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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Mar 21. 2024

작별, 그리고 이별

4부 EP05. 디자이너 B와의 작별

   디자이너 B가 오랜 숙고 끝에 고향 서울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한 그의 여자친구는 B처럼 디자인 회사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본인이 원하는 것은 서울 쪽으로의 진출이었지만 생각보다 녹록지 않은 것 같았다. 그래도 B는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해서든 그녀를 서울, 경기 쪽으로 보내기 위해 최선을 다해 돕다가, 그 과정에서 본인도 같이 육지로 올라가기로 마음먹게 된 것이다.


   십 년 넘게 디자인 업계에서 일한 베테랑 B는 이제 슬슬 한계가 온 것 같다며 서울에 올라가면 디자인을 그만두겠다고 이야기했었다. 어느 날 공방을 방문한 그는 꿈을 이루기 위해 서울로 올라가서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카페 24와 같은 쇼핑몰 제작과 운영 업무도 자주 맡아서 했던 그에게 쇼핑몰 창업과 물건 발주 관리는 아주 좋은 아이템 같았다. 그는 차근차근 계획을 세우고, 서울의 집을 알아보고 계약을 하며 서울 회귀 준비를 철저히 했다. 하지만 그러던 도중 또 다른 난관이 들이닥쳤다.


   제주에 온 후, 대학생활 때부터 지금까지 쉬지 않고 혹사시켰던 B의 간에 어느 순간 무리가 왔다. 피로가 풀리지 않아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는데, 간수치가 너무 높아져서 당장 입원해야 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갑작스럽게 통보받은 질병. 극심한 불면증에 시달리면서 식단 관리, 걷기 운동, 금주 등을 해나가는 그는 금방이라도 포기할 것처럼 힘들어 보여서 모두를 걱정하게 만들었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관리를 해서 반년만에 건강을 회복하고 2주 뒤 서울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서울 회귀를 준비하는 동안 여자친구는 별다른 포트폴리오를 완성하지 못한 듯, 서울로 가는 것이 보류되어 버렸다. 여자친구를 따라서 서울로 올라가려고 했던 그는 졸지에 혼자 서울로 떠나게 되었고, 장거리를 싫어하던 그에게 난관이 닥쳤다. 그러나 그는 이미 결심을 한 듯 자취방의 짐을 하나 둘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장거리 연애를 힘들어하는 편이라 두 사람이 걱정되었지만, 어쩔 수 없이 헤쳐나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토요일 저녁에 송별회를 열었다. 


   반년만에 술을 먹게 된 그는 정말로 행복해 보였다. 오늘 아무도 집에 못 간다며 으름장을 놓는 그를 보며 모두가 박장대소를 했다. 우리는 그가 만들어주는 소맥을 마시고, 밀린 이야기를 하며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나직하게 말하지만 그가 하는 이야기들은 무언가 사람을 웃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우리는 왁자지껄하게 저녁을 먹고, 마지막 코스로는 노래주점에 가서 오랜만에 노래를 불렀다. 


   송별회를 거하게 하고 며칠 뒤, B는 서울로 이사를 갔다. 제주 자취방과 비슷하게 잘 꾸며놓은 방 사진은 인스타그램을 통해 구경할 수 있었다. 성능 좋은 컴퓨터 본체와 세 개의 모니터. 따스한 무드등. 서울에서의 새로운 시작이 그의 불면증과 불안을 치료해 줄 수 있었으면.


   B가 서울에 올라가고 2주일 후. 그림 모임 여자들 네 명이 모여 저녁을 먹게 되었다. 공방 근처 치킨집에 모여 맥주를 한 잔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는데,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B의 여자친구가 둘이 헤어졌다며 고백을 했다. 우리는 모두 깜짝 놀랐지만, 곧 수긍했다. 장거리 연애는 아무래도 걱정이 많이 되던 터였다. 특히 B는 장거리 연애를 무척 힘들어한다는 것을 들었던 나는 그렇지 않아도 불안하던 참이었는데, 결국 헤어진 것이다. 그래도 싸워서 헤어진 게 아니라, 서로 합의 하에 좋게 끝났다면서, 아이는 울먹였다. 우리는 맥주잔을 들어 쓴 술을 마셨다.

 

   언제나 만남이 있고, 그 끝에는 헤어짐이 있다. 그 순리를 모르는 것이 아니지만, 작별의 순간을 예측할 수 없기에 우리는 불안하고 걱정한다. 작별의 종류에 따라 다시 만날 수도 있고, 영영 그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순간을 꼭꼭 씹어서 내 삶 속의 작은 편린이 되도록 만드는 것. 힘들면서도 꼭 해야만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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