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이 찌면, 세상이 달라 보인다.
아니, 세상이 나를 다르게 본다고 느낀다.
나는 예전보다 무겁고, 느리고, 뭔가 흐려졌다고 느끼며
사랑조차 불가능해질 것 같은 공포에 빠진다.
그건 단순히 ‘외모’에 대한 불만이 아니다.
존재 자체가 사랑받을 자격을 잃어버렸다는 느낌이다.
거울 앞에 서면, 나는 누군가와 눈을 마주치는 상상조차 어렵다.
그녀가 내 어깨를 감싸줄 수 있을까?
나는 그 따뜻함을 받을 수 있을 만큼 괜찮은 사람인가?
불안은 언제나 ‘가능성’을 삼켜버린다.
그 불안은 이렇게 속삭인다.
“넌 지금 이 몸으로는 사랑받을 수 없어.”
“여자들은 날씬한 너를 좋아해.”
“네가 먼저 너를 싫어하는데, 누가 너를 좋아하겠니?”
그 말들은 논리적이지 않지만,
내면의 무력한 아이는 그 말에 쉽게 설득당한다.
그리고 사랑은 점점 더 멀어진다.
살은 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상상력의 영역이다.
사랑을 상상하지 못하면, 그건 ‘살’이 아니라 ‘자기 이미지’의 왜곡이다.
나는 살이 쪄서 못 사랑받는 게 아니라,
살이 찐 나를 사랑하지 못하게 된 나의 상상력이 문제다.
나도 안다.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누군가는 내 목소리를 사랑할 것이고,
누군가는 내 눈빛에서 안전함을 느낄 것이며,
누군가는 나의 불안을 “귀엽다”고 느낄 수도 있다는 것을.
하지만,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이 왜곡되면,
그 모든 가능성은 현실에 도착하지 못한 채 멀어진다.
그래서 나는 싸우고 있다.
내 몸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왜곡된 감정과.
사랑은 조건이 아닐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사랑이 오기 전에도 나는 이미 존재한다는 용기.
나는 지금,
살이 찐 몸으로도 사랑을 받아도 된다고
조용히, 아주 조심스럽게
나 자신을 설득하는 중이다.