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혜주 Aug 27. 2023

[다정한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part 02

내 마음조차 어떻게 다룰 줄 몰라서

내가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는 말 중 하나. "몰라"

어째서 내 마음이고, 내 것이고, 내 의사이고, 내 생각인데 나에게서 비롯되는 것조차

명확하게 알지를 못 하고 "몰라"라고 말하게 되는 걸까.


설령 누군가 나에게 뭐가 먹고 싶냐고 물어도, 뭐가 하고 싶냐고 물어도 어느 순간부터는

"너 먹고 싶은 거 먹어" "너 하고 싶은 거 해" "글쎄" "잘 모르겠네"라는 말로써 대부분을 넘기곤 했다.

되려 뭐가 먹고 싶냐 하고 싶냐는 일차원적인 질문에는 괜찮지 나의 기분이나 감정상태를 묻는 말에까지

잘 모르겠다는 말로 에두르는 상황이 오면 그 상황엔 괜찮다가도 차후에 시간이 흘러 그 순간을 다시 되새길 때 답답하기도 하고 조금은 심술궂은 짜증이 차오르기도 했다.


점차 하나의 물음에 답변을 달기까지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생각해야 할 것들이 늘어나고, 고려해야 하는 게 많아지고, 나의 대답이지만 나의 대답이 누군가에게 미칠 영향을 배려해야 하고, 그러다 보면 결국엔 내 마음에서 뭘 원했는지 바래져만 가고 그 바래짐을 따라 거닐다 보면 '아 내가 뭘 원하는지 기어이 중요하진 않겠구나'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내 마음에서 원했던 것과 내 입에서 나가는 것이 다른 거겠지.


"몰라"라는 말이 내 입에서 자주 나오기 시작한 무렵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행위일지 모르나, 가장 진솔되고 가장 진실되게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는 한 뼘의 공간정도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감정상태, 그날의 이슈,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만들었던 것들, 차마 입 밖으로 뱉진 못 했으나 내 입술 언저리에 맴돌았던 것들 다양하게 풀어가기 시작했다. 형태도 없고, 제약도 없이 말이다. 낙서가 될 수도 있고, 그림이 될 수도 있고, 단어 또는 문장 혹은 수기가 될 수도 있는 다채로운 형태로 하나씩 내가 진실되게 느꼈던 것들에 대해 기록해 나가기 시작하며 정녕 내가 뭘 추구하고 쫓는지에 대해 따라가고 있다.


왜인지 그래야만 했다고 생각이 들었던 이유를 꼽자면점점 내가 어떤 사람이었고, 내가 뭘 추구하는 사람인지 정체성을 잃어가는 것만 같아서 라고 말하고싶다.


처음엔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했다.

자기중심적으로 살아도 문제없는 유년시절을 지나 사회화가 되어가는 과정이랄까. 누군가를 배려하고, 함께하는 것에 초점이 맞춰졌기 때문이라고 말이다.

조금 더 지나서는 의미가 있나라고 생각했다.

내가 뭘 원하는지 안다고 하더라도 내가 가고자 하는 길, 내가 하고자 하는 것, 내가 살고자 하는 삶대로 살아지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


요즘은 조금 다르다.

내가 뭘 원하더라도 그렇게 되진 않을 테고, 내가 뭘 지향하더라도 곧잘 그렇게만 살 순 없을 테고, 내가 뭘 좋아하더라도 그 좋아하는 것만 쫓을 순 없을 테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이 내 주체가 뭘 원하는지, 진정으로 무엇을 쫓는지 단단히 구축해둬야 하는 것 아닐까.

그저 휘몰아치는 바람에 소용돌이 마냥 빨려 들어가 빙글빙글 휩쓸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는 삶이 되는 것과 휘몰아치는 바람이 다 지나가고 나면 제 자리를 찾아가는 삶은 다르다는 것.


누군가 나에게 적어도 나에 대한 질문을 했을 땐, 입버릇처럼 "잘 모르겠어. 몰라"라고 말하기보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곰곰이 그 질문과 나에 대해 생각해 보고 차근히 답을 해보면 어떨까.


이 어지러운 세상 속 쉽지 않은 마음속 단 하나, '나'라는 사람 자체에 대해선 잘 알 수 있는 가까운 사이이기를.





이전 01화 [다정한 새벽을 기다리는 사람에게] part 0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