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부 EP07. 수면과다증과 아르바이트 재개
한동안 글을 쓰지 못했다.
하루하루, 공방도 디자인도 완벽히 자리잡지 못한 채 나태하게 흘러가는 하루에 속절없이 무너지며 자신을 탓하고, 그마저도 지쳐서 바깥으로 나돌며 떠들고 논지 몇 주가 흘렀다. 그러는 동안 강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 중 150에서 200만 원 정도를 매달 나에게 보내준다. 그러면 그중 백만 원은 주택 매매 대출 이자로 갚고, 남은 나머지는 데이트통장에 넣어 살림살이에 보탠다. 강은 힘들어하는 내게 늘 말해준다. 너 하나 먹여 살릴 자신은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살면서 누군가에게 금전적으로 의지해본 적이 없던 나는 이 상황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디자인은 의뢰가 들어올 때는 꽤 나쁘지 않지만, 들어오지 않을 때는 뚝 끊겨서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공방은 오픈효과가 빠졌는지 더더욱 미미해서 월세를 충당하기도 힘들었다. 심지어 얼마간 괜찮아졌었던 수면문제가 새로운 형태로 다시 찾아왔다. 불면증은 완전히 사라져서 땅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들었는데, 이번에는 비정상적일 정도로 수면의 양이 많아진 것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죽도록 힘들었고, 일어나서 늘 그랬듯이 커피를 한잔 마시고 일상을 시작하려고 해도 좀처럼 잠이 깨지 않고 몽롱했다. 거의 불면증 약을 먹을 때와 비슷할 정도로 졸음이 쏟아졌다. 검색을 해보니 수면과다증이라는 질병이 있는데, 증상이 나와 아주 흡사했다. 원인은 다양했는데, 별다른 해결책이 없어 보였다. 우울증이 심해져서 수면장애로 나타난 건가, 싶었지만 다음 정신과 진료까지는 아직 한 달이나 남아 있는 상태였다. 나태함과 한가함과 졸음이 합쳐지니 정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친구들과 저녁에 만나는 것조차 하기 힘들어서 집안에 은둔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 된다. 나는 술 먹는 시간을 줄이고 강에게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고 싶어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구인 사이트에는 아르바이트생 모집글이 넘쳐났다. 나는 예전에 했던 카페 알바를 위주로 찾아보았다. 그중 집 근처 수목원 앞의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오픈알바를 구하고 있었고, 나는 시간과 요일이 마음에 들어서 지원을 했다.
면접을 보는 매니저는 나와 비슷한 연배의 남성으로, 20년 넘게 카페 업종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나는 월, 화, 수 아침 7시부터 11시까지 오픈 업무를 하게 되었는데, 오픈이 생각보다 할 일이 많다고 했다. 바쁜 주말을 보낸 뒤 텅텅 비어 있는 디저트 칸에 디저트를 채워야 했고, 음료를 만드는 각종 베이스도 종류별로 만들어놔야 했다. 또한 샐러드는 매장에서 직접 만든다며 양상추와 토마토, 훈제닭가슴살 등으로 샐러드를 만드는 것도 배웠다. 프랜차이즈에서 일해보는 것은 처음인데, 메뉴가 40여 종에 달해서 어떤 메뉴가 있는지를 익히는 것도 힘들었다. 그래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수목원 옆에 위치한 데다가 오전이라서 그런지 낮보다는 한가했고, 대부분 등산을 한 후 커피종류만 마셔서 음료 제조는 쉬웠다. 특히 오전 11시까지 아메리카노 할인 중이었기 때문에 방문하는 손님 대부분은 아메리카노를 주문했다. 며칠 일을 하자 매일 오는 단골들이 눈에 익었고, 어떤 메뉴를 시키는지도 외워서 먼저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 단골 어르신들은 대부분 점잖고 친절했다. 일은 좀 어떠냐며 물어보시기도 하고, 밥을 안 먹고 출근했다고 하자, 오예스 하나를 수줍게 건네고 가시기도 한다.
이런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바쁜 오픈 업무를 손에 익혔고, 매니저는 생각보다 일 습득이 빠르다며, 다음 주부터 곧바로 혼자 매장을 보게 했다. 혼자 일하는 것이 너무 두려웠는데, 생각보다 문제는 없이 3주간 잘 근무했다. 월 초가 되자 그동안 일한 시간만큼 급여가 지급되었고, 퇴사하기 전이었다면 코웃음 쳤을 작은 돈이 너무나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퇴근을 하고 곧바로 공방으로 출근해서 손님을 받거나 디자인 업무를 한다. 너무나 피곤해서 잠시 낮잠도 자야 했지만, 다시 시작한 카페일은 꽤나 즐거웠다. 이참에 더 많이 배워서 나중에 매니저 급으로 일하면 좋겠다, 고 생각하며 나는 아르바이트를 늘리기로 마음먹었다.
이번에 알아본 곳은 나중에 이사가게 될 동네인 외도에 위치한 프랜차이즈 카페이다. 현재 제주에는 5군데 정도 매점이 있다고 하는데, 매장 규모는 작고 대부분 테이크아웃이나 배달로 주문할 것 같은 곳이었다. 사장은 미취학 아동을 자녀로 둔 여사장님인데, 내게 결혼했냐고 물어보더니 대뜸 결혼하지 말라고 해서 하하, 하고 멋쩍게 웃어 버렸다. 면접은 또다시 한 번에 합격했다. 여기는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저녁 마감업무를 맡았고, 토요일 하루 휴무가 있다.
강은 두 번째 알바 소식을 듣고는 걱정이 섞인 잔소리를 했다. 가뜩이나 아르바이트하는 것을 마땅찮게 여기던 그였다. 나는 시간을 더 알차게 쓰고 나태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고 설득했다. 공방 시간과 겹치지도 않고, 손님이 없으면 공방에서 디자인 업무도 할 수 있다고 하자, 강은 마지못해 한 번 해보라고 말해 주었다. 내일은 첫 출근이다. 진상이 없어야 할 텐데… 지금 내가 하는 고민과 경험들이 다 나중에는 피와 살이 되어 나를 도와주었으면 좋겠다고 간절히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