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이들은 신을 '존재하는 무언가’로 생각한다.
신은 하늘에 있거나, 특정한 형상을 띤 누군가로 등장한다.
하지만 종교가 말하는 신은 대개 형상이 아니라 관계다.
구약의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말하고,
예수는 “너희 안에 내가 있고, 내가 안에 있다”고 한다.
이 말은 무엇인가?
신은 어떤 외적 존재가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발생하는 존재라는 뜻이다.
신은 실체라기보다는 발생하는 사건이다.
용서할 수 없는 이를 용서하는 순간,
진실 앞에서 나를 내려놓는 순간,
나 아닌 타자의 고통에 눈물 흘리는 순간,
신은 나타난다.
신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그러니 신은 형상이 아니라 관계다.
성경은 하나의 이야기 구조다.
창조, 타락, 구원, 회복.
그 서사는 끊임없이 반복된다.
하지만 문제는,
사람들은 반복되는 진리를 의심한다.
“한 번 있었던 일이니까 믿는 거지, 다시 일어난다면 그건 가짜다.”
이게 현대인의 태도다.
진리는 반복될 수 있다.
단, 반복되기 위해선 형태가 달라져야 한다.
옛 진리가 새로운 언어와 육체로 올 때,
사람들은 그것을 사이비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진리가 반복되는 순간,
대다수는 그것을 진리라고 알아보지 못한다.
우리는 익숙한 구조에만 진실을 부여하고,
새로운 진리는 경계한다.
그러니 예수가 다시 와도 우리는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같은 말을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새로운 육체, 새로운 언어, 새로운 통증으로 올 것이다.
그것이 진리의 반복 방식이다.
인간은 종교를 개인적 차원에서 믿는다기보다
집단의 안정으로 믿는다.
종교는 신을 섬긴다기보다
신에 대한 공통의 이미지를 섬긴다.
“예수는 이래야 한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런 식의 합의된 이미지를 믿는 것이다.
종교가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하면,
그 순간부터 신은
살아 있는 관계가 아니라
죽은 규범의 상징으로 전락한다.
집단은 이미지를 유지하는 데 온 힘을 쓴다.
그래서 예수가 다시 오더라도,
그가 예수 이미지를 따르지 않으면 배척당할 것이다.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을 믿는가?
예수를 믿는가?
아니면,
우리가 상상하고 만들어낸 ‘하나님 이미지’, ‘예수 캐릭터’를 믿는가?
그 이미지란 매우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며,
결코 우리를 뒤흔들지 않는 정적인 존재다.
하지만 실제 예수는
권력자들을 비판했고, 제도 종교를 전복했으며,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인간에게 가장 무거운 윤리를 던졌다.
진짜 신은 불편함이다.
진짜 진리는 익숙하지 않다.
진짜 종교는 우리를 변화시키는 힘이다.
그리고 변화는 늘 고통스럽다.
그래서 진짜 신은 늘,
다수로부터 버림받는다.
왜냐하면, 진짜 신은 이미지가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