고가 들어올까 생각하면서도 방바닥을 구르며 소리를 질렀다. 이걸 어떻게 쓴단 말인가? 우리는 연인 사이도 아닌데?

나는 곧바로 그 사람에게 전화를 했다.


"오빠 이게 대체 뭐예요?"

"뭐긴 뭐야. 머그컵이지."

"아니, 이걸 어떻게 써요? 사진 이거 뭐예요?"

"하하 예쁘지 않아? 남한테 보이지 말고 잘 써."


이 모순은 뭐지?


순간 뇌구조가 의심된다. 도대체 어떻게 이걸 쓰라는 거지...?


나는 어쨌든 그걸 고향 집에 가지고 가기로 했다. 내 전용컵으로 써야지 뭐. 빨리, 방학이 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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