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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 Aug 17. 2024

부작용 없는 우울증 약을 찾기 위한 기나긴 여정

4부 EP09. 엄마의 한달살이와 다시 시작된 부작용


   글을 쓰지 못한 채 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수면과다에 대해 정신과에 가서 도움을 요청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램수면을 줄여준다는 약을 처방해 주셨고, 우울감은 요즘 조금 줄어든 것 같기에 우울증 약은 줄였다. 약은 효과가 좋은 것 같았다. 먹은 첫날, 평소보다 깊이 잠든 것 같았고 아침에 깔끔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었다.


   진료받기 전 주에 엄마가 한 달 살기를 하러 내려오셨다. 강과 같이 살게 된 후로, 제주에 내려오는 것을 부담스러워하시는 엄마를 위해 따로 공방 근처 원룸을 단기임대했다. 엄마는 여전히 부지런하고 깔끔하셔서, 오자마자 우리 집과 공방을 비롯한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만들기 시작하셨다. 나는 엄마를 위해 만두를 원룸으로 데려왔다. 어떨 때는 나보다 만두가 더 보고 싶다던 엄마. 건강해져서 살이 포동포동해진 만두를 보고 너무 좋아하셨다.

   나는 거의 모든 시간을 엄마와 함께 하고 먹으며 한 달여의 시간을 보냈다. 카페 알바를 갈 때도 함께 출근을 했는데, 처음에는 내가 부지런히 일할 동안 엄마는 심심해서 어쩐다, 걱정을 했었다. 그러나 그건 나만의 착각. 엄마는 카페 한편에 앉아 유튜브로 공부를 하시거나, 바로 옆 수목원을 산책하는 등 시간을 알차게 보내셨다. 어느 날은 수목원을 돌다가 클로버 밭을 발견하고는 한 시간 동안 쭈그려 앉아 네잎클로버를 찾기 시작해서, 열 개가 넘는 네잎클로버를 함박웃음과 함께 가져오셨다. 이걸 다 어디다 쓰실 거냐고 물어보니, 뿌듯한 표정으로 액자를 만들 거란다. 공방에 남는 액자를 하나 드렸더니, 나름 본인 센스를 발휘해 네잎클로버들을 예쁘게 정렬해서 액자로 만들어서는 공방 벽에 걸어주셨다. 그리고도 카페에 갈 때마다 네잎클로버를 채취(?)해 오셔서는, 강에게도 작은 네잎클로버 액자를 주시고 본인도 하나 챙기셨다. 정말이지 소박하고 순수하다, 고 생각했다.


   카페 근무를 마치면 점심을 먹고 공방으로 출근을 한다. 7월은 디자인 업무가 너무 많아서 쉴 틈이 없었다. 거의 매일 끊임없이 새로운 일이 들어왔고, 무리를 했는지 손목 통증이 와서 정형외과와 한의원을 다녀야 했다. 엄마는 손목 부상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셨지만 나는 월급쟁이 인생 이후로 이렇게 돈을 많이 번 적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의욕에 끓어올랐다. 일하지 않으면 돈이 들어오지 않는다는 사실과, 일한 만큼 돈을 버는 느낌을 알고 나자 그만큼 욕심도 많이 생겼던 것 같다. 공방을 퇴근하고 집에 가서도 일을 끄적이는 나를 보고 엄마는 혀를 끌끌 차셨다.


   간만에 쉬는 날이면 조금 멀리 떠나서 예쁜 카페도 가고, 강과 함께 바닷가에서 물놀이도 하고, 바로 앞 이호테우로 밤산책을 가기도 했다. 본래 성격이 서글서글하고 어른들에게 싹싹한 강은 엄마를 ‘어머니~ 어머니~‘하고 부르며 이런저런 수다를 떨었다. 엄마 또한 강을 이제 남자친구가 아닌 ’사위‘로 생각하게 되어서인지 살갑게 대해 주시고 농담도 하며 스스럼없이 대해주셨다.

   어느 날 엄마는 우리에게 결혼반지를 해주려고 왔다며 말을 꺼내셨다. 나는 생각지도 못한 엄마의 발언에 깜짝 놀랐다. 결혼반지를 왜 엄마가 해줘? 엄마는 내심 우리의 결혼에 보태준 것이 없어서 뭔가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하신 모양이었다. 정기적인 수입도 없는 양반이 어디서 모아 왔는지 150만 원을 준비해 왔다며, 금은방을 가보자고 조르셨다. 나는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끼며 제주 시내의 금은방을 찾아보았다. 두 군데를 돌아본 끝에 디자인과 가격이 마음에 드는 곳을 찾아서 주문을 했다. 생전 액세서리라고는 일체 해 본 적이 없는 강은 처음에는 반지가 불편하네, 어색하네, 목걸이에 걸어서 다니면 안 되겠느냐, 낑낑거렸지만 반지에 관해서만큼은 엄마는 엄격한 편이었다. 강은 깨갱하고는, 일할 때만 반지를 빼도록 허락받았다.


   엄마가 오신 지, 동시에 약을 바꾼 지 3주 정도 지났을 무렵부터 약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잔잔한 편이었던 자살충동이 어느 순간부터 불쑥불쑥 심해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늘은 좀 힘이 드네‘ 정도로 지나갔지만 상태는 조금씩 악화되었다. 더불어 매우 좋은 편이었던 식욕이 갑자기 뚝 떨어지기 시작하자, 그제야 약부작용임을 깨닫게 되고 복용을 중단했다. 자살충동과 식욕저하, 지루성 두피염까지, 예전에 겪었던 약 부작용과 너무나 똑같았다. 나는 부작용을 겪은 약 성분들을 비교해 보았다. 정신과 약의 기전은 종류별로 매우 다양한데, 내가 복용한 약을 기준으로 분류해 보았다.


1. SSRI :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 세로토닌의 수치를 조절하여 우울증을 개선하는 방식. (세로자트)


2. SNRI : 세로토닌-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 억제제.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수치를 조절하는 방식. (프리스틱)


3. TCA: 삼환계 항우울제. 세로토닌과 노르에피네프린 재흡수를 억제하고, 신경 전달물질의 활성화를 통해 우울증을 치료하는 방식. (이미프라민염산염)


   약에 대해 조사하기 전까지는, 부작용을 겪은 약들이 모두 동일한 계열일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로, 약들은 저마다 다른 기전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부분에서 부작용이 생기는 것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우울증 약의 부작용이 왜 자살충동인지도 궁금한 부분이었다. 자살충동을 줄이기 위해 먹는 약의 부작용이 자살충동이라니, 너무 이상하지 않은가. 다음 진료 때에 반드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약 복용을 중단하자 부작용은 조금씩 줄어들었다. 비슷한 시기에 엄마는 한달살이를 마치고 육지로 올라가셨는데, 그 상실감과 우울감이 더해져서 정말이지 끔찍한 일주일여를 보냈던 것 같다. 다음 주에 병원 진료를 받는다. 궁금한 점이 다 해결되고, 나에게 맞는 약을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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